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우리 트로트계에 인간축음기 같은 가수가 등장했다. 트로트 열풍 속에 발굴한 귀한 보물이다. 그는 1999년 원주 출생 본명 조희언, 예명 조명섭이다. 그러니 이 노래는 작사가와 가수가 같은 사람이다. 그는 자기보다 이 세상에 40~50년 먼저 탄생한 노래로 대중들과 소통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가객, 남인수와 현인의 복각판과 같은 가수이다. 헤어스타일도 무대의상도 1950년대를 전후한 복고 판이다. 말투도 어눌하게 연출한다. 엉거주춤 율동도 엉성하다. 그게 매력이다.

그가 신곡 <백일홍>을 선보였다. 이 노래는 백년해로(百年偕老)의 길을 동행하다가, 반쪽 반려(伴侶)를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남은 반려의 슬픈 이별가다. 조명섭이 스스로 노랫말도 지은 이유는, 그의 속내를 채워줄 노랫말쟁이가 드물기 때문이리라. 새내기 노래지만 가사는 복고풍류(復古風流)이다. 그가 눈물 어린 고개 위에서 열창하는 애련한 이별가는 님을 떠나보낸 두견새의 통곡이다.

궂은비가 내려오는 / 님 떠난 구름산에 / 무성하게 자라나는 / 그리움 슬프구나 / 눈물 어린 고개 우에 / 애련한 이별가는 / 아지랑이 아른아른 / 두견새 우는소리 / 긴 시간을 접어두고 / 떠나는 그대이기에 / 야속한 세월 속에 / 후회만 남기었네 / 다시 한번 그대 손을 / 잡아볼 수 있다면 / 쓰라려진 내 가슴에 / 백일홍 피어나리.

<백일홍> 노래는 백일홍·두견새·부엉새 사연을 얽었다. 백일홍(百日紅)은 풀꽃과 나무꽃 두 종류가 있다. 풀꽃은 국화과 한해살이풀, 백일초라고도 한다. 높이 60∼90cm이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이며, 잎자루가 없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며 털이 나서 거칠다. 꽃 모양은 끝이 뾰족하며 밑은 심장 모양이다.

꽃은 6∼10월에 줄기 꼭대기에 피어서 두화(頭花)라고 하며, 긴 꽃줄기 끝에 1개씩 달린다. 노란색·자주색·흰색으로 피는데, 100일 동안 붉게 핀다는 뜻이다. 꽃말은 ‘순결 혹은, 멀리 있는 친구를 생각함’이다. 이 꽃은 본래 보잘것없는 잡초였으나 독일 출신 진(Zinn)이 발견한 이래, 인도·프랑스·영국·미국의 화훼가들의 손을 거쳐 개량되었다. 조명섭도 흙 묻은 옥 덩어리였지만, 흙을 갈아내고 옥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802년(조선 순조 2) 이재위가 아버지 이가환의 대를 이어 편집한 어휘집 『물보』(物譜)>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를 근거로 정확한 도래 경로는 알 수 없으나, 1800년 이전부터 관상용으로 재배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백일홍은 꽃 색깔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초여름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 피므로 관상용 원예식물로 알맞다. 풀꽃 백일홍은 각각의 꽃대에 한송이씩 피어난다.

일반에서는 배롱나무도 백일홍이라고 혼용되고 있으나, 이는 전혀 다른 꽃나무다. 나무 배롱나무꽃도 100일 동안 피고 진다. 이 나무는 몸통 껍질 부분을 손톱으로 살살 긁으면 잎이 파르르 떨린다. 그래서 간지럼 나무라고도 한다. 꽃은 7∼9월에 붉은색으로 피고 가지 끝에 원추 모양의 꽃이 차례로 달린다. 꽃떨기라기보다는 꽃덩어리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꽃가지 끝이 파르르 뜨는 촉감을 사람들의 성감대(性感帶)에 비유하는 속설도 있다.

<백일홍> 노랫말 속의 두견화는 진달래꽃이다. 참꽃이라고도 부른다. 꽃 색깔이 붉은 것이 두견새가 밤새워 울다가 피를 토한 것이라는 전설 때문에 두견화(杜鵑花, 토견화)라고 한다. 만주 간도 지방 동포들은 천지꽃, 천지화라고 부른다. 이 꽃에 깃드는 새를 두견이, 천연기념물 제447호다. 접동새·두우·자규라고도 한다.

소쩍새라고도 하는데, 소쩍새는 올빼미과에 속하며 두견이와는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 고려 충혜왕(1315~1344)의 신하 이조년이 송도 개성에서 임진강을 건너온 귀양지, 고봉현(고양 일산)에서 임금을 그리워하며 읊은 시 <다정가>(多情歌)에 인용된,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속의 새 자규다. 경기도 여주8경 중 이릉두견(二陵杜鵑)에서 세종·효종 왕릉에서 저녁에 울던 새도 바로 이 새다.

고려 인종(1109~1146) 때 정서(鄭敍)는 그의 <정과정> 시에서 ‘내 님을 그리자와 우니다니/ 산 접동새와 나는 이슷하요이다.’라고 읊었다. <백일홍> 노랫말, 님을 그리워하는 2절도 절절하다. 새가 그리워하는 님, 사람이 그리워하는 님은 하늘이 내린 짝이다.

