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오동잎 지는 소리가 들려오던 적막한 밤이 저만치 흘러갔다. 간간이 들려오던 귀뚜라미 소리도 잠잠하다. 마른 오동잎 지는 소리와 뀌뚜라미 우는 소리에는 밤과 낮의 경계가 있고, 가을과 겨울 계절의 울타리가 걸려 있고, 가는 해(年)와 오는 새해의 마음 오솔길이 아스라하게 걸려 있다. 서걱거리며 떨어지는 마른 낙엽 소리에 포개지는 귀또리(귓도리) 소리, 쒸르 쒸르 쒸르~. 이 서정을 얽은 노래가 최헌의 <오동잎>이다.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겨울밤에, 그 어디서 들려오나 귀뚜라미 울음소리~.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 그 어디서 들려오나 귀뚜라미 울음소리 / 고요하게 흐르는 밤의 적막을 / 어이해서 너만은 싫다고 울어대나 / 그 마음 서러우면 가을바람 따라서 / 너의 마음 멀리멀리 띄워 보내 주려무나 // 고요하게 흐르는 밤의 적막을 / 어이해서 너만은 싫다고 울어대나 / 그 마음 서러우면 가을바람 따라서 / 너의 마음 멀리멀리 띄워 보내 주려무나.

노래 속의 귀뚜라미는 깊은 밤 적막 속에 스스로를 가둔 화자(주인공)이다. 귀또리는 노래를 하고 있는데, 주인공은 울고 있음이여~. 어이해서 너만은 오동잎 지는 소리가 싫다고 울어대나. 하여, 그 서러운 마음을 가을바람에 실어 멀리멀리 보내고 싶은 서정, 그 적막 속에 한 장만 남은 2023년 달력이 마른 낙엽처럼 달랑거리고 있다.

최헌의 가수 일생 최대걸작, <오동잎>은 우리나라 대중음악계를 ‘완전히’라고 해도 될 만큼 갈아엎은, 1975년 12월 3일 대마초사건이 발생한 시기에 탄생한 노래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서 대마초 사건은 해피스모그 사건으로 통한다. 대중문화예술인 학살사건으로도 통한다. 그들의 발목에 무대와 업소 출연 금지의 족쇄가 채워지고, 입에는 발성 금지와 다름이 없는 규제의 반창고가 부쳐졌었다.

대마초(大麻草)는, 마취 또는 환각 작용이 있는 대마의 잎이나 꽃을 말려서 담배처럼 말아서 피울 수 있도록 만든 마약의 일종이다. 대마는 마(麻) 또는 삼이라고도 한다. 이 대마에 대한 기록은 BC 2737년 『중국 의학개론』이 최고 기록이고, 19세기 초 미국 등 서구에 전파되었고, 대마의 잎이나 꽃을 말린 것을 마리화나(marijuana)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대마의 줄기를 이용해 삼베로 짜서 옷이나 보자기 등 생활용품으로 활용해 왔으나, 흡입 담배 형태로는 베트남전쟁(1964~1973) 이후, 주한미군(외국군)을 통해 유입되었다는데, 바람결에 일렁거리는 전갈이다.

대마초, 이 신비한 풀은 1975~1976년까지 우리나라 내로라하는 연예인들을 암흑구덩이로 몰아넣었다. 이 괴이한 풀, 요초(妖草)와 관련된 이들은 방송은커녕 밤무대에도 서지 못했다고 해야, 그 시대 상황을 적확하게 묘사한다. 손과 발에 족쇄를 채우고, 입에는 폐음(閉音) 마스크를 채운 샘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예술과 현실 생활의 절벽에 서야만 했었다.

권위의 갑옷을 걸친 제도권 칼바람이 불어오던 그 시절, 최헌은 27세였다. 이때 발표하여 최고 절정에 오른 노래가 트로트고고 <오동잎>이다. 통칭 뽕짝고고로도 불렸다. 《트로트》라는 괴이한 이 말(용어)이 고유한 우리의 것인 양, 통념적인 인식의 살이 통통하게 붙던 시기다.

이처럼 생겨난 지도 모르게 탄생하여 21세기 오늘까지 통용되는 이 《트로트》는, 우리 것(말·용어)으로 대체 해야 할 왜래적인 옹이로 자리 잡고 있다. 옹이는 나무줄기나 가지에 난 상처가 성장하면서, 그대로 아물어진 흉터 덩어리다. 이는 목재를 가공할 때 장애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한국 대중가요 100년사에 걸려 있는 옹이 같은 단어, 《트로트》라는 말을 시술해야 하는 것이다.

그 시절, 대중예술인들은 서슬 시퍼렇던 권위의 상징이자 실제이던 저들(공권력, 경찰·검찰·판사 등) 앞에서 몸과 마음을 잔뜩 움츠렸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떤가. 이들(공권력)과 저들(정치꾼·예술인 등) 사이에는 협잡과 희화와 비아냥과 회피와 감성적 대결이 허다하다. 공생과 상생의 삶 공동체가 우수한 세상으로 진화를 해야 하는데, 우스운 상황으로 퇴화하고 있는 이 현실이 가상하기까지 하다.

최헌은 1948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출생하여 6.25 전쟁 때 부모님의 등에 업혀서 월남했다. 자유 대한민국을 향하여 무조건 38선을 넘은 38따라지이다. 이 38따리지는, 38선을 넘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서 발걸음을 무조건 남쪽으로 내디딘 이들의 별칭이다.

