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마흔 살의 세일즈맨은 어느 날 아침 면도를 하다가 생각했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있던 생각이 아니라 짧은 꿈처럼 스친 생각이었다. 면도기와 면도날을 따로 만들고 면도날은 쓰다가 버릴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킹 캠프 질레트(1855~1932)는 더 안전하고 경제적인 면도기를 생각했다. 집에서 쓰는 면도칼은 그의 구레나룻을 깎기에 너무 무디었다. 가죽으로 날을 가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발소나 칼갈이 집에 맡겨야 했다. 자칫 손이나 얼굴에서 피를 볼 수도 있었다.

그는 주류업체 같은 곳에 병마개를 팔러 다니는 일급 영업전문가였다. 시카고에 큰불이 나 아버지의 사업이 잿더미가 되자 질레트는 열일곱에 학교를 그만뒀다. 그는 영업에 뛰어났다. 크라운 코르크 앤드 실이라는 회사에서는 좋은 멘토도 만났다. 아버지처럼 발명에 재주가 있던 그는 이미 몇 가지 특허를 얻었다. 하지만 돈이 되는 것은 없었다. 멘토는 이렇게 말했다. “킹, 자네는 늘 생각하고 발명하지. 왜 크라운 코르크 같은 것을 발명하려고 하지 않나? 우리 제품은 한 번 쓰고 버리면 고객이 다시 찾아오고 고객이 한 사람 늘어날 때마다 영구적인 수익기반을 쌓지.”

병과 병마개처럼 쓰고 버릴 수 있는 부품을 반복해서 판다는 구상은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발상은 1895년 어느 날 아침 그가 떠올린 생각을 바탕으로 그 유명한 면도기와 면도날 전략으로 진화했다. 오늘날의 온갖 플랫폼 사업도 본질적으로 그 사업모델을 따른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면 질레트는 그런 면도기와 사업모델의 최초 창안자라기보다는 제대로 실현하고 발전시킨 기업가로 봐야 할 것이다.)

더 안전할 뿐만 아니라 편리성과 경제성까지 갖춘 면도기를 만드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그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특허를 출원하기까지는 6년이 걸렸다. 그는 1901년 아메리칸 안전면도기 회사(이듬해 질레트 안전면도기로 개명했다)를 세웠다. 1904년에는 특허를 받았다. 당시 독일 졸링겐이나 영국 셰필드에서 만드는 면도칼은 잘 갈아서 평생 쓰는 것이었다. 전문 이발사가 쓰는 만큼 값도 비쌌다. 그곳 장인들은 버릴 수 있는 값싼 면도날을 대량으로 만든다는 발상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말이 안 되는 것은 그들의 고정관념이었다.

면도기와 면도날 사업모델은 온갖 신화와 오해를 낳았다. 질레트는 최초 특허를 보유한 17년(1904~1921년) 동안 경쟁을 차단한 채 면도기 세트를 비싸게 팔았다. 처음에는 한 세트에 5달러를 받았다. 이는 당시 산업계 평균 주급의 3분의 1이었다. 면도날 수요를 늘리기 위해 면도기를 거의 공짜로 준다는 발상은 본격 경쟁이 벌어진 이후에 나왔다.    

생산 첫해인 1903년 질레트는 면도기 51개와 면도날 168개를 팔았다. 이듬해에는 각각 9만 개와 12만 개를 팔았다. 질레트를 인수한 P&G는 2023 회계연도(6월 말 결산) 중 그루밍 사업 부문에서 64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질레트, 비너스, 브라운 브랜드를 파는 이 부문은 세계 면도기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한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지구촌 어디서나 면도기를 팔겠다는 창업자의 야망은 현실이 됐다.

그 야망을 위해 질레트는 최대 투자자와 힘겹게 싸워야 했다. 1902년 유아기의 회사가 파산 위기에 몰렸을 때 6만 달러를 투자해 구해준 존 조이스는 해외 판권을 팔아 로열티를 챙기려 했다. 영국 리버풀에 있던 질레트는 그 소식을 듣고 급히 배를 타고 열흘이나 걸려 보스턴으로 갔다. 가까스로 이사회에 참석한 그는 일급 세일즈맨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이사들을 설득했다. 그의 발명품은 보편적인 제품이었다. 인종과 문화를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써야 하는 것이었다. 그 잠재력을 왜 푼돈에 팔려고 하는가.

1988년 워런 버핏도 그 점을 높이 샀다. 오마하의 현인은 기업사냥꾼들과 벌인 몇 차례의 격전으로 실탄이 소진된 질레트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는 전환우선주 형태로 6억 달러를 투자했다. 시가에 20% 프리미엄을 얹은 주당 50달러로 보통주로 바꿀 수 있는 조건이었다. 전환 시 버핏의 회사는 질레트 의결권 11%를 갖는 최대 주주가 될 터였다. 그 후 주가는 날아올랐다. 훗날 엄청난 차익을 거둔 버핏은 후회했다. 리스크에 대비한 전환우선주가 아니라 보통주를 샀더라면 더 낮은 값에 더 많은 주식을 샀을 거라는 배부른 이야기였다.

버핏의 생각은 창업자 질레트와 같았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갖고, 가격이 낮고, 반복 구매하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을 골랐다. “나는 많은 사람에게 코카콜라는 필수품이고 물론 면도날도 필수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버핏의 투자 후 질레트 사내 식당과 자판기의 펩시콜라는 전부 코카콜라로 대체됐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처 브라운사에서 이사회가 열릴 때는 그가 좋아하는 체리 코크를 급히 공수하기도 했다.

(버핏은 2005년 질레트와 P&G 합병으로 대성공을 거뒀고, 2023년 3분기 말까지 P&G 주식을 모두 팔았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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