달빛 어린 고개 우에 / 눈물의 이별가는 / 반딧불이 아롱아롱 / 부엉새 우는 소리 / 긴 시간을 접어두고 / 떠나간 그대이기에 / 무심한 세월 속에 / 후회만 남기었네 / 다시 한번 그대 손을 / 잡아볼 수 있다면 / 쓰라려진 내 가슴에 / 백일홍 피어나리 / 다시 한번 그대 이름을 / 불러볼 수 있다면 / 애달프진 내 가슴에 / 백일홍 피어나리 / 그대는 영원하리.

<백일홍>을 부른 조명섭은 원주공고를 졸업하고 복고 트로트 가수의 길을 선택한 트로트매니아다. 그는 왜 산소 용접기를 내던지고, 오선지 악보를 들었을까. 전문가를 능가하는 실용의 매니아로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들찔레 향기에 취하여 울음 범벅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장사익(1949~. 홍성 출생) 매니아를 꿈꾸는 것은 아닐까.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본《60년을 보는 대중가요》에서 현인의 <신라의 달밤>(1947)을 듣고서 트로트에 감흥의 필링을 받았단다. 일종의 노래 신내림(강림 降神)과 같다. 그는 1940년대 문화에 젖어 복고풍 양복 입기를 좋아하고, 흑백영화를 즐겨보는 애늙은이 중학생으로 자랐단다. 옛노래와 신가수의 연분이다.

2013년, SBS 스타킹에 출연하여 ‘잊혀져 가는 옛 가요와 문화를 되돌려 지키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2015년에는 TV조선 이경규의 진짜카메라에 출연하여 <신라의 달밤>과 아코디언 연주를 곁들인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불렀다. 2019년 KBS 특별기획 《트로트가 좋아》에 출연하여 <신라의 달밤>, <이별의 부산정거장>으로 최종 우승하여 상금 2천만 원을 받고 데뷔를 하였다. 이 경연대회 우승으로 그는 현인의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년에서, 일제강점기와 전쟁 전후 불우한 시대에, 민족과 애환을 함께한 가요들을 부활시킨 가수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는 포부가 분명하다. 역사가 담긴 노래는 그 시대만의 감성이 있지만 오늘날에도 맞을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무명 곡으로 묻혀있는 곡들을 되살리고 싶어 한다. 숨어 있는 유행가를 되찾아내는 일, 민족의 구겨진 역사를 복원하는 과업만큼 중요한 일이다. 복고풍 온고지신의 가수 조희언 신곡은 <계절이 오면>, <강원도 아가씨>, <백일홍> 등이다.

이별 노래 <백일홍> 꼬랑지에 조선의 선비 정지승(1550~1589)의 <유별>(留別) 시를 매달아 조명섭에게 보낸다. 여린 풀과 꽃이 하늘대는 물가의 정자에는/ 짙은 수양버들 그림 같이 봄 성을 가렸네/ 작별의 양관곡을 불러주는 사람 없어/ 청산만이 내 가는 길 전송하여 주는구나.

시 속의 양관곡(楊管曲)은 버들피리를 부르는 노래인데, 이별을 서정한 곡조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별할 때 버드나무를 꺾어 주었다는 습속 때문이었다. 서울의 제2한강교인 양화대교(揚花大橋)도 버들꽃이 피던 시절에 이별가를 부르던 곳이다. 임제 임백호(1549~1587)의 패강(대동강) 이별시를 보자. ‘이별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꺾는 버들/ 천 가지 다 꺾어도 가는 님 못 잡겠네/ 어여쁜 아가씨들의 하 많은 눈물 탓인 듯/ 해질무렵 부연 물결도 시름에 잠겨 있네.’ 그 시절 대동강 나루터에는 날마다 이별하는 사람들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래서 대동강 물은 이별의 눈물 때문에 마를 날이 없었다.

며칠 전 부안 채석강(采石江) 바닷가를 다녀왔다. 진성의 노래 <채석강>을 갯바람 부는 방파제 위에서 흥얼거려보았다. ‘서해바다 수평선아 너는 왜 말이 없느냐/ 떠난 님 그리워서 망부석 되어버린/ 채석강 운명/ 기폭에 꿈을 싣고 온다던 사람/ 피고 지고 피고 지고 꽃은 피었건만/ 파도 소리 갈매기만 슬피 울고 있네요/ 방파제 여인의 설움 그 누가 알까/ 채석강아 말 좀 해다오.’ 조명섭의 <백일홍>도 진성의 <채석강> 이별과 상봉의 애련을 얽은 절창이다.

<백일홍>, <채석강>과 같은 절창들은 대중가요이면서 유행가다. 사랑 배신 이별 재회 등을 얽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사랑과 이별 타령 노래들은 그냥 대중가요다. 유행가 반열에 끼울 수가 없다. <백일홍>과 <채석강>은 이야기로 풀어낼 스토리가 있다. 이런 노래를 우리 유행가, 《아랑가》(ArangGA·我浪歌)로 불러야 한다. 《트로트》를 《아랑가》로 불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랑가》는 우리 고유의 전통 노래 아리랑과 가요를 합친 말이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인들을 요동치게 할 노래 이름 패(牌)이다.(활초,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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