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불교 경전 구절이 유행가 제목으로 환생했다. 이찬원의 <시절 인연>이다. 이 곡은 드라마 《꼰대인턴》 OST다. 시절 인연은 모든 것에는 마땅한 시기가 있다는 의미,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온다는 뜻을 지닌 철학이다. 결국 오고 감에는 때가 있으니, 떠나간 사람을 가슴 아파하지 말라는 위로가 담겼다고 하면 좋으리라.

어찌 보면 사랑은 시(時)이고 인생은 시(詩)다. 이 時와 詩를 얽으면 인생의 꽃이 다시 피고, 그 꽃들이 모여서 꽃밭을 이룬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피고 지는 꽃을 바라보며, 내 마음속의 사람 꽃을 피우고 지운다.

사람이 떠나간다고 / 그대여 울지 마세요 / 오고 감 때가 있으니 / 미련일랑 두지 마세요 / 좋았던 날 생각을 하고 / 고마운 맘 간직을 하며 / 아아아 살아가야지 / 바람처럼 물처럼 /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 오는 인연 막지 마세요 / 때가 되면 찾아올 거야 / 새로운 시절 인연.

절절한 노랫말에 수긍은 되지만, 내가 노래 속 주인공이 되기는 싫다. 바람처럼 물처럼 산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가. 실바람도 나뭇가지를 스쳐 지날 때는 고운 결이 찢어진다. 그래서 마른 나뭇가지가 목이 쉰 듯한 휘파람을 불고, 시퍼런 이파리를 물고 있는 가지들이 밤새 머금었던 이슬을 햇살이 오르는 아침이 되면 눈물처럼 뚜룩뚜룩 흘리는 것이다. 도랑물도 마찬가지다. 갯가 버들가지를 지날 때는 부드러운 물결이 보일 듯 말 듯 갈라진다.

시절과 계절은 어찌 다른가. 시절은 여러 해(절기)와 해를 합친 기간이고, 계절은 1년 중 절기를 봄부터 겨울까지 나뉜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살이는 청춘과 황혼 사이에 봄도 아닌데 꽃이 피고, 여름도 아닌데 잎이 무성하고, 가을도 아닌데 단풍이 들고, 겨울도 아닌데 함박눈이 내리는, 알 수 없는 계절의 연속과 반복임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으리.

그래서 이러한 인생의 계절과 시절을 얽은 유행가가 탄생하고, 그 노래가 대중의 강퍅한 가슴을 누그려 주는 힐링과 감흥의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시절 인연> 2절 노랫말은 사람과 친구 관계의 오고 감을 펼쳤으니, 이 또한 인생살이의 넋두리이고 누구나의 발길이지 않으리.

친구가 멀어진다고 / 그대여 울지 마세요 / 영원한 것은 없으니 / 이별에도 웃어주세요 / 좋았던 날 생각을 하고 / 고마운 맘 간직을 하며 / 아아아 살아가야지 / 바람처럼 물처럼 /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 오는 인연 막지 마세요 / 때가 되면 찾아올 거야 / 새로운 시절 인연 / 새로운 시절 인연 / 사람이 떠나간다고 / 그대여 울지 마세요.

노랫말이 우리네 일상 같다. 시절 인연은 불교의 인과응보설에 의한 것, 사물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 특정한 시간과 공간 환경이 조성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중국 명나라 말기 항주 운서산 승려 운서주굉(1535~1615)이 편찬한 『선관책진』에 나온다. 시절 인연이 도래하면 자연스럽게 부딪혀 깨쳐서 소리가 나듯 척척 들어맞으며, 곧장 깨어나 나가게 된단다.

인생은 출생입사, 미완성 현재진행형 과정에서 종결점을 맞이하는 여행이다. 이 과정은 회자정리 거자필반 생자필멸이다. 사랑도 사람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은,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뜻으로, 세상일의 덧없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시절과 계절을 모티브로 얽은 노래의 금자탑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리라. 10월의 끄트머리에서, 10월이 가기 전에 부르고 들어야 할 절창~.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이 노래는 작사가 박건호가 자신의 첫사랑 실연사(失戀事)를 얽은 실화란다.

