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작가·번역가
장경덕 작가·번역가

“경영자가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려고 할 때 흔히 또 다른 잘못이 드러난다. 바라던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때 우리는 온갖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만 원인은 보통 우리가 부적절한 통제 방식을 택했다는 데 있다. 기술자는 물이 솟아오르지 않고 아래로 흘러내린다고 탓하거나 기체를 가열했을 때 수축하지 않고 팽창한다고 탓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영자는 자신의 결정을 사람들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보통 그 사람들을 비난한다. 그들이 어리석거나 비협조적이거나 게을러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보며 자신이 적절한 통제 방식을 택하지 않아서 그렇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MIT 슬론경영대학원의 더글러스 맥그리거(1906~1964)가 1960년 출간한 ‘기업의 인간적 측면’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X 이론과 Y 이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X 이론에 따르는 경영자는 사람들을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본다. 그는 이렇게 가정한다. 보통의 인간은 일을 싫어하고 가능한 한 피하려 한다. 그들은 지시받는 쪽을 선호하고 책임을 회피하려 하며 야망이 별로 없고 무엇보다 안전을 바란다. 그러므로 조직이 성과를 내도록 하려면 그들을 강제하고 통제하고 지시하고 잘못하면 제재하겠다고 위협해야 한다.

맥그리거는 Y 이론을 이렇게 설명한다. 보통의 인간은 천성적으로 일을 싫어하지 않으며 일할 때 쏟는 육체적, 정신적 노력은 놀이나 휴식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조직의 목표를 위한 노력을 끌어낼 수 있는 수단으로는 외부 통제나 처벌 위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성과와 연계된 보상이 따르면 목표에 헌신하며 자아실현은 가장 중요한 보상이다. 조직의 문제를 해결할 높은 수준의 상상력과 창의성은 희귀한 것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하지만 그런 지적 잠재력은 부분적으로만 이용되고 있다.

이 혁명적인 책이 나오고 20년이 지났을 때 또 한 명의 걸출한 경영학자인 윌리엄 에드워즈 데밍(1900~1993)이 말했다. “사람들을 비난하지 말고 시스템을 고쳐라.” 하지만 X 이론과 Y 이론이 나온 지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대부분 경우 경영자의 인간관이나 조직 원리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몇 세대에 걸쳐 인간의 본성에 관한 발견과 재발견이 되풀이됐으나 경영관리와 조직운영은 여전히 관료제를 바탕으로 한 통제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대한 관료조직에 가려 흔히 무시되고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는 인간의 특성은 무엇일까?

첫째, 인간은 탄력적이다. 맥그리거가 ‘기업의 인간적 측면’을 내놓기 한 해 전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는 트랜지스터 이후 가장 위대한 발명이 될 것이라며 최초의 마이크로칩을 공개한다(정글노믹스 42 ‘중국 반도체는 왜 반세기 전에 달리지 못했나?’).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2023년 애플은 새 아이폰에 트랜지스터 190억 개가 들어간 칩(A17 프로)을 탑재했다. 이 놀라운 가속의 시대는 인간이 실현한 것이다. 어떤 경영자들은 조직이 가속적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변화를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변화 중독자들이다. 다만 조직이 그들의 무한한 탄력성과 회복력을 끌어내고 활용하지 못할 뿐이다.

둘째, 인간은 창의적이다. 디지털 기술은 보통의 개인에게도 창의성을 발휘할 효과적인 도구와 무한한 시장을 창출했다. 회사에서는 틀에 박힌 일을 하고 퇴근한 후에는 유튜브에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를 올리는 사람들을 보라. 부족한 건 조직원의 창의성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경영자들은 폭풍 같은 변화에 대한 유일한 안전장치는 끊임없는 혁신임을 잘 알고 있다. 인큐베이터니 엑셀러레이터니 하는 창업 실험실도 만들고 혁신적인 벤처기업을 비싸게 사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관료조직은 일상적으로 창의성을 질식시킨다.

셋째, 인간은 열정적이다. 조직원의 여러 역량은 하나의 계층구조를 이룬다. 맨 밑에는 복종과 순응이 있다. 조직원은 기본적인 규칙을 지키고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 위에는 성실성이 있다. 어려운 일을 기꺼이 맡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위는 전문성이다. 효과적인 일 처리에 필요하다. 하지만 창조 경제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 전문성보다 위에 있는 자질은 적극성이다. 자발적으로 새로운 일을 찾아서 주도하는 것이다. 그 위에는 창의성이 있다. 문제를 재정의하고 새로운 해법을 내놓는 역량이다. 맨 위에는 대담성이 있다. 바람직한 목표를 위해 위험을 안을 용기가 필요하다.

맥그리거는 이렇게 물었다. “사람들을 관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을 생각할 때 당신이 깔고 있는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가정은 무엇인가?” 그 핵심적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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