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언론인
【중소기업신문】지방자치제도의 정신은 풀뿌리 민주주의다. 주민 참여를 통한 민의의 존중이 기본이다. 그러나 20년이 넘은 한국의 직선 지자제는 기로에 서있다. 지자제가 정당정치의 볼모로 되어 주민 자치라는 지고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는 기초자치단체장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정당공천으로 인한 잡음과 고비용․저효율의 선거구조, 중앙정치의 대리전 양상으로 일선 행정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등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방 정가에서는 정당공천 폐지를 총․대선 공약에 넣으라고 촉구까지 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초자치단체장 정당공천 폐지는 행정전문가의 86.8%가 지지하고 있으며 일반 국민은 46.7%가 지지, 36.2%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정당공천은 책임정치를 구현한다는 명분에서 시작했지만 지자제를 위협하는 문제점이 너무나 많다. 지방선거에서 공천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회의원들은 관할 기초 자치단체장이나 기초의원들의 상급자처럼 행세하며 이들을 선거에 이용한다. 자신의 지역구에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은 공천에서 배제하며 키우지 않는다.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한 최적, 최상의 인물을 ‘공천’하는 게 아니라 당과 특정인을 위한 기여도를 우선시하는 사실상의 ‘후보 임명’이다. 때문에 무능한 악화가 청렴하고 유능한 양화를 구축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에 따라 부패한 파당 정치의 엽관주의적인 독소가 지방자치제도를 전염시키고 있다. 4․11총선 당시 광주시에서 선거운동을 하던 동장이 투신자살한 것도 이런 지자제의 먹이사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으로 서울 양천구청장에 당선된 이훈구 후보는 고졸 검정고시를 대리로 치르게 한 것이 적발돼 당선무효로 재선거를 치렀다. 주민들은 사퇴한 구청장과 한나라당을 상대로 20억4,000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을 공천해 지자체에 재선거 비용을 들게 한 정당은 검증 부실에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이름만의 ‘공천’으로 주민을 기만한 데 대해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또 지자단체장의 당적 보유는 중앙당과 지자체 간에 이익의 충돌을 유발할 수 있다. 중앙당의 ‘정치’가 곧 지자체의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한․미 FTA에 반대했지만 같은 당 송영길 인천시장은 경제자유구역 활성화가 긴요해 찬성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적대로 지자체장은 당이 다르면 중앙정부와 껄끄럽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노 정권의 국무회의에 참석이 배제됐다. 단체장과 지방의회 다수파의 당적이 다를 때에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 사사건건 충돌이 일어나 지자단체장은 ‘식물 시장’이 되기 쉽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의 긴장이 그런 류일 것이다. 반면 같은 당이 시장과 의회를 장악하면 ‘제 식구 감싸기’로 의회는 본연의 견제와 감시 기능이 소홀해지기 쉽다. 정치적으로 너무 튀는 지자단체장도 생긴다. 이는 모두 무당적으로 대안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많은 국가가 지방 고유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지방 자치에 무당파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기초의회 선거는 정당공천 배제가 80%를 넘는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에서는 아예 당적을 금지한다고 한다. 이웃 일본의 기초의회인 市․區․町․村 의회는 2009년 말 현재 의원 총원 3만4,201명 중 무소속이 73%인 2만4,994 명으로 각종 당적보유자 8,600여 명 보다 3배나 많다. 기초지방의회에 정당은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지방자치법은 소규모 町․村에서 의회 대신 선거권이 있는 주민 전원으로 구성하는 町․村총회의 설치를 인정할 정도다. 그야말로 풀뿌리 민주주의다.

한편 해외 각국의 지방의회는 자원봉사가 대세다. 굽여는 회의 수당과 교통비 정도다. 의원들의 과도한 급여는 정치권 인사를 지방선거 공천으로 보상하려는 유혹을 정당에게 주어 지자제의 본질을 망각시키고 부정부패의 원인이 되기 쉽다. 선거운동도 과열된다. 문제점을 인식한 지방에서 지자제를 정치 중립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날로 거세지고 있지만 가장 큰 수혜자이자 칼자루를 쥔 국회의원들은 외면하고 있다. 지방분권을 발전시키려면 국회는 더 늦기 전에 지방자치의 초심으로 되돌아가 정당 예속 탈피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한다.

글 원문 : 의회신문 www.icounc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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