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두 회사가 합치는 것을 두고 어떤 언론은 ‘천국의 결혼’이라고 했다. 2005년 1월 28일 한 해 500억 달러대 매출을 올리는 프록터앤드갬블(P&G)과 연 매출 100억 달러대의 질레트가 합병하겠다고 발표했을 때였다. 합병회사는 매출이 600억 달러에 못 미치는 유니레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소비재 제조업체가 될 터였다. P&G는 질레트의 몸값을 시가에 18%의 프리미엄을 얹어 570억 달러로 쳐주었다. 세계 면도기 시장의 72%를 차지하던 질레트는 엄청난 결혼 축하금을 받은 셈이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신부 쪽 아버지 같았다. 당시 버크셔해서웨이는 질레트 주식 9%를 가진 최대 주주였다. 버크셔는 1989년 질레트 우선주에 6억 달러를 투자했다. 16년 후 질레트가 P&G와 합치겠다고 했을 때 배당을 빼고도 평가익이 44억 달러에 이르렀다. 연평균 수익률이 14%에 달했다. 합병 발표 당일에만 지분 가치가 7억 달러 넘게 불어났다. 버핏이 함박웃음을 보인 건 당연했다. 그는 “이 합병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소비재 업체를 창조할 것”이라며 “꿈의 딜”이라고 축복했다.

당시 기업 합병의 성공률은 낮았다. 결혼한 기업 다섯 쌍 중 네 쌍은 행복하지 않았다. 큰 기업끼리 허세를 부리며 떠들썩하게 한 결혼, 경쟁 압력에 떠밀려 하는 결혼은 파경에 이를 확률이 훨씬 높았다.

P&G와 질레트의 경우는 그런 결혼과 여러모로 달랐다. 우선 결혼하는 두 기업 모두 재무적으로 매우 건강한 상태였다. 당시 P&G의 연간 이익은 65억 달러로 4년 새 두 배 넘게 불어났다. 질레트의 연 매출은 3년 새 103억 달러로 역시 4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합병으로 덩치를 키우면 협상력은 그 이상으로 커질 수 있었다. 공급가를 낮추려는 월마트 같은 거대 유통업체의 압력에 대응하는 데 훨씬 유리할 것이었다.

‘팸퍼스’ 기저귀와 ‘타이드’ 세제, ‘크레스트’ 치약을 만드는 P&G는 여성을 상대로 한 마케팅에 전문성이 있었다. 질레트는 남성 고객을 상대하는 데 강점이 있었다. 둘 다 매출의 10% 정도를 광고비로 썼는데 그것을 통합함으로써 미디어와의 협상을 더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다. 신시내티(P&G)와 보스턴(질레트) 출신 기업이 결합하면 국제결혼처럼 완전히 낯선 기업들끼리 합치는 것보다 문화적인 이질감도 덜할 터였다.

물론 모든 결혼이 그렇듯이 이 결합도 여러 가지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 기업이 유기적 성장에 머물지 않고 인수와 합병으로 덩치를 키우면 흔히 전략과 문화의 충돌, 경영관리의 어려움과 인력 구조조정으로 홍역을 치른다. 합병 후 2년 남짓 지났을 때 P&G 최고경영자 앨런 래플리는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큰 리스크를 지고 합병을 단행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기업 결합이 실패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들며 P&G의 경우는 그 위험을 다 피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첫째, 합병에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전략적인 윈윈을 생각해야 했다. 결혼하는 두 회사가 보완적인 면이 전혀 없거나 완전히 다른 전략을 추구하면 실패한다. 그러나 P&G와 질레트는 브랜드와 목표 시장 면에서 서로를 잘 보완했다. P&G는 혁신에 능하고 고객을 잘 이해했다. 강한 기술력을 지닌 질레트는 몇 주 안에 새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실제로 P&G는 남성을 겨냥한 신제품을 내놓고 질레트는 여성 고객을 위한 제품을 새로 출시했다.

그다음에는 문화적인 충돌을 피해야 했다. P&G는 합의를 중시하는 데 비해 질레트는 위계적이었다. 래플리는 두 문화의 강점만 살리기 위한 특별팀을 만들었다. 질레트 쪽 인사에게 P&G의 북미지역 총괄을 맡기고 질레트 직원 95%를 유지했다. 세 번째로 두 기업 수장들이 불화를 겪지 않게 해야 했다. 질레트의 최고경영자 제임스 킬트는 합병 후 1년을 더 머물며 래플리와 잘 지냈다. 2001년 질레트에 왔을 때 그의 연봉은 440만 달러로 낮은 편이었다. 떠날 때는 질레트와 P&G 스톡옵션으로 1억 5000만 달러를 챙길 수 있었다.

네 번째는 원가 절감에 성공해야 했다. 두 회사 노조는 제조와 마케팅, 유통의 효율성을 높여 3년 내 12억 달러를 절감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약속한 매출 증대를 이뤄야 했다. 합병회사가 성장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진정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없었다. P&G와 질레트는 3년 동안 연 7억5000만 달러씩 매출을 늘리겠다고 했다. 2006년 6월 말로 끝나는 회계연도에 합병회사의 매출은 682억 달러였다. 3년 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데도 매출이 766억 달러로 불어났다.

이 결혼은 일단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질레트는 그 전에 몇 차례나 원치 않은 결혼을 강요당한 기억이 있었다. 적대적 인수 위협을 물리친 이는 1975년부터 16년 동안 최고경영자로 질레트의 도약을 이끈 콜먼 모클러였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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