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한국유행가연구원장

육십간지 마흔한 번째, 청룡의 새해가 두둥실 떠올랐다. 밝은 서광(曙光) 아래서 알싸한 찬바람을 맞으며, 청춘 인생 꿈의 고속도로를 펼친다. 5천 년을 이어온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 민족혼의 번광(繁光)을 비는 소망도 간절하다. 이런 맥락에서, 새해 첫 유행가 스토리텔링은 판소리와 트로트를 아우른 상남자 가수 강태관의 <내 인생의 고속도로>를 펼친다.

강태관은 판트남이란 별명의 소유자다. 그가 절창한 <내 인생의 고속도로>는 정치외교학을 지향하던 강은경이 노랫말을 짓고, 식품생명공학을 섭렵한 조영수가 멜로딩을 했다. 판트남은 판소리전국대회에서 장원을 하여 병역의무까지 면제받았다. 그러니 이 노래는 작사·작곡·가수 3요소가 모두 전공자가 아닌 매니아, 울퉁불통한 부정교합의 황금조합이다. 갑진년 새해는 이런 부정교합의 황금조합이 절실하다. 새날을 향하여 달려갈 대중문화예술의 융복합 고속도로~.

지나온 세월일랑 후회를 말아라 / 아픔 없는 청춘은 없다 / 어디로 향하는지 묻지를 마라 / 내 인생은 직진뿐이다 / 오 신나게 달려라 / 너를 향해 오늘도 간다 / 커브길 고갯길 터널도 지나서 / 오 슬픔아 비켜라 / 이대로 나 달려가 주마 / 내 인생의 고속도로야 / 이왕에 나온 세상 / 사나이는 일단 못 먹어도 고 / 까짓것 실패한들 두려울쏘냐 / 달려달려 고속도로야

이왕에 나온 세상 사나이는 일단 못 먹어도 고(go), 어디로 향하는지 묻지를 마라. 내 인생은 직진뿐이다. 아찔하고 위험한 소절이다. 절벽과 난간을 마주하면 어쩌나. 전진뿐이다라고 하면 덜 어지러울 듯하다. 뒤 이어지는 커버 길 고갯길 터널과 직진은 어쩌나.

너를 향해 오늘도 간다고 하는데, 어디로 향하는지 묻지를 말라고 내지른 앞 소절의 호기와는 어떻게 엇대어야 하나. 달리는 것은 좋은데 목표가 있어야 하고, 굴곡과 난간과 가시덤불을 예상하고 헤쳐 가는 디테일한 준비가 앞서야 한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행군에 가깝다. 가정도 나라도 그렇다. 뜨끈하고 화끈거리는 순간의 불길은 쉽게 식는다. 함부로 총천연색 깃발을 흔들거나 풍구질을 하지 마라.

이 세상에 올 때 내 맘대로 온 사람이 어디 있나. 1982년 허영란의 목소리를 타고 세상에 나온 <날개> 노랫말을 <내 인생의 고속도로>에 걸쳐보자. 일어나라 아이야/ 다시 한번 걸어라/ 뛰어라 젊음이여 꿈을 안고 뛰어라/ 날아라 날아라 고뇌에 찬 인생이여... / 어느 누가 인생을 떠도는 구름이라 했나. 거치른 인생길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음이다. 후렴 노랫말을 펼쳐보자.

오 신나게 달려라 / 너를 향해 오늘도 간다 / 커브길 고갯길 터널도 지나서 / 오 슬픔아 비켜라 / 이대로 나 달려가 주마 / 내 인생의 고속도로야 / 이왕에 나온 세상 / 사나이는 일단 못 먹어도 고 / 까짓것 실패한들 두려울쏘냐 / 달려달려 고속도로야 / 내 인생의 고속도로야.

노랫말이 우락부락하지만, 힘이 솟는다. 이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팔자는 신명(神命)이다. 미술사를 전공한 김이나, 식품생명공학을 공부한 조영수가 2020년대 우리나라 최고의 대중가요 작가반열에 있음이 그 증거다. 도처상수(到處上手)다. 여기서 상수는 전문가가 아니라 매니아(애호가, 愛好家. Mania)다.

애호하면 집중하고, 집중하면 전문가를 능가하는 에너지가 축적된다. 이들은 집중과 몰입을 하면서 쌍코피가 터질 때 희열을 느낀다. 새해에는 도처의 분야에 행호사(行好事) 행방편(行方便)을 지향하는, 매니아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살아낸 자기 자신의 뒤안길을 운명의 여정으로 여긴다. 운명(運命)이란 단어를 풀어보면, 차(車)가 덮개(冖, 덮을 멱)를 덮고 천천히 굴러간다(辶, 천천히 굴러갈 착)는 의미의 운(運)자다. 차 안에 무엇이 실렸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명(命)에 목숨을 다한다는 의미다. 숙명(宿命)은 어떤가. 구멍(穴, 혈) 속에 사람(人, 인) 백(百) 명이 빽빽하게 들어차서 꼼짝도 못 한다는 의미다. 결국 사람은 운명을 모르고 살지만 신(神)은 숙명으로 다 알고 있다. 운명과 숙명을 합치면 신명(神命)이다. Calling profession by God.

