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종호 한국강소기업협회 상임부회장·경영학박사
나종호 한국강소기업협회 상임부회장·경영학박사

과거 10만 원이었던 주식을 20대1로 액면 분할하면 해당 주식은 5000원이 된다. 그러면 거래가 재개되는 첫날에 대체로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른다. 왜 그럴까? 액면분할 후 과거 10만 원이었던 주가가 5000원으로 바뀌면 투자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식 가격이 싸졌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 때문이다. 앵커링효과(Anchoring Effect)란 먼저 제시한 숫자, 사물이 사람들 머릿속에서 항구에 정박한 '배의 닻 (anchor)'과 같은 기준점이 되어 그 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고객을 만나 다양한 상품을 갖고 판매 협상을 할 때, 처음에는 가능하면 고가상품을 먼저 보여준 후, 그 다음에 다소 저렴한 상품을 보여주면 고객은 나중에 보여준 상품이 싸게 느껴지기 때문에 구매할 확률이 높아진다. 식당 메뉴판 첫 페이지에 8만원, 그 다음 페이지에 4만원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면 4만원이 실제 싼 가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주 적절한 가격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과 같은 효과다.

처음에 어떤 기준선을 두어 소비자 선택이 달라지게 하는 앵커링효과를 이용, 판매성과를 높일 수도 있다. 예를들어 정가 5만원인데 ‘X’ 표시를 하고 3만원에 할인해서 판다고 하면 판매가 늘어난다. 먼저 제시한 가격이 인상적인 기준점이 되어 그 후의 할인가격을 싸게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앵커링효과는 제품에 대한 정보나 기준가격이 없을 때 더 큰 효과가 있다. 최초 개념의 신제품을 출시할 때 기준이 되는 시장가격이 없기 때문에 높은 마진의 고가로 출시해도 가격저항이 별로 없다. 애플은 이런 전략으로 경쟁대비 높은 이익률을 확보해 왔다.

라면을 파는 식당에서 고객이 주문할 때 A직원은 "라면에 계란을 넣을까요?”하고 질문을 한다. 반면에 B직원은 "라면에 계란을 1개 넣을까요, 2개 넣을까요?”하고 질문을 한다. 어느 직원이 판매를 더 많이 할까?

B직원이 A직원보다 더 많은 판매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B직원처럼 질문을 하면 대부분 “1개요” 또는 “2개요”라고 대답을 하지만 A직원처럼 질문을 하면 "필요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고객도 많기 때문이다. 이것도 앵커링 효과다.

고급 백화점에 3000만원짜리 명품 가방을 진열하는 것 역시 앵커링 효과를 이용한 판매다. 소비자들이 3000만원짜리 가방을 사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300만원짜리 가방이 그다지 비싸지 않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고가의 주요상품을 구매한 고객한테 그 상품의 보완재에 해당하는 저렴한 상품의 구매를 권유하는 경우에도 앵커링효과가 응용된다. 예를 들어 고가의 차량을 구매하기로 결정한 직후 차량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한 네비게이션이나 블랙박스 등을 제안하면, 가격이 아주 저렴하게 느껴져서 쉽게 구매를 결정하게 된다.

과거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방위비를 5배까지 증액을 요구한 적이 있다. 그 당시 1조원 정도였던 방위비를 5조원 정도로 올려달라는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협상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에 5조원 정도를 요구하고 나서 협상 후 2조원으로 합의가 된다면 100% 큰 증액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협상의 귀재라는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이 엥커링효과를 잘 활용하여 사업가로서 큰 돈을 벌었고, 주변국들과의 정치협상에서도 이 엥커링효과를 자주 이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앵커리효과를 더 크게 느끼게 하기 위해 압박수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먼저 기준가격을 제시하고서 상대가 수용하지 않으면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시한 방위비 분담금을 수용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흘리는 것도 마찬가지 압박이다.

앵커링 효과란 일종의 왜곡 현상이다. 닻을 내린 배가 크게 움직이지 않듯 처음 제시된 정보가 기준점이 돼서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앵커링 효과는 법정, 가정, 직장 등에서 기존의 평가나 이미지, 첫인상 후에 그 다음의 평가나 판단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마케팅 자원이 열악한 중소기업은 이런 앵커리효과를 잘 활용하면 별도의 자원 투자 없이 거래 협상이나 판매에서 상당히 유리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사단법인 한국강소기업협회

나종호 상임부회장(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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