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작가·번역가
장경덕 작가·번역가

자본주의는 혁신을 요구한다. 또 그것을 상품화할 혁신적인 기업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더 크고 복잡해진 자본주의는 다른 한편으로 관료적 합리화를 갈망했다. 관료제는 한때 거대한 조직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해준 놀라운 혁신이었다. 하지만 관료제는 이제 혁신의 발목을 잡게 됐다. 앞서 본 ATLAS 프로젝트가 전통적인 관료조직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프라하 태생의 미국 정치학자 카를 도이치(1912~1992)는 권력은 “배우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최고경영자들은 한때 열심히 배우려 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정상에 오른 후에는 더는 배우지 않을뿐더러 다른 조직원들의 혁신 의지를 꺾어놓기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10~20년 전에 투자했던 지적자본을 감가상각하지 않고 그대로 고수하는 리더는 가속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 배우지 않는 CEO와 관료조직이 만나면 죽음의 칵테일이 될 수 있다.

많은 것을 뒤엎어야 하는 창조적 파괴의 시대에 큰 조직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혜안은 어느 한 사람이나 작은 팀에서만 얻을 수 없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초인적인 리더가 아니라 조직원들의 일상적인 천재성을 끌어내고 상품화할 수 있는 혁신적인 조직이다. 단 하나의 고정된 위계 구조가 아니라 풀어야 할 문제에 따라 책임자가 바뀌는 유연하고 역동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우리가 몸담은 조직을 생각해보자. 그 조직에는 공식적인 위계 구조가 있는가? 권력은 직위에 부여돼 있는가? 권한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가? 높은 자리의 리더가 낮은 자리의 리더를 임명하는가? 전략과 예산은 최고위층에서 결정하는가? 중앙의 참모집단이 정책을 수립하고 제대로 준수하는지 감시하는가? 직무와 역할은 엄격히 규정되는가? 통제는 감독과 규칙, 제재로 이뤄지는가? 관리자가 과업을 할당하고 성과를 평가하는가? 모든 사람이 승진을 위해 경쟁하는가? 보상은 직급과 연계돼 있는가? 그렇다면 전형적인 관료조직이다.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20세기 초에 이렇게 썼다. “관료제는 비인간화할수록 완벽하게 발전한다. 계산할 수 없을 만큼 순전히 개인적이고 비합리적이며 감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 데 성공할수록 더 발전한다.” 쉽게 말해 인간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로봇으로 바꿔놓는 것이 관료제의 목적이었다.

물론 그 전의 독재적이고 무질서한 조직과 비교하면 관료조직은 축복이었다. 이전의 조직에서 리더는 변덕스럽고 의사결정은 대부분 감으로 이뤄졌다. 계획은 되는대로였고 감독은 불규칙적이었으며 보상은 노력과 별 관련이 없었다. 그런 조직을 관료조직으로 혁신하면 생산성은 급상승했다. 웨버의 말대로 관료제는 “그 정교함과 안정성, 규율의 엄격성, 그리고 신뢰성에서 다른 어떤 조직보다 뛰어났으며, 따라서 최고의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는” 제도였다.

하지만 관료제가 발명된 19세기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오늘날 기업조직의 구성원들은 대량생산 시대 단순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기능공이 아니라 창의적인 지식일꾼들이다. 경쟁우위는 단순히 규모를 키우는 데서 나오지 않고 상품과 서비스의 혁신에서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술과 시장의 변화는 느리고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속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19세기의 발명품인 관료제가 21세기의 온갖 혁명적인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

관료제는 언제 어떻게든 변형할 수 있고 창의와 열정이 가득한 조직으로 다시 상상해야 한다. 지나치게 경직적인 관료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비인간화한 조직을 다시 인간화해야 한다. 게리 해멀과 미셸 자니니는 ‘휴머노크러시’에서 관료제는 이제 죽어야 한다며 구조와 절차, 방법이 아니라 인간을 조직의 중심에 놓으라고 제안한다. 조직의 효율성을 위해 통제를 극대화하는 경영모델이 아니라 조직의 임팩트를 위해 공헌을 극대화하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관료조직(뷰로크러시)에서는 인간을 수단으로 본다. 조직이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기 위해 고용한 도구라는 뜻이다. 인간 중심 조직(휴머노크러시)에서는 반대로 조직이 수단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과 그들이 봉사해야 할 사람들의 삶을 향상하는 데 필요한 도구라는 말이다. 그런 조직을 만들려면 우선 지난날 관료조직에서 억눌려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반드시 자유롭게 끌어내야 할 인간적인 특성은 어떤 것일까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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