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작가·번역가
장경덕 작가·번역가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들을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판의 짐승들에게 주리라.” 2m를 넘는 거구의 전사는 양치기 소년의 도전에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청동 투구를 쓰고 온몸에 빈틈없이 갑옷을 두른 그는 던지는 창과 찌르는 창, 그리고 검을 들었다. 도전자의 무기는 물매와 매끄러운 돌 다섯 개였다. 소년의 돌팔매는 전설이 됐다. 소년의 몸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청동 갑옷을 입고 있던 전사는 이마에 돌을 맞고 쓰러졌다.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한 다윗과 골리앗의 전설이다.

골리앗은 과연 보이는 만큼 강한 전사였을까? 그가 상정한 싸움은 가까이서 맞붙어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었다. 다윗은 전혀 다른 전술을 택했고 상대의 치명적인 허점을 노렸다. 고대의 군대에는 세 유형의 전사가 있었다. 말이나 전차를 탄 기병, 갑옷을 입고 창칼을 든 보병, 그리고 화살이나 돌을 날리는 사격병이었다. 미국 조지아대 역사학자 바루크 할펀에 따르면 무거운 갑옷을 입고 느리게 움직이는 보병에게 멀리서 돌을 날리는 투석병은 치명적이었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이 실패한 것은 그 때문이라고 밝혔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중보병이 시칠리아의 산악지대에서 경보병의 투석에 당한 이야기를 자세히 기술했다(말콤 글래드웰 ‘다윗과 골리앗’).

골리앗을 이긴 다윗처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언더도그의 승리는 자본주의의 경쟁 체제에서도 강력한 은유로 자리 잡았다. 특히 오랫동안 경험과 노하우를 쌓고 규모의 경제를 누리며 확고한 브랜드 파워와 신뢰를 확보한 선도기업에 ‘듣보잡’ 기업이 도전해 통쾌한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회자된다. 자만에 빠진 선도자와 무모해 보이는 도전으로 끝내 판을 바꾸는 도전자의 이야기는 정글노믹스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마이클 포터의 ‘경쟁우위’ 마지막 장은 선도기업에 대한 공격을 다룬다. 선도기업은 이미 해당 산업에 전력투구하고 있고 도전기업에 장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풍부한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포터는 공격 전략의 기본은 선도기업의 전략을 그대로 모방하는 정면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윗이 창이나 칼로 골리앗과 맞붙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전략이다. 선도기업은 기존의 경쟁우위를 활용해 도전을 쉽게 물리칠 수 있고 강력한 보복까지 할 수 있다. 도전자의 자원은 그 전에 바닥날 것이다.

포터는 과거 프록터 앤드 갬블(P&G)이 ‘폴저스’ 커피로 당시 제너럴 푸즈의 ‘맥스웰하우스’ 브랜드(지금은 크래프트 하인즈 소유)에 도전한 것은 상대와 똑같은 가치사슬을 이용했기 때문에 강력한 보복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코카콜라가 ‘와인 스펙트럼’이라는 포도주를 판 것이나 IBM이 중대형 복사기 시장에서 차별화나 원가 우위 없이 경쟁하다 제록스의 강력한 저항을 받은 사례도 들었다. 선도기업에 도전하려면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도전기업은 무엇보다 원가나 차별화 면에서 선도기업보다 명백히 우월하고 지속성 있는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도전자는 선도기업이 지닌 경쟁우위를 무력화하고 보복을 막아낼 수 있어야 한다.

도전기업은 골리앗의 약점을 노리는 다윗처럼 선도기업의 취약성을 나타내는 신호를 포착해야 한다. 불연속적인 기술 변화로 산업구조가 바뀌는 것은 가장 중요한 기회다. 레이디얼 타이어는 미쉐린이 굿이어와 파이어스톤에 도전할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선도기업이 원가 우위나 차별화 우위가 없이 어중간한 상태에 있다면 도전자에게 허점을 노출한 것이다.

마이클 포터는 선도기업을 공격하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도전자가 가치사슬을 재배열(reconfiguration)하는 것이다. 이는 선도기업과 같은 경쟁 범위에서 싸우지만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다. 둘째, 경쟁 범위를 재정의(redefinition)하는 것이다. 지난날 미국시장을 파고든 일본의 전자, 자동차 기업들은 먼저 시장을 세분하고 경쟁우위가 있는 시장에 집중한 다음 단계적으로 경쟁 범위를 넓혀가는 전략을 취했다. 셋째, 순수한 지출(pure spending)을 늘리는 것이다. 가치사슬의 재배열이나 경쟁 범위의 재정의 없이 단순히 저가 공세를 펴거나 대대적인 광고마케팅에 나서는 방식이다. 상처뿐인 출혈 경쟁으로 끝날 수도 있는 위험한 전략이다.

어떤 전략을 쓸지 판단하려면 먼저 자신과 상대의 경쟁우위를 꿰뚫어 봐야 할 것이다. 다윗이 보았듯이 강점은 언제든 약점이 될 수 있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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