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서울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공사비가 급등하며 조합과 시공사의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공사비 분쟁 완화를 위한 표준계약서를 제시했다. 시공사는 계약 체결 전 조합에 공사비 세부 내역을 제출해야 하며, 설계 변동과 물가 상승으로 인한 공사비 증액 때는 표준계약서에 제시된 기준을 활용하게 된다.

국토교통부는 23일 재개발·재건축 조합과 시공사가 공사계약을 체결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를 배포했다. 전국 단위의 정비사업 표준계약서가 배포되는 것은 2010년 옛 건설교통부 표준계약서가 폐지된 이후 14년 만이다. 

이 표준계약서는 공사비 총액을 바탕으로 시공사를 선정하되, 선정 후 계약 체결 전까지 조합이 시공사로부터 공사비 세부 산출 내역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공사비 산출 근거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조합은 시공사에 산출 내역서 수정·보완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통상 공사비 총액만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만큼 계약 이후 설계 변경 등으로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할 때 조합은 증액 수준이 적정한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표준계약서에는 설계 변경과 물가 변동에 따른 공사비 조정 기준도 담겼다. 그간 설계 변경 때 '단순 협의'를 거쳐 공사비를 조정토록 해 기준이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표준계약서는 설계 변경으로 추가되는 자재가 기존 품목인지, 신규 품목인지 등에 따른 단가 산정 방법을 제시했다.

물가 변동을 공사비에 반영할 때는 국가계약법에 따른 지수조정률 방식을 활용한다. 총공사비를 노무비, 경비, 재료비 등 항목별로 나눈 뒤 각각 별도 물가지수를 적용해 물가 상승을 반영하는 것이다.

지금은 공사비 산정 기준일부터 실착공일까지 소비자물가지수 변동률을 적용해 공사비를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비자물가지수는 음식, 의류 등 국민이 많이 소비하는 품목의 물가를 나타내는 지수여서 건설공사 물가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단 지적이 있었다.

박용선 국토부 주택정비과장은 "건설공사비지수가 2021년부터 2년간 30% 가까이 올랐다"며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해서는 사업장이 굴러갈 수 없어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준계약서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조합과 시공사 간 합의한다면 예외적으로 건설공사비지수 변동률을 활용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간접공사비, 관리비, 이윤을 제외한 직접공사비에만 건설공사비지수 변동률을 적용한다. 

또 특정 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 착공 이후에도 물가 변동을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굴착 공사 때 지질 상태가 당초 조사했던 것과는 달라 시공사가 증액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증빙서류를 감리 담당자에게 검증받은 뒤 증액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과도한 증액 요구를 막기 위해서다.

다만 표준계약서는 의무가 아닌 권장 사항이기 때문에 사업장에서 표준계약서를 기본으로 한 변형 양식이 활용돼야 공사비 분쟁 완화 효과를 볼 수 있다.

국토부는 이미 공사비 분쟁이 일어난 사업장은 지자체와 함께 관리하고, 도시분쟁조정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 개정도 추진한단 방침이다. 분쟁조정위의 결정에는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조합이나 시공사가 조정 내용에 반대하는 경우 다시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이에 국토부는 조정위 결정에 재판상 화해 효력을 부여해 확정되면 이의 제기가 불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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