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다윈 스미스가 누구야? 그의 이름을 듣는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되묻는다. 위키피디아가 소개하는 스미스(1926~1995)의 프로필은 단출하다. 1971년부터 1991년까지 킴벌리 클라크의 CEO였으며 인디애나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다는 것이 전부다.

지난해 200억 달러 남짓한 매출을 올린 킴벌리 클라크는 ‘크리넥스’ 티슈와 ‘하기스’ 기저귀를 만드는 소비재 회사다. 본래 1872년 위스콘신주의 제지공장으로 출발했다. 스미스가 CEO가 되기 전 20년 동안 이 회사 주가는 전체 시장보다 36% 뒤졌다. 그가 이 회사를 이끈 20년 동안 주식의 누적수익률은 전체 시장의 4.1배에 달했다. 한 세기 동안 이어진 전통적인 제지사업을 팔아버리고 프록터 앤드 갬블(P&G) 같은 강자들이 버티고 있는 소비재 사업에 역량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디어나 월가 분석가들이 어리석다고 한 결단을 내린 이가 바로 다윈 스미스다. 그는 케케묵은 제지회사 킴벌리 클라크의 극적인 턴어라운드를 주도했다. 그런데도 스미스는 왜 MBA 과정 학생들에게조차 생소한 이름으로 남았을까?

경영의 구루 짐 콜린스는 스미스의 지극한 겸양 때문이라고 봤다. 인디애나의 가난한 시골 출신인 스미스는 낮에는 농기구와 중장비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 대학에 다녔다. 작업 중 손가락 하나를 잃었을 때도 그날 밤 학교에 가고 이튿날 일하러 나왔다는 전설도 있다.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그는 킴벌리 클라크의 사내 변호사로 있다가 CEO가 된다.

CEO가 된 스미스는 불과 몇 달 뒤 비강암과 후두암으로 길어야 1년밖에 못 살 거라는 진단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이나 회사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다. 조금도 거만하지 않고 늘 수줍은 듯한 그는 사실 유약하지 않았다. 회사 재건을 위해 100년 된 핵심사업을 갈아치울 만큼 남다른 결단력과 의지력을 겸비했다.

콜린스는 여기서 역설적인 결론을 내린다. 단순히 훌륭한 기업이 아니라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 사례들을 모아보면 예외 없이 개인적으로는 지극한 겸양을 잃지 않으면서도 회사를 위해서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CEO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경영능력의 5단 계층 구조를 제시했다. 피라미드 구조의 맨 아래에는 능력이 뛰어난 개인이 있다(1단). 그 위에는 팀에 공헌하는 구성원(2단), 유능한 관리자(3단), 효과적인 리더(4단)가 있다. 맨 꼭대기에는 아주 드물기는 해도 개인적 겸양과 직업적 의지를 역설적으로 결합해 지속적인 성과를 내는 5단(레벨 5) 경영자가 있다.

짐 콜린스의 연구팀은 1965년부터 1995년까지 포천 500대 기업에 오른 1400여 기업을 대상으로 고르고 고른 11개의 위대한 기업(애벗, 서킷시티, 페니 메이, 질레트, 킴벌리 클라크, 크로거, 뉴코, 필립 모리스, 피트니 보즈, 월그린즈, 웰스파고)을 선정했다. 어떤 전환점 이후 15년 동안 주식 투자 수익률이 전체 시장의 3배가 넘는 지속적인 고성과 기업들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과연 어떤 특성을 가진 기업들이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하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당초 콜린스는 팀원들에게 경영진과 리더십은 보지 말라고 지시했다. 중세 이전 사람들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들은 모두 신의 뜻으로 돌렸듯이 고성과 기업을 모두 탁월한 CEO의 리더십 덕분으로 돌리는 단순한 사고를 피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데이터를 무시할 수 없었다. 도약에 성공한 기업들에는 예외 없이 5단 경영자가 있었고 실패한 기업들은 그런 리더십이 부재하는 고질적 패턴을 보였다. 물론 이런 방식의 연구 결과를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성공 법칙 같은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인과관계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겸손하고 의지력 있는 CEO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따라 하기만 하면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지속적인 고성과 기업들은 그 후광효과(halo effect)로 모든 면이 잘나 보이는 법이다. 흔히 눈부신 성과를 낸 기업들을 돌이켜보면 리더십도 전략도 기술도 다 탁월해 보인다. 선견지명이 아니라 후견지명을 과신해서도 안 된다. 영원히 날아오르는 기업은 없다. 실제로 콜린스가 위대한 기업으로 추려낸 기업 중 서킷시티는 파산했고 페니 메이는 정부 구제를 받았다.

이처럼 성공한 기업 CEO의 특성을 경험적, 귀납적으로 알아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겸양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면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는 그 반례에 해당하는 것일까? 탁월한 CEO가 기업을 도약으로 이끌었다면 그가 떠나면 기업도 추락하는 것일까? 질문은 끝이 없다.

그럴수록 위대한 기업의 CEO는 과연 무엇이 다른지 알아보려는 노력은 더 깊이 있게 이뤄져야 한다.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는 이런 노력에서 영감과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뉴코의 켄 아이버슨과 질레트의 콜먼 모클러의 사례를 봐도 그렇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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