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한국대중가요사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택과 관계를 해학·풍자·익살·직설하는 유행가 또 탄생했다. 2023년 8월 영탁이 포효한 <우길 걸 우겨>가 그 노래다. 유행가는, 그 노래 탄생 시점의 시대 이념(상황)과 대중(사람)들 삶을 은유 또는 직유 하는 서사와 서정을 얽은 노래의 이름패다. 참 많이 기다렸다. 이런 신유행가(新流行歌)의 탄생을.

What did you say?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길 걸 좀 우겨, 수많은 사람들이 referee(심판)가 되어 지켜보고 있잖아. 그 오랜 시간들이 다~ 진실이 뭔지를 밝혀주네. 그렇다. 세상살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택과 관계란, 밝은 낮과 어두운 저녁까지 쭈욱~ 하늘이 내려보고 있음이다. 혼탁한 21세기 대한민국, 거북스러운 TV 화면과 요광(搖狂)스러운 각양의 유튜브 화면을 연상하면서 1절 가사를 먼저 펼쳐드린다.

들어 봐 들어 봐 들어 봐 바 / 그래 넌 대체 뭘 그리 원해 / Not again No Jam / 고 정도에서 그만할래 / 더 말해 뭐해 / 한 번이면 족해 / 더 이상은 안돼 / 보여 봐 보여 봐 보여줘 봐 / 말로만 자꾸 떠들면 뭐해 / Not a game No chance / 우겨도 안 될 건 안 돼 / 더 발악해 봤자 / 별수 없네... / What did you say? / 우길 걸 좀 우겨 / 수많은 사람들이 referee가 되어 / 우릴 지켜보는데... / 그 오랜 시간들이 다 / 진실이 뭔지를 밝혀주네 / 제발 우기지 좀 마.

노랫말에 오늘날 우리가 자주 접하는 울퉁불통한 현상과 모양들이 아롱져 있다. 보고 싶지도 않고, 화면에 어른거리면 더 울화가 치미는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노랫말이, ‘더 말해 뭐해, 말로만 자꾸 떠들면 뮈해~.’이다.

그들의 현란한 말 돌림과 얼굴색 바꾸기에 또 한 소절을 더한다. ‘잠시 멈춰서서 돌아볼래, 수많은 사람들이 심판이 되어 지켜보고 있는데~ 그들이 진실이 뭔지를 밝혀 주는데...’

이 대목에서 노랫말을 작사한 영탁과 지광민의 고뇌와 숙고가 묵직하게 와 닿는다. 현실을 풍자하면서 과녁을 향하여 날아가는 듯한 말(言) 화살 소리가 쉬익~ 들린다. 이 소절은 적확(的確)하게, 그 사람들의 가슴팍에 명중했으리라. 하지만 외면하거나 돌연 얼굴색과 태도를 또 바꾼다.

<우길 걸 우겨> 노랫말은 우리 민족 고유의 풍자 시조(時調)와 흡사하다. 시조는 그 시절(때·상황)을 관조·은유하는 풍류였다. 여기서 시는 시간(때)의 의미다. 이를 글자를 말 줄임과 압축을 의미하는 절 말(寺+言), 시(詩)로 음유하면 안된다.

이 대목에서 1820년대 영월 백일장에서 스무 살 나이의 김병연이 홍경래난(1811~12)의 논공을 필설한 시문답이 엇대인다. 그날 시제(試題)는 ‘논 정가산 충절사 탄 김익순 죄 통우천’이었다. 이에 대한 김병연의 답글을 펼쳐보자. 오늘날 세파에 얼굴을 내밀고, 국민을 우롱하는 듯한 고위 관료들이 스스로 가슴팍을 들여다보면서 음유할 답안지다.

‘대대로 임금을 섬겨온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鄭公)은 경대부에 불과했으나, 농서의 장군 이능처럼 항복하지 않아, 충신열사들 가운데 공과 이름이 서열 중에 으뜸이로다. 시인도 이에 대하여 비분강개하노니, 칼을 어루만지며 이 가을날 강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중략) 태평세월이던 신미년에, 관서 지방에 비바람 몰아치니, 이 무슨 변고(홍경래난)인가. 주(周)나라를 받드는 데는 노중련 같은 충신이 없었고, 한(漢)나라를 보좌하는 데는 제갈량 같은 자 많았노라. 우리 조정에도 또한 정충신(鄭忠臣)이 있어서, 맨손으로 병란 막아 절개 지키고 죽었도다. 늙은 관리로서 구국의 기치를 든 가산(현, 박천) 군수(정저)의 명성은, 맑은 가을 하늘에 빛나는 태양 같았노라. 혼은 남쪽 밭이랑으로 돌아가 악비와 벗하고, 뼈는 서산에 묻혔어도 백이의 곁이라....(하략)’