<내 인생의 고속도로> 노랫말을 지은 강은경은 1968년생, 중학교 때부터 곡을 쓰고 가사를 만들었단다. 그녀는 왜 실용음악 도로로 접어들지 않았을까. 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다시 대중가요 작사가의 비탈길로 들어섰을까. 인생길 모를 일이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가요계에 습작품을 내밀었다가 전업 작사가가 되었다.

조영수 작곡가는 연세대 식품생명공학과에서 공부했다. 1976년 충남 청양 출생, 1996년 그룹 열두번째테마 멤버로 데뷔하여, 그 해 대학가요제에 출전(성균관대·연세대·한양대 혼성)하여 대상을 수상했다. 수상곡은 <시로나기>이다. 이후 작곡가로 전향했다. 지금까지 600여 곡을 창곡(創曲)하였다.

강태관은 1990년 부산 출생이다. 그는 중앙대 연희예술학부를 거쳐 2010년 제36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일반부에서 장원(壯元)을 했다. 그는 왜 트로트 고속도로로 운전대로 지향하는가. 강태관의 길도 이미 정해져 있지는 않을까. 니체가 설파한 운명애, 김연자의 목청에 걸린 <아모르파티>는 백년설이 절창한 <산 팔자 물 팔자>와 궤를 같이한다. 산이라면 넘어주마, 강이라면 건너 주마. 인생에 가는 길이 산길이냐 물길이냐, 손금에 새긴 글씨 풀지 못할 내 운명~.

작사 작곡 가수도 연분이 있다. 이렇게 만나야 대중들과 소통하는 통로가 굳건해진다. 1930~1940년대 조명암·박시춘·남인수 콤비는 식민지 시대를 서정 서사한 통곡 <울며 헤진 부산항>을 남겼다. 이부풍·박시춘·남인수는 <가거라 38선>, 호동아(유호)·박시춘·남인수는 <이별의 부산정거장>으로 6.25 전쟁의 정지된 슬픔을 얽었다.

이부풍·전수린·황금심은 <알뜰한 당신>으로 여인네의 3종지도(三從之道)의 음덕(陰德)을 유행가락에 얽었다. 1950년대 유호·박시춘·현인은 <신라의 달밤>, <럭키 서울>로 당국 이념의 감시를 피해 갔고, <전우야 잘 자라>, <굳세어라 금순아>로 전쟁 속에서의 총포성과 화약 냄새와 군화발자국소리를 유행가로 격려했다. 1960년대 이봉조와 현미는 <밤안개>,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로 유부남과 처녀의 활활거리는 사랑의 불길 가슴팍에 휘발유를 뿌렸다.

박춘석과 이미자는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로 금지곡의 재갈이 채워졌었다. 길옥윤과 패티김는 <이별>, <서울의 찬가>로 눈물과 한숨과 먼지 속의 서울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민기와 양희은이 부른 <아침 이슬>은 창작의 의도와는 다르게 저항의 깃발이 되기도 했다. 길옥윤 혜은이 콤비는 <당신은 모르실거야>, <감수광>, <제3한강교>로 작가와 가수 간의 염문 스캔들을 만들었다.

부부 작가인 양인자 김희갑이 만든 <그 겨울의 찻집>은 조용필의 감성 목청을 들으며 낙엽 길을 걸어가는 연인들의 손가락 언약을 부추겼었다. 콤비들이 남긴 빛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유행가, 트로트계의 명콤비들이여 어서 오시라. 찬란하시라. 100년 1000년을 흘러가시라.

<내 인생의 고속도로>는 누군가가 닦아 주는 것이 아니다. 남이 터놓은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통행세를 내야만 한다. 하지만 내가 개척한 도로 위를 다른 이들이 사용할 때는 내가 사용료를 받는다. 이것이 내 인생의 오솔길, 비포장길, 신작로, 국도, 고속도로로 진화한다. 이렇게 닦은 길이 블루로드이다.

블루오션(Blue Ocean)이 아닌, 블루로드(Blue Road) 개척은 성공을 향하여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고, 성공 앞에 닫혀 있는 대문에 걸려 있는 자물통을 열어젖힐 수 있는, 열쇠를 다듬어 가는 과정이다. 새해에는 이 길을 닦는 데에, 660만 중소기업인들이 몰입 천착하기를 빈다.

성공을 향한 블루오션의 99:1의 경쟁 과정보다는, 뾰족한 바늘 끝으로 대추나무 가시의 끝에 맛대려는 것처럼, 예민하고 단순하게 나와 내가 쉼 없는 겨루기를 지속해가는 과정이 더욱 또렷한 과정이다. 그 길이 내 인생의 고속도로를 향한 겨루기 길이고, 세상에 유일한 나만의 비즈니스를 개척해 가는 창의의 길이다. 이것이 청룡의 해, 청룡에 달린 날개를 퍼덕거리는 것이다.

한국유행가연구원장

문화예술교육사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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