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한국유행가연구원장
유차영 한국유행가연구원장

고유의 명절 설이 눈앞에 다가왔다. 이런 명절이 다가오면 사람들 맘속에는 향수(鄕愁) 꽃이 피어난다. 이 세상에 가장 가슴 아린 향수꽃은 노래꽃, 그중에서도 유행가꽃이 정수(精髓)이고 백미(白眉)이다. 유행가는 역사 속에서 피어난, 노래와 사람과 역사를 얽은 꽃이기 때문이다.

그 꽃은 억년 시류 속 보물인데, 2023년 가수 구재영의 목청을 넘어온 신곡 <장항선>이 그런 꽃이고, 노래 속 화자가 바로 그런 꽃떨기이다. 선물 보자기 한 아름 안고 고향으로 달려가던 장항선 기차 속, 내 기차표 자리에 앉아서 졸던 그 여인, 가수 구재영의 한 평생 해로동반(偕老同伴) 반려이다. 마주하여 보고 있어도 또 그리운 그 여인~.

세월도 기차 타고 갔다 / 다시 못 올 추억 속으로 / 내 청춘을 싣고 가던 그 열차 / 그리운 장항선 열차 / 선물 가방 안고 서서 가던 추석날 / 내 기차표 자리에 앉았던 그 여자 / 일어나란 말도 못 하고 / 꾸벅꾸벅 졸다가 / 서천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 장항까지 가고 말았네 / 보고 싶은 그 여인아.

노랫말이 기차 속 풍경화다. 그리운 고향을 향하여 마음은 성급하게 달려가고 있는데, 속내 느긋한 완행열차는 더디게 나아간다. 치익 푹~ 칙칙푹푹~. 서천을 지나 장항으로 덜컹덜컹~. 그 차 안, 가수 구재영의 자리에 앉아서 졸고 있는 어여쁜 낭랑 처자, 그 처자를 내려다보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총각 모습이 유리창 밖에서 훤히 들려다 보이는 듯하다. 동영상으로 클로즈업되는 푸근한 장면이다.

그랬다. 산업화로 치닫던 이농향도(離農向都) 시절의 정겨운 전경이다. 얼마나 고달팠던가. 산업현장의 부지런한 손놀림, 야근과 휴근 연속이던 저들의 땀과 눈물과 한숨 덕분에,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화사함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장항선> 노래다. 그래서 유행가를 역사의 보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탄생 시대의 이념과 대중들 삶의 감성을 머금은 유물~. 노래와 사람과 역사의 마디를 얽은 스토리텔링이 바로 유행가의 유행화꽃이다.

이 노래는 나훈아의 <고향역>(원곡, 차창에 어린 모습)을 추격(追擊) 추월(追越)할만한 향수의 감정 웅덩이를 휘젖는다. 21세기 한국판 대표 노스텔지어 송이라고 할 만하다.

<장항선> 노래를 절창하는 주인공 구재영도, 그의 동행 반려 노래 속 주인공 아낙네도 베이비부머 세대다. 검정고무신 세대, 동동구루무 세대다. 춘풍기풍춘색궁색(春風飢風春色窮色)의 보릿고개를 넘은 세대다. 그러니 오늘날 7080세대 그 누가 <장항선> 노래의 주인공이 못 될까.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걸린 120만여 곡 노래는 저마다 탄생 모티브가 있다. 큰 틀에서의 대중가요 모티브 하나는 사랑 배반 이별 화해 재회 등 사연이다. 다른 하나는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삶의 이념과 감성을 아우르고 있다.

좀 좁은 폭의 유행가는 역사 속의 사건 마디와 인물을 재조명하여 환생시킨다. 특정 지역을 서정 서사하기도 한다. 유행가의 고향이라고 하면 좋으리라. 이런 유행가가 스토리텔링의 대상 곡이다.

그리하면, 21세기 노스텔지어 송 <장항선>의 탄생 배경지는, 가수 구재영의 고향 서천과 노래 속 화자(구재영 아내)의 고향 장항이다. 서천은 곰솔을 군목(郡木)으로, 동백꽃을 군화(郡花)로 정하고 있다. 식물도감에 의하면 동백(冬栢)은 위도상으로 서천까지만 자생하는 꽃이다.

서천은 북쪽으로 보령, 남쪽으로 금강을 사이에 두고 군산, 익산과 접해 있다. 나훈아의 <고향역> 탄생지가 익산의 황등역임을 모르는 이가 많을 텐데, 이참에 <고향역>과 <장항선>을 노스텔지어 감성의 기억 속에 같이 도사리면 좋겠다.

장항은 서천군에 속한 읍이다. 금강 북쪽에 위치하고, 삼국시대에는 백제 사비성을 지키는 주요 바다 관문이었다. 중국과의 교역하던 기벌포가 있었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676년 11월, 이곳에서 당나라 수군을 격파함으로써 나당전쟁(670~676)에서 승리하였다.