1982년 어느 날, 컴컴한 어둠 속에서 몸을 잘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한 박건호를 버스에 태워주면서, 그녀는 ‘이분 흑석동 종점에 내리게 해주세요.’라고 안내양에게 부탁을 했단다. 하지만, 박건호는 다음 정거장에서 바로 내려버렸다. 그리고 다시 버스가 온 길을 향하여 뒤돌아 달렸다. 그리고 동대문에서 창신동으로 가는 중간지점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가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는 목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꽃님씨, 사랑해요.’라고 한마디를 하고서 다시 동대문 쪽 오던 길을 향하여 달렸다.

그날이 9월 마지막 날이다. 그래서 원래 이 노래 첫 소절 가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9월의 마지막 밤을’이었으나, 노래 발표가 늦어져 ‘10월의 마지막 밤’으로 수정되었단다. 이 노래는 원래 조영남이 음반을 내려고 했었단다. 하지만 울림과 떨림 목청으로 열창한 24세였던 이용이 노래의 주인공이 되었다. 시절 인연의 끈이 이용과 닿은 것이다.

<시절 인연>을 작곡한 알고보니혼수상태는 본명 김경범과 김지환이다. 이 김지환이 이 노래 작사가이기도 하다. 김경범은 1985년 수원 출생, 김지환은 1988년생이다. 이들은 작곡팀 플레이사운드에서 함께 활동하다가 2020년 중반부터 김경범의 예명인 알고보니혼수상태를 듀오 팀이름으로 사용한다.

김지환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작곡한 <샤방샤방>이 벅스·쥬크온 음악장학금프로젝트에서 수상하고, 이 곡을 박현빈이 부르게 되면서 작곡가로 데뷔했다. 이후 김경범을 만나서 듀오 팀을 꾸렸다. 이들의 만남은 우연한 기회에 서로 다른 이에게 전화 통화를 하던 중 눈길이 마주친 것이 인연이 되었단다. 그 당시 김지환은 태진아와, 김경범은 송대관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니, 사람 인연 모를 일이고 참으로 묘하다. 처음 둘이 말을 섞으면서는 서로가 사기꾼인 줄로 알았었단다.

1996년 울산 출생, 대구에서 성장한 이찬원은 13세 무렵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하여 트로트 신동으로 인기를 얻었다. 미스터트롯에서 이찬원은 특유의 구수한 목소리로 진또배기를 부르며 최단기간에 올 하트를 받았고, 마스터이던 가수 진성은 최초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찬원은 대구의 조영남, 청국장 목소리라는 별명도 달고 다닌다. 대구 용산동에서 막창집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송해공원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다가 다른 일을 한다는 풍문이 들려온다. 아들이 유명해지면 부모의 일상도 화젯거리가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OST는 1927년 <낙화유수>이고, 최초의 라디오드라마 OST는 1956년 <청실홍실>로 친다. 1960년대는 주제가를 부른 가수가 히트반열에 올랐다. <동백아가씨>, <외나무다리>, <백치아다다>가 그 시절의 OST들이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서 21세기에 불어온 트로트 열풍은 팬덤이라는 유행을 몰고 왔다. ‘내 가수’라는 공감대를 형성한 감성덩어리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오빠부대나 누나부대가 있었지만, 이와는 다른 바람결이다. 오늘날 인기 가수에게는 그들만의 감성나라가 형성된다.

이 감성나라는 인기왕국 같은 공감의 굴레인데, 제도와 시스템으로 제어하거나 부양할 수 없는, 요동침이 일렁거리는 덩어리이다. 이 덩어리에는 바람도 없고, 불꽃도 없고, 물결처럼 일렁거리지도 않지만, 거센 회오리 같은 감성 에너지가 있다.

이러한 공감덩어리의 에너지원 가수들은 저마다의 색깔과 향기와 무늬가 각양각색인데, 그들의 목청을 넘어오는 노래들은 열에 칠팔이 리메이크 곡조이다. 안타까운 열풍이다. 새 노래 신유행가가 아쉽다.

인생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멀어지는, 찾고 잃는 과정의 연속이다. 사람을 채우는 곳간이 그득한 사람, 마음의 창고는 있으나 그곳이 텅 비어 있는 사람~. 나는 누구인가? 그대는 뉘신가? 우리라고 부르는 우리, 그 우리(we)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면에서 이찬원의 <시절 인연>이 그의 팬덤들로부터 더욱 찐~한 사랑을 받으리라는 마음이 앞선다. 찬원마을 파이팅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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