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절감한다. 1959년 당시 23세 안정애의 목소리로 세상에 나왔던 <대전부르스>가 2020년 12월 온고지신의 감흥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다시 펄럭거리기 시작한 미스트롯2에 출전한 9세 초등학생 김태연의 목청으로. 노래 탄생 61년, 환갑을 맞이한 대중가요 유행가 트로트는 살아 전승된다. 세속연수 86세인 원조 가수 안정애는, 어느 하는 모롱이에서 무정하게 떠나간, 대전발 0시 50분 열차의 기적소리를 헤아리고 있을까.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 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기적소리 슬피 우는/ 눈물의 플랫 홈/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발 영 시 오십분/ 영원히 변치말자 맹세했건만/ 눈물로 헤어지는 쓰라린 심정/ 아~ 부슬비에 젖어오는/ 목포행 완행열차.

목포행 33완행열차의 이별 서정, <대전부르스>. 이 노래는 서울발 목포행 완행열차가 낳은 노래다. 1959년 2월부터 1년여간 운행된 증기열차가 노래의 모티브. 당시 열차번호가 짝수이면 서울행, 홀수이면 지방행이었다. 일본에서 주로 사용하는 형식인데, 우리도 흡사하다. 오늘날도 비슷하다.

그해 스산한 바람이 풍실거리는 어느 날 밤 0시 40분경, 대전역 광장으로 산책을 나온 한 사내의 시선이 플랫 홈 가스등 아래 멎는다. 그곳에는 청춘남녀가 두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북쪽에선 남자를 싣고 갈, 대전발 목포행 0시 50분 완행열차가 홈으로 들어오고, 마침내 둘은 생이별을 한다.

사내는 곧바로 여관으로 되돌아와서 이 장면을 시(노랫말)로 쓴다. 여기에 김부해가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블루스 선율을 얹고 신인가수 안정애의 목소리를 타고 세속으로 녹아들어 간다. 이 이별 서사를 노랫말로 얽은 사내는 그는 당시 신세기레코드사 사업부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지방 출장으로 대전역 인근에서 머물고 있었다. 철로 레일을 점검하는 검사원을 겸직했었단다.

그의 가사를 받은 김부해는 블루스로 리듬을 정한 뒤 3시간여 작업 끝에 곡을 완성하여 안정애가 녹음을 한다. 이 노래는 출반 3일 만에 주문이 쇄도했고 회사 창립 이래로 최대의 대박을 쳤다. 당시 23세 본명 안순애, 안정애는 1936년 출생하여 블루스풍의 트로트로 인기를 모았으며, 이 노래가 대표곡이다. 안정애는 1950년대 후반 고복수가 운영하던 동화예술학원에서 이미자와 같이 노래 공부를 하였으며, 고복수의 추천으로 가요계에 입문한다.

이 노래는 1963년 이종기 감독이 최무룡·엄앵란·신성일을 주연으로 제작한 영화 《대전발 0시 50분》의 주제곡이 된다. 영화는, 장래를 언약한 여인이 상대편 육군소위에게 정식으로 약혼할 것을 독촉한다. 하지만 이 장교는 몽매에도 잊지 못하는 누님을 찾은 뒤에 약혼식을 올리기를 희망하며 하루하루 미룬다. 그러던 어느 날 어렵게 누님을 만나지만, 그 누님은 3류 화류빠 여급으로 전락해 있었다. 이때 그에게 전방 수색대 임무가 떨어지는데, 그는 세상을 비관하며 죽음으로써 수색정찰 임무를 완수한다. 미완성의 비련이었다.

1959년 2월 제33열차로 탄생한 이 증기기관 기차는, 밤 8시 45분에 서울을 출발, 대전역에 0시 40분 도착, 다시 목포를 향해 0시 50분에 출발했다. 지금은 서대전역을 통해 다니지만 당시는 대전역을 거쳐 갔다. 이 열차를 이용한 사람들은 대전역 인근 시장에서 광주리에 담은 물건을 팔던 농사꾼이거나, 술에 얼큰히 취해 고향으로 가는 막차를 기다리던 지방 사람들이었다.

이 열차는 지금은 없다. 생긴 지 1년 만인 1960년 2월 대전발 03시 05분 차로 시간이 변경되면서 짧은 수명을 다했다. 작사 작곡가는 이후 레코드사까지 운영하였지만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대전역 부근 허름한 선술집에서는 쉰 목소리의 이 노래가 흘러 나온다. 그래서 유행가를 역사 속 통속의 연결고리라고 하는 것이다.

대전은 1905년 경부선 개통으로 대도시화가 되며, 1912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했다. 대전시 동구 소제동 철도 관사촌은 대전 철도 역사의 현장이다. 1930년대 일본인 철도기술자들의 숙소로 조성된 이곳은, 현재 40채 정도가 남아있다. 일본제국주의 강점기에 지어진 관사촌으로 전국 최대 규모다. 서울 신용산의 명칭도 조선총독부 철도국 소속 일본인 직원들의 숙소를 지으면서 붙여진 이름임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얼마 전 대전역 광장에 있던 <대전부르스> 노래비가 철거되었다. 세칭 유명 인사들의 유적비 건립이 유행바이러스처럼 전국으로 번져가는 트렌드와는 상반된 현상이다. 이 노래비는 1999년 철도창설 100주년과 <대전부르스> 발표 40년을 맞아 우송대학교 협찬으로 건립됐었다.