이 답안지를 작성할 당시 김병연은 김익순이 자기 자신의 친할아버지 임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이날 장원을 하고서 집에 돌아와 어머니로부터 혈육 관계와 가정사를 알아차리고, 스스로 조상을 모독한 죄인으로 여겨 삿갓을 쓰고 35년여를 방랑하다가, 1963년 전라도 화순 동복 지방 안참봉의 사랑채에서 한 많은 57세의 생을 마감했다. 이 김병연의 일생을 얽은 유행가가 명국환의 절창 <방랑시인 김삿갓>이다.

<우길 걸 우겨> 노랫말, ‘너는 누구의 녹을 먹는 신하(국민의 머슴)이더냐?’에 현실 속의 여러 사람의 묘한 표정과 유체를 이탈한 듯한 말꼬리들이 연상된다. 도대체 영혼과 상식이 없거나, 형체가 다른 것처럼 여겨지는 돌아이(石頭)로 여겨지는 이들이 참 많은 세상이라 갑갑하다. 또 이어지는 영탁의 노랫말을 펼친다.

적어 봐 적어 봐 적어 봐 바 / 자꾸만 잊어버리면 안 돼 / Get away 손 떼 / 우겨도 안 될 건 안 돼 / 더 발악해 봤자 / 재미없네 / 눈을 감고 한번 느껴 볼래 / 뭐가 옳은 일인지 / What did you say? ...

노랫말이 직설화법이다. 노래 속 화자의 답답함과 활화산 같은 속내가 부글거린다. ‘꺼져 손 떼, 더 발악하지 마, 눈을 감고 한 번 느껴봐. 더티 플레이. 제발 웃기지 좀 마~.’ 일견 속이 후련하기도 하다. 유행가의 대리 감흥 매력이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이런 노래는 두 곡이 있다. 정치권의 미운털이 박혔던 박재홍의 <물방아 도는 내력>과 <유정천리>가 그 노래다. 이 두 노래는 작품자 의도와 상관없이 대중들의 반응이 불길 같았다. 유행가의 마력과 매력이 바로 이런 대중들의 반응이다.

<물방아 도는 내력>(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은 그 시절 정치판의 미운털이 박힌 곡조였다.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길삼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이 노래는 감투를 쓰고 벼슬살이를 하면서 헛발질을 하는 이들에게 소가 웃음을 보낸 곡이다. 이 노래로 박재홍은 정치판에서 미운털이 박힌다. 6.25 전쟁 중 임시수도가 부산에 있던 시절인 1952년, 이른바 부산정치파동과 이 곡을 대중들이 연계하여 반응하였던 것이다.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로 이어진 시대 상황은,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조병옥 박사가 미국에서 수술 중 갑자기 유명을 달리 한(1960.2.15) 것이 하나의 도화선이 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슬픔에 빠진 지지자들이 이 노래 <유정천리>(반야월 작사, 김부해 작곡)를 현실을 빗대는 가사로 바꿔서 부른다.

사람들은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해공 신익희가 선거유세 기간 중 호남선 열차 안에서 이승을 등진(1956.5.5) 사건과 연계하여 더욱 비통해한다. 그 시절 대중들의 풍자 가사는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 선생 뒤를 따라, 장면 박사 혼자 두고 조 박사도 떠나갔네...’

<우길 걸 우겨>를 만들고 부른 영탁은 한국대중가요사의 음탁(音擢)이다. 뽑아 들어야 할 음악적 재목이다. 조용필·나훈아·송창식·심수봉의 뒤를 이어가리라. 영탁은 가수가 아니라 가요예술가다. 본명 박영탁, 1983년 문경에서 출생하여 안동에서 성장한 노래예술나무. 이들은 싱어송라이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저마다가 하나의 장르이다. 남들과 경쟁하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가편(加鞭)하며, 최고가 아닌 최초를 지향해 가는 예인들이다.

사람의 본성은 흰 명주실과 같다. 이 실은 물이 잘 든다. 푸른 물감, 노랑 물감, 붉은 물감 등 어느 색깔이든 받아들인다. 맹물도 마찬가지로 색깔 있는 잉크 물이 잘 든다. 봉건시대 백성들도 공화 시대 국민도 명주실과 맹물처럼 본심은 희고 맑다. 그런데 이들에게 생각의 물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들려줄 노래가 <우길 걸 우겨>이다. 여의도 양말산 자락에서 스산한 바람, 정풍(政風)이 벌렁거린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