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오늘 포르쉐 자동차 왕국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포르쉐 자동차 지주(포르쉐 SE)의 감독이사회가 열린다고 해보자. 독일 기업에서 일상적인 경영은 경영이사회가 맡는다. 감독이사회는 경영이사회를 감독하며 큰 전략을 결정한다. 포르쉐 SE 감독이사회에는 열 명이 참석한다. 의장은 볼프강 포르쉐(1943~)다. 창업자 페르디난트 포르쉐(1875~1951)의 친손자다. 창업자의 외손자인 부의장 한스 미헬 피에히(1942~)도 참석한다.

그 아래 4세대 경영자도 함께 자리한다. 볼프강 포르쉐의 맏형의 맏아들 페르디난트 올리버 포르쉐(1961~)가 보이고, 셋째 형의 아들 페터 다니엘 포르쉐(1973~)도 아버지에 이어 한 자리를 차지한다. 피에히 집안에서는 한스 미헬 피에히가 누나의 아들 요제프 미하엘 아호르너(1960)와 자신의 딸 소피(1985~)를 데리고 왔다. 다른 네 명은 창업자의 핏줄이 아니다.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이 완전히 지배하는 포르쉐 SE는 2022년 말 현재 폭스바겐 의결권 지분 53.3%를 갖고 있다. 여기에 독일 니더작센주의 20%와 카타르 홀딩사의 17%를 빼면 폭스바겐 의결권 지분 중 9.7%만 시장에서 자유롭게 유통되는 셈이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가을 포르쉐 자동차를 생산하는 100% 자회사(포르쉐 AG)의 의결권 지분 25%를 포르쉐 SE에 팔았다.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 25%는 시장에 팔았다.)

요컨대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포르쉐 가문은 지주회사 포르쉐 SE를 가지고 지난해 3000억 달러(지금 환율로 약 400조 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한 세계 최대 자동차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앞서 본대로 피에히 집안은 포르쉐의 무리한 인수 시도에 뒤집기 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창업자 포르쉐가 본다면 승자는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포르쉐 왕국을 지배하는 감독이사회는 그의 손자와 증손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4세대에 이른 이 가족 기업의 역사는 왕좌의 게임과도 같은 반전을 보여주었다. 1931년 포르쉐를 창업한 페르디난트는 딸 루이제(1904~1999)와 아들 페리(1909~1998)에게 지분을 50대 50으로 물려주었다. 창업 2세대는 똑같은 의결권을 가지고 공동경영을 하라는 뜻이었다. 균등 분할은 3세대로 이어졌다. 누나 루이제는 안톤 피에히와 결혼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동생 페리는 아들 넷을 두었다. 이 두 세대 열 명이 각각 10%의 지분을 나눠 가졌다.

2세대의 남매는 서로 신뢰를 잃지 않았으나 아래 대의 사촌들은 그러지 못했다. 볼프강 포르쉐와 페르디난트 피에히(1937~2019)가 이끄는 두 집안의 주도권 다툼은 치열해졌다. 그럴수록 반목도 깊어졌다. 친손자들은 창업자의 신화적인 이름을 물려받았다. 볼프강은 외사촌들의 화를 돋우고 싶을 때마다 “(가문의) 성이 없는 놈”이라고 불렀다.

1963년 포르쉐에 들어온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자동차 설계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그의 엔진을 탑재한 포르쉐 917이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촌들과의 불화가 심해지자 결국 포르쉐를 떠나 아우디로 가고 치열한 생존투쟁 끝에 폭스바겐 그룹의 수장이 된다. 그의 사생활은 복잡했다. 볼프강의 형수였던 마를렌을 포함해 네 명의 여성과 열세 명의 자녀를 남겼다. (포르쉐의 정점에서 그들은 찾아볼 수 없다.)

창업자 가문의 내전은 눈에 보이는 싸움이었다. 직접적인 불씨는 경영권의 공동 승계에 따른 가족 간 불화였다. 하지만 한 꺼풀을 벗겨보면 그 내전의 바탕에 깔린 경제 논리가 보인다. 그 논리를 무시했다면 폭스바겐과 포르쉐 모두 다른 글로벌 자동차 왕국에 흡수될 수도 있었다.

포르쉐는 드라마를 팔고 폭스바겐은 현실을 판다.(2009년 7월 21일 슈피겔 ‘포르쉐 이야기’) 배타성의 상징 같은 고급 차와 가성비를 중시하는 대중적인 차의 대조는 너무나 극명하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둘은 더욱 서로에게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위기의 포르쉐를 살린 벤델린 비데킹이 골리앗에 도전하는 다윗처럼 폭스바겐 인수전을 벌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또 한 꺼풀을 더 벗겨보면 독일의 경제구조와 산업정책을 낳은 정치적인 맥락들이 드러난다. 산업화 시대의 거대 기업의 역사가 흔히 그렇듯이 폭스바겐은 시작부터 매우 정치적이었다. 독일 경제 기적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이 ‘국민차’ 기업의 역사는 자동차 운전면허를 받은 적은 없어도 자동차광이었던 아돌프 히틀러와의 만남으로 시작됐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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