관리부실과 노숙자들의 폐행이 명목상의 철거 이유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노래를 부른 가수 이름 색인을 놓고, 10여 년째 가수와 추진위원회 측이 대립해온 내홍이 있었다. 최초 발표 가수와 리메이커 가수 이름 색인과 관련한 상반된 견해가 원인이란다. 노래비를 철거한다고 노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래 흘러온 노래는 오래 흘러간다.

2020년 미스트롯2에서 <대전부르스>를 열창한 김태연은 2012년 전북 부안 출생 국악 소리를 하는 보물 같은 키즈다. 그녀는 2019년 8세 때 대한민국 춘향국악대전 판소리 부문 초등부 대상 수상자다. 국악 신동 김태연이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았다.

이날 김태연은, ‘국악 신동 딱지 떼어 버리고 미스트롯2 진이 되고 싶은 부안의 명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부안은 심사위원 마스터 진성(본명 진성철, 1960년 부안군 행안면 출생)의 고향이다. 마스터 장윤정은, ‘진짜 대단하다. 하트 10개가 더 있어도 올 하트를 받았을 거다. 레벨이 다른 것 같다. 어른들과 겨뤄도 아무 손색이 없다. 몸 자체가 음악이다. 언니라고 부르고 싶다’고 칭찬했다.

조영수도 ‘국악 하는 분이 트로트 했을 때 인위적인 비브라토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감정도 어느 성인을 뛰어 넘는다.’고 평했다. 김태연은 보이스트롯에 출연해 음이탈 실수로 3라운드에서 탈락했었다. 그녀는 <대전부르스>는 노래보다 53년 늦게 이 세상에 온 예인. 예술창작물은 세월의 강 물결을 타고 영원의 바다로 흘러가는 일엽편주(一葉片舟)다.

21세기 인류를 기습공격해온 코로나-19의 창살 없는 감옥, 그 3년여의 세월 터널 속에서 가장 우렁찼던 것이 한국의 트로트 열풍이었다.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이 열풍은 몇 가지 유의점이 있다. 특성과 요점과 개선점과 전환점이 그것이다.

특성은 무대에 올려진 모든 노래의 99%가 흘러오거나 흘러간 옛노래를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절창풍성(絶唱豊聲)의 장을 펼친 면에서는 박수를 칠만 하다. 하지만 시대와 세대를 풍자 희화 해학 익살 직설 은유하는 신유행가가 희박하다. 100년을 흘러온 노래들, 원곡 가수와 작품자들이 의도했던 메지지가 결여되었다.

요점은 크로스 오버의 무대다. 국악 성악 뮤지컬 연기 연극 스포츠계를 지향했던 이들이 마이크를 잡고 트로트를 열창한다. 단순히 대중 인기와 산술적 자본주의 경향으로만 칠 수는 없는 현상이다. 대중문화예술의 혼융 트렌드의 하나다.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대중가수의 양성·육성과 관련하여 엘리트교육과 시민교육의 카테고리로 삼아야 할 요점이다.

개선점은 재미와 흥미 위주의 기획 연출 콘텐츠에 대한 기획 연출과 관련한 되새김이다. 재미는 머리로 느끼는 현상과 실제이고, 흥미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순간이다. 이 재미와 흥미를 위하여 기획자와 연출가들은 무대 장치 음향 통신 의상 율동 조명 배치 장기(연주·율동) 등을 버무린다. 풍만하다. 하지만 여기에 결여되었거나 간과된 것이 있다. 시청자와 관객들의 영혼을 살찌우게 할 잔상(殘像)을 남기거나, 오래 가게 할 컨텐츠가 그것, 바로 의미(意味)를 부가할 요소이다.

이 의미를 부가할 요소는 바로 노래 창작의 모멘텀이 된 요소들에 대한 스토리텔링이다. 작사, 작곡, 가수, 시대(탄생), 사연 모티브(역사적 사건·사람), 사람(대중) 등을 풀어내는 이야기다. 이는 비즈니스적인 시청률 상승과 광고 수주를 염두 계상해야 하는 방송계와, 산술적인 수익과 공익적 예술감흥을 동시에 생각해야 하는 가수들이 현실적으로 제한된다면, 상아탑을 지향하는 학교(대학)가 선도함이 적절하다.

아울러 생각할수록 답답 감감하고, 우리 고유성이 결여된 단어(용어), 《트로트》라는 용어의 일대 전환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이는 필자가 주창하는 단어 《아랑가》(ArangGA·我浪歌)이다. 아랑가는 우리 고유의 노래 아리랑과 가요를 합친 말이다. 영미권과는 영어로, 한자권과는 한자를 병행하면, 가장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인 장르(명칭·용어·단어)가 될 것이다.(활초,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