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작가·번역가
장경덕 작가·번역가

다윗은 돌팔매를 맞고 쓰러진 골리앗의 칼을 뺏어 그의 목을 벴다. 정글 경제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은유는 한 가지 난점을 지닌다. 적은 어떻게든 거꾸러뜨려야 할 상대라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경쟁은 반드시 ‘너 죽고 나 살자’고 덤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포터는 ‘유익한 경쟁기업’도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어떤 경쟁기업이 유익하고, 그런 기업은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1977년 6월 2일 뉴욕타임스는 제록스와 코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에는 레이저 프린터였다. 이듬해 3분기에 내놓을 제록스의 전자 프린팅 시스템(9700)은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를 필요할 때 인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레이저를 이용해 복사용 벨트에 숨은 이미지를 생성한 다음 검은색 토너로 종이에 그 이미지를 재현하는 방식이었다. 예상 가격이 놀랍다. 기계 한 대에 29만5000달러를 받고, 임대 시 월 5300달러에 페이지당 0.35센트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코닥은 마이크로필름 시스템(콤스타 마이크로이미지 프로세서)으로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를 가져와 처리하면서 레이저 빛으로 선명한 확대가 가능하게 했다. 그해 7월 발매할 첫 모델(콤스타 300)은 12~14만 달러에 팔릴 예정이었다.

복사기 산업의 언더도그인 코닥은 제록스에 유익한 경쟁기업이었다. 이 산업의 절대 강자였던 제록스는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나자 더 나은 성과를 올렸다. 경쟁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제록스의 원가구조가 개선되고 신제품 개발 속도도 빨라졌다. 독점이나 준독점 지위에 있는 기업은 흔히 현상에 만족하면서 혁신을 게을리한다. 제록스는 그럴 수 없었다. 코닥은 복사기나 프린터 사업을 다른 사무자동화 전략의 교두보로 여기지 않고(다른 사업을 위해 낮은 수익성을 감수하지 않고) 그 자체로 수익을 낼 사업으로 생각했다. 높은 투자수익을 올리려 하면서 품질과 서비스를 강조하는 경쟁기업은 유익한 경쟁자다. 다 같이 수렁에 빠지게 되는 가격 경쟁이 아니라 혁신 경쟁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1963년부터 23년 동안 CEO로서 펩시코의 전설이 된 도널드 켄덜(1921~2020)은 이렇게 말했다. “코카콜라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발명해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펩시를 발명해야 했을 것이다.” 그가 코카콜라를 상대로 전격적인 공세에 나서기 전까지 두 회사는 저강도 전투에 머물렀다. 선도기업인 코카콜라는 웬만하면 가격 경쟁을 피하고 경쟁기업의 움직임에 대해 강력한 보복에 나서지 않았다. 펩시와 닥터 페퍼, 세븐업 같은 추종 기업들은 오랫동안 안정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콜라 전쟁이 벌어졌다. 1977년 ‘펩시 챌린지’ 캠페인은 그 전쟁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두 개의 흰 컵에 펩시콜라와 코카콜라가 담겨 있다. 어느 브랜드인지 모르고 둘 다 맛을 본 소비자가 어느 것이 더 좋은지 선택한다. 두 회사가 얼마나 격렬한 군비경쟁을 벌였는지는 광고비만 봐도 알 수 있다. 1975년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광고비는 각각 2500만 달러와 1800만 달러였다. 10년 후에는 7200만 달러와 5700만 달러로 치솟았다. 20년 후에는 8200만 달러와 1억1200만 달러로 펩시가 더 많이 썼다.

이 위험한 격전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1981년부터 16년간 코카콜라 회장을 지낸 로베르토 고이주에타(1931~1997)는 (시장점유율이 아니라) “목 점유율(share of throat)”을 이야기했다. 두 회사의 경쟁은 탄산음료 시장 자체의 파이를 키웠다. 이 시장은 1970년 전체 음료 시장의 12% 남짓 차지했으나 1985년에는 22% 넘게 가져갔다. 오늘날 약 4000억 달러로 커진 글로벌 탄산음료 시장에서 경쟁할 때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반드시 거꾸러뜨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는 함께 마케팅의 최고수가 됐다. 장기적으로 서로에게 유익한 경쟁을 벌일수 있다. 그럴수록 혁신 동력이 떨어지면서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과점산업의 폐해는 그만큼 줄어든다.

일반적으로 유익한 경쟁기업은 여러 가지 전략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경쟁기업은 경기순환으로 불안정한 수요를 흡수해준다. 예컨대 선도기업이 호황 때 공급능력을 한껏 늘리지 않고 경쟁기업이 초과수요를 흡수하도록 하면 불황 때 과잉설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경쟁 상대가 있으면 차별화에도 유리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비교 대상이 아예 없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서는 가격에 민감해진다. 또 높은 원가구조를 가진 경쟁기업은 원가우산(cost umbrella)이 돼줄 수 있다. 고 원가 기업이 높은 시장가격을 유지하면 원가구조를 개선한 기업은 그만큼 높은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다.

유익한 경쟁기업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 부여자로서 역할이다. 코닥은 제록스에 그런 역할을 해주었다(이제 코닥은 그 시장에서 사라졌다). 한때 유익한 경쟁기업이었더라도 생존의 위기에 몰리면 무익한 경쟁기업으로 돌변한다. 끔찍한 좀비기업이 되는 것이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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