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1938년 4월 20일은 아돌프 히틀러의 49세 생일이었다. 그날의 사진은 오늘날 세계 최대 자동차 그룹(지난해 매출액 기준)의 초기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히틀러가 바라던 국민차 모형을 가져왔다. 딱정벌레처럼 생긴 모형을 보며 포르쉐의 설명을 듣는 히틀러는 냉혹한 독재자의 얼굴을 잠시 내려놓고 장난감 차를 선물 받은 아이처럼 웃고 있다.

히틀러는 포르쉐의 숭배자였다. 뮌헨 폭동으로 수감됐을 때도 다임러 신모델을 챙겨볼 정도로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그였다. 1933년 총리가 된 그는 값싼 국민차 개발과 아우토반 건설 계획을 발표한다. 대량 실업을 해소하고 불황을 넘는 데도 묘수가 될 터였다. 이듬해 그는 ‘자동차는 부자들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비판하며 보통사람도 차를 살 권리가 있다고 선언한다.

포르쉐와 히틀러는 1934년 초 총리관저에서 만났다. 1250cc 엔진을 뒤쪽에 단 최고 시속 100km의 소형차를 1000라이히스마르크 이하로 판다는 기본 계획이 정해졌다. (이 차의 기본 설계는 1925년 열여덟 살의 벨라 바레니가 빈의 공업전문학교 과제로 제출한 것과 같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KdF(기쁨을 통한 힘)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차는 오펠의 동급 차 절반 값이었다. 히틀러는 1939년 50세 생일에 1호 차를 선물로 받았다.

하지만 그해 가을 2차 대전이 터지면서 첫해 생산은 600여 대에 그쳤다. 전후 영국군 사령부는 전쟁 배상금 조로 생산설비를 영국으로 가져가려다 생각을 바꾼다. 영국 자동차 업계는 폭스바겐으로 이름을 바꾼 이 딱정벌레 차가 기본적인 기술적 요건도 갖추지 못했고 추하고 시끄럽다며 무시했다. 폭스바겐은 결국 1949년 독일에 반환되고 연방 정부 지시에 따라 니더작센주가 경영관리를 맡게 됐다.

1960년 독일 정부는 경제부흥의 상징이 된 폭스바겐을 민영화했다. 주식 60%를 국민주로 팔고 나머지는 연방과 주 정부가 각각 20%씩 보유했다. 그 후 연방 정부는 지분을 다 팔았으나 니더작센주는 지금까지 20%를 조금 넘는 지분으로 실질적인 거부권을 갖고 있다. 포르쉐의 폭스바겐 인수가 좌절된 것은 이른바 폭스바겐법에 따른 이 거부권 때문이었다.

독일법에 따르면 통상 75%의 지분을 확보하면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독 폭스바겐만 그 기준을 80%로 정한 것은 잘못이라며 법을 고칠 것을 요구했다. 인수전에 나선 볼프강 포르쉐와 벤델린 비데킹도 독일 정부가 결국 법을 바꿀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낙관했다. 75% 지분만 확보하면 폭스바겐 경영권을 움켜쥐고 이 회사 금고의 엄청난 현금을 이용해 인수 과정에 진 빚을 갚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2008년 4월 15일 베를린의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크리스티안 불프 니더작센주 총리(훗날 독일 대통령)가 마주 앉았다. 포르쉐의 폭스바겐 인수에 반대하는 불프는 니더작센주의 거부권을 유지해 달라고 총리를 설득했다. 그해 11월 연방의회는 거부권을 살려두는 새 법을 통과시켰다. 폭스바겐의 총수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불프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불프가 그를 교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에히는 특유의 정치술로 불프를 끌어들여 유럽연합의 압력을 막아냈다.

폭스바겐의 경영권 향배에 독일 연방과 지방 정부가 얼마나 큰 관심을 쏟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화는 많다. 2000년 당시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피에히에게 전화를 걸어 귀띔해주었다. 자크 나세르 포드 최고경영자가 자사가 폭스바겐 지분을 인수하면 독일 정부가 반대할 것인지 물어왔다는 것이었다.

폭스바겐법의 거부권 조항 폐지를 전제로 75% 지분 확보에 올인했던 포르쉐는 궁지에 몰렸다. 독일 기업의 인수전에 정치 논리가 얼마나 강하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물론 포르쉐가 노렸던 폭스바겐 곳간의 현금은 결국 포르쉐의 빚을 갚는 데 쓰이게 되고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이 이 거대 자동차그룹을 지배하게 된 것은 앞서 본 대로다.

히틀러와 포르쉐의 합작품이었던 이 국민차 기업은 3세대 경영자들의 불화와 극적인 반전을 부른 인수전 끝에 포르쉐 후손들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피에히 몰래 감행한 포르쉐의 공격은 기업 인수·합병을 둘러싼 월가의 혈투를 방불케 했다. 그러나 노동자와 지방 및 중앙정부가 함께 인수전에 입김을 미치는 것을 보면 영미식 자본주의가 독일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완전히 대체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