한적한 촌락이었지만 1931년에 장항선이 개통되고, 1937년 장항항이 개항되면서 발전하여, 1938년 10월 장항읍이 되었다. 장항(長項) 명칭은 장암리와 항리를 합친 것이다. <장항선> 노래는 장항선 철길 개통 92년 만에 피어난 유행가꽃이고, 이 노래 전주(前奏)에 매달린 기적소리 나팔이다.

장항선은 천안에서 익산으로 이어지는 철길이다. 원래는 충남선이었고, 천안에서 장항까지 운행하던 철길, 종점이던 서천군 장항읍 이름을 따라 장항선으로 불렀다. 1955년에 붙여진 이름이다. 장항선 철길이 개통된 몇 년 뒤 구재영도 이 세상에 나왔다. 바람막이 대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양지바른 언덕바지 촌마을 귀퉁이에서.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탄생한, 6.25전쟁 이후 베이비부머 중심세대인 가수 구재영이 노래꾼이 된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어린 시절부터 가수 꿈은 품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의 사회생활은 행사용 판촉물납품업이었다. 뒤이은 길은 사람들의 경제적 삶을 설계해 주는 보험컨설턴트, 대리점 상호를 <재영대리점>으로 내걸었다.

스스로 이름을 내걸었으니 얼마나 치열하게 몰입하였을까.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이 업이 그를 가수의 길로 안내를 했던 것. 그는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수연(壽宴) 잔치에 참석했다가 펑크를 낸 사회자를 대신하여 마이크를 잡았었다. 그날 박수갈채를 받은 행사 진행은 입소문을 타고 풍성풍성~. 그렇게 크고 작은 행사장 무대를 누비면서 가수의 길을 튼 것이다.

2014년 데뷔곡 <맨발의 청춘>(김병걸 사, 노영준 곡)이 바로 그 시작이었다. 기댈 곳 없는 세상에/ 부평초처럼 떠다녀도/ 마음이 가난했거나/ 비겁하지 않았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어도/ 가슴이 뜨거웠다/ 오늘은 내 삶이 맨발로 걷지만/ 내일이면 웃으리라. 그의 데뷔곡도 칼칼하고 선명하다. 우리네 인생, 맨발이지 않았던 이가 있으랴.

2023년을 기점으로 30여 년 전 서천으로 가는 장항선 열차 안에서 구재영은 평생 귀인을 만났다. 추석 고향길이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그는 잠시 찬바람을 쏘이려고 자리를 뜨면서, 곁에 서 있던 처자(아가씨)를 자신의 자리에 앉혔었다. 잠시 뒤에 돌아와 보니 그 처자는 잠이 들어 있었다.

그렇게 기차 안에서 앉고 서고, 서고 앉은 동행의 길이 오늘까지 이어왔다. 평생의 반려 백년해로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아내와 남편이다. <장항선> 노래의 주인공, 그녀는 시어머니를 99세까지 봉양(奉養)한 21세기의 효부(孝婦)이다.

한국대중가요 100년, 유행가와 역사앙상블을 풀어헤쳐서 스토리텔링하면 사연이 절절하다. 김태희의 <소양강처녀>는 당시 18세이던 윤기순 여사, 춘천강 민물어부 사공의 딸이다. 이미자의 <삼백리 한려수도> 속 임 마중 섬 색시는, 작사가 정두수의 첫사랑이다. 하춘화의 <삼천포 아가씨>는, 서울로 가기 위하여 삼천포에서 부산포로 배를 타고 떠나간 낭군을 기다리던 삼천포약국집의 딸이다.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 속,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던 여인은 마포나루에서 하늘로 먼저 간 낭군을 그리워하던 아낙네다.

사람 팔자 모를 일이다. 운명(運命)이기도 하고, 때로는 숙명(宿命)이기도 하다. 이 운명과 숙명을 합치면 신명(神命)인데, 이것을 우리는 살아온 세상을 뒤돌아보면서 팔자(八字. 생년·생월·생일·생시)라고 한다. 그러니 팔자는 앞을 내다보는 미래가 아니라, 내가 걸어온 발자국이라고 해야 한다. 인류 역사의 궤적도 마찬가지다.

망치를 든 철학자, 신은 죽었다고 절규하던 철학자 니체가 지은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의 운명애(運命愛)가 김연자의 목청을 넘어 <아모르파티>(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로 환생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창밖의 바람 소리가 차갑고 매섭게 울린다. 깊은 겨울 속이다.

저 찬 바람을 가르면서 장항선 열차 속으로 들어서야겠다. 서천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장항까지 따라가게 할 귀인을 만날지 그 누가 알랴. 서천 해변에 가면, 장항 바다 기슭에 가면 제철 만난 동백꽃이 환하게 맞아줄 테니~. 기다림에 애타는 내 사랑을 일러줄 터이니~.

고향을 향하여 마음이 몸보다 앞서서 달려가는 새벽이다. 설레는 설, 구정(舊正)이란 용어가 세월 바다에 가라앉아 가지만, 여전히 설은 새봄의 문턱이다. 660만 중소기업의 노래하는 CEO님들이시여, 새해 복 많이 받으소서. 기업번창으로 대한민국을 굳건하게 하소서.

 

한국유행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한국유행가 스토리텔러

문화예술교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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