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그들은 억만장자들의 포커 게임에 잘못 끼어들었다. 포르쉐의 짜릿한 가속과 코너링을 만끽하던 헤지펀드 매니저들 말이다. 2008년 10월 27일은 월요일이었다.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폭스바겐 주가가 아찔하게 치솟았다. 공매도에 몰렸던 헤지펀드가 패닉 바잉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금요일까지도 200유로 선을 오르내리던 주가는 화요일 한때 1005유로까지 폭등했다. 폭스바겐의 시가총액은 3000억 유로 가까이 불어나며 잠시나마 엑슨모빌을 제치고 세계 최대 기업이 됐다.

공매도 세력이 패닉에 빠진 것은 포르쉐가 일요일에 터트린 핵폭탄 때문이었다. 포르쉐는 몇 년째 폭스바겐 주식을 매집해왔다. 그에 따라 폭스바겐 주가는 꾸준히 올랐다. 하지만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였다. 자동차 업계는 실물과 금융의 복합위기를 맞았다. 그런 상황에서 고평가된 폭스바겐 주식을 공매도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적어도 포르쉐가 악몽 같은 시나리오를 던져주기 전까지는 그랬다.

10월 26일 포르쉐는 이미 폭스바겐 지분 42.6%를 매입했으며 옵션 계약을 통해 추가로 31.5%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니더작센주 정부 지분 20%는 잠겨 있었다. 전체 주식의 94.1%는 시장에 유통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다음은 간단한 산수의 영역이었다.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주식은 6%가 채 안 됐다. 반면 공매도 세력이 빌려서 판 주식은 약 12%에 이르렀다. 모두가 한꺼번에 공매도 주식을 되사서 갚을 수는 없었다.

주가가 오르면 공매도의 손실은 이론적으로 무한대가 된다. 무한 손실의 압박(숏 스퀴즈)에 직면한 이들은 값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주식을 사들이려 한다. 2021년 초에도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 헤지펀드들은 한물간 비디오게임 유통업체 게임스톱 주식 공매도에 나섰다. 유통 물량의 260%나 공매도해놓고 주가가 추락하기만 기다리던 그들에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뭉친 소액 투자자들은 불개미 떼처럼 달려들었다. 20달러를 밑돌던 게임스톱 주가는 숏 스퀴즈로 480달러까지 폭등했다.

포르쉐가 폭스바겐 주식 유통 물량을 5%가량 늘리는 조치를 하자 주가는 급락했다. 이틀 만에 반 토막이 나고 한 달 만에 4분의 1토막이 났다. 숏 스퀴즈로 공매도 세력이 입은 손실은 300억 달러에 달한다는 추정도 나왔다. 독일 금융감독청은 내부자 거래나 주가 조작 가능성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포르쉐는 강력히 부인했다. 옵션거래로 은밀히 지분을 매집할 수 있도록 한 규제의 허점도 드러났다.

포르쉐의 최고경영자 벤델린 비데킹은 스스로 “많은 이들에게 나는 악몽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 사태의 승자로 보였다. (그는 폭스바겐 인수를 주도했다가 실패하고 이듬해 극적으로 퇴장한다.) 2009 회계연도 상반기(2008년 8월~2009년 1월) 포르쉐의 매출액은 30억 유로였으나 세전 이익은 73억 유로에 달했다. 폭스바겐 주식 옵션거래로 68억 유로를 챙긴 덕분이었다. 포르쉐 오너 일가는 비데킹에게 세전 이익의 0.87%를 상여로 주고 있었다. 2008년 그의 보수는 7700만 유로(지금 돈으로 1000억 원이 넘는다)에 달했다.

비데킹은 유럽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경영자였다. 전문경영자이면서도 포르쉐를 지칭할 때 일인칭을 자주 썼다. 그는 1990년대에 벼랑에 몰린 포르쉐를 살린 인물이다. 일본 자동차의 생산 방식을 도입하고 스포츠유틸리티 차 ‘카이엔’을 비롯해 잇달아 신차를 내놓으며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다른 자동차 업체의 먹잇감이 될 처지였던 포르쉐는 그 덕분에 자신보다 덩치가 열다섯 배나 큰 폭스바겐을 삼키려는 야심을 품게 된다. 비데킹은 “덩치가 결정적인 기준이라면 공룡이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라던 자신의 지론을 뒤집었다.

포르쉐 지주회사는 2009년 초까지 폭스바겐 지분을 50.76%로 늘렸다. 하지만 75%의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장악하려던 야망은 결국 무산된다. 금융위기의 한가운데서 무리하게 인수를 밀어붙이다가 100억 유로의 빚을 진 채 오히려 인수 대상에게 구제를 요청할 지경에 이른다. 폭스바겐은 결국 포르쉐(자회사) 지분을 사들여 100% 계열사로 만든다. (이 지배구조는 얼핏 보면 헷갈리기 쉽다. 포르쉐 일가가 소유하는 지주회사가 폭스바겐을 지배하고, 폭스바겐이 다시 포르쉐 자동차를 생산하는 자회사를 지배한다. 지난해 폭스바겐은 그 자회사 지분 일부를 팔았다.)  

포르쉐와 폭스바겐의 싸움은 한판의 극적인 뒤집기 승으로 끝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포르쉐 가문이 벌인 오랜 내전에서 한 차례 반전일 뿐이다. 독일 기업의 역사와 정치·경제 체제의 축도를 보여주는 내전의 시작은 이 가족 기업의 2세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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