최헌은 보컬과 기타리스트 활동을 주로 하던 가수다. 그는 명지대에 재학 중 미8군 무대를 시작으로 1960년대 말 차밍가이스로 활동하였고, 1970년 히식스(He6)의 보컬과 기타리스트로 <초원의 빛>을 히트시키면서 인기를 얻었다. 1974년에는 검은 나비를 결성하여 <당신은 몰라>, 1976년에는 호랑나비를 결성하여 <오동잎>을 히트시켰으며, 1977년에는 솔로로 독립하여 <앵두>, <가을비 우산 속>, <구름 나그네> 등으로 인기 절정에 이른다.

이때 최헌이 활동하던 미8군 무대는, 우리나라 미8군 무대 2기로 보면 좋으리라. 미8군 무대는 6.25전쟁기와 휴전 이후, 우리나라를 지원했던 미군의 주력이다. 이 부대는 1944년 일본 오끼나와에서, 태평양전쟁 말기 필리핀과 동남아지역 섬에서 항전하던 일본군을 섬멸하기 위하여 창설되었고, 일본 패망 후 동경에 주둔하다가 6.25전쟁을 거쳐 1955~57년 우리나라(용산)로 사령부를 이전해 온 부대이다.

이들을 상대로 대중문화예술활동을 펼친 장이 미8군 무대이다. 이는 1964년 월남전쟁 발발로 한반도 주둔 미군의 주력이 베트남으로 이전해 간 시기까지를 1기로 치면 되리라. 이 무대는 그 시절 우리 대중문화예술인들, 특히 대중가수들의 등용문 같은 역할을 했다. 1기 시절은 패티김과 현미 한명숙, 2기 시절은 조용필 등이 대표 가수 들이다.

최헌은 영혼을 울리는 특이한 허스키, 성대 줄기가 약간 찢어진 듯한 목소리의 보유자였다. 비슷한 시기에 송대관의 <해뜰날>과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같이 뜨지만, 송대관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조용필은 대마초사건에 연루되어 가요계의 물밑으로 가라앉는다. 이때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도 안타기획을 타고 떠오르고,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김정수의 <내 마음은 당신 곁으로>도 안치행·김기표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오동잎> 노래 속의 오동나무는 10~15m 높이에 이르며, 꽃이 피면 나무 전체가 보라색 꽃 덩어리다. 한 그루의 꽃만 가지고도 일대가 환하다. 이것이 오동의 특징이다. 오동은 꽃도 있으면서 거기에다가 향기도 좋다. 라일락 향 못지않다.

우리 조상들은 아들을 낳으면 소나무를 심었고,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다. 오동나무는 속성수(速成樹)이므로 20년이면 다 자란다. 딸이 시집갈 무렵이면 오동나무를 켜서 장롱(欌籠)을 만들어 주었다. 오동나무 장롱은 가벼우면서도 좀이 먹지 않는다.

해피스모그 대마초 사건은 한국 대중문화예술계라는 거목에 고엽제(枯葉製)를 뿌린 격이었다. 이로 인하여 1976년의 대중가요계는 진공상태 같았다. 이 대마초 사건은 습관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가 구속의 빌미였다. 이 시류의 꼬리를 물고 <거짓말이야>의 신중현이 서대문형무소 신세를 지었었다.

이어서 1976년 말부터 대박을 터뜨린 가수가 등장했다. 조용필·최헌·윤수일이 그 주인공이며, <돌아와요 부산항에>, <오동잎>, <사랑만은 않겠어요>가 히트곡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조용필·최헌·윤수일이 모두 그룹사운드 출신 솔로 가수라는 것, 이들의 히트곡들은 트로트 선율과 고고리듬을 결합한 트로트 고고였다. 이 틈새시장에서 빛을 본 노래들이 조경수의 <돌려줄 수 없나요>와 최병걸의 <난 정말 몰랐었네> 등이다.

1942년 섬 중의 섬,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결전지, 진도 가사도에서 출생한 안치행은 안타기획 설립 후 최헌·윤수일·박남정·문희옥·주현미·나훈아 등을 배출한다. 그는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PCC-72) 순직 장병들을 위하여 <빛이 되어>와 <그리움은 저 하늘에>를 발표했다. 첫 곡은 순직 장병들에게, 둘째 곡은 유족들에게 바치는 추모곡이다.

최헌은 2012년 9월 향년 64세를 일기로 식도암으로, 가을의 초입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노래를 들으면서, 마른 오동잎처럼 지었다. 가객(歌客)은 떠나가도 가요(歌謠)는 남는다. 흐른다. 머나먼 인생 여로, 영원의 뒤안길을 따라~.

그래서 대중가요 유행가를 허공지살(虛空之虄) 수중지월(水中之月)이라고 하는 것이다. 허공중으로 쏘아 올린 소리 화살, 강물 속에서 일렁거리고 있지만 건져 올릴 수는 없는 달빛~. 이태백(701~761)이 건져 올리려고 하다가 오히려 물속으로 빨려 들어간 달~ 달빛~.

이제 《트로트》(trot) 라는 용어를 《아랑가》(ArangGA·我浪歌)로 바꾸기를 주창(主唱)한다. <아랑가>는 ‘아리랑과 가요’를 합친 말이다. 한자로는 ‘나를 요동치게 하는 노래’다. 한자 낭(浪)은 프랑스어, 로망(roman, 억제되지 않는 열정)의 한자 표기 낭만(浪漫)의 낭이다. 《아랑가》는 나의 마음과 몸을 요동치게 하고, 글로벌 세계를 요동치게 할 것이다.(활초,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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