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작가·번역가
장경덕 작가·번역가

아이스하키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웨인 그레츠키(캐나다, 1961~)가 말했다. “나는 퍽이 있던 곳이 아니라 퍽이 갈 곳으로 달려간다.”

기업이라면 지금까지 돈이 된 사업이 아니라 앞으로 돈이 될 사업을 보고 달려가야 한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이렇게 말했다. “기존 기업 경영자들이 실패하는 까닭은 잘못된 결정을 해서가 아니라 ‘곧 역사가 될 환경에 맞는’ 올바른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파괴적 혁신 이론이 1995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처음 소개되고 20년이 지났을 때 크리스텐슨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개념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그는 이 이론이 널리 알려지기는 했어도 핵심 개념을 오해하거나 기본 원칙을 잘못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기술과 시장의 격변으로 기업의 갑작스러운 부침이 나타날 때마다 상투적으로 파괴적 혁신을 가져다 붙였다.

‘파괴’는 더 적은 자원을 가진 더 작은 기업이 이미 확고한 자리를 굳힌 기존 기업에 성공적으로 도전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기존 기업은 가장 까다로운(보통 가장 수익성 높은) 고객들을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향상하는 데 집중한다. 그래서 어떤 부문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높은 품질과 성능을 제공하면서 다른 부문은 수익성이 낮다며 무시한다. 파괴적 기업은 바로 그들이 무시한 세부 시장에 뛰어든다. 덜 까다로운 고객을 목표로 한 그들의 제품은 성능과 수익성이 낮다. 그러므로 기존 기업은 그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하위 시장에서 교두보를 마련한 파괴적 기업은 기술 향상으로 점차 상위 시장에 진출한다. 마침내 기존의 주류 고객들이 새로운 기업의 혁신을 대량으로 받아들이면 파괴가 나타난다.

파괴는 기존 기업이 무시하는 저가 시장이나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비소비자를 소비자로 바꾸는) 새로운 시장에서 나타난다. 파괴적 기업의 초기 제품과 서비스는 기존의 주류 고객들이 보기에 열등한 것이다. 크리스텐슨의 개념에 따르면 우버의 서비스는 파괴적 혁신이 아니다. 우버는 기존 택시보다 저가 시장에서 열등한 서비스를 제공한 것도 아니고 택시를 이용하지 않던 비소비자를 소비자로 끌어들인 것도 아니다. 애플의 아이폰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기존 기업들과 같은 고객을 겨냥했고 열등한 제품이 아니었으므로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에 해당한다. 하지만 아이폰은 개인용 컴퓨터(PC) 대신 인터넷에 접속할 새로운 수단을 제공했으므로 PC 시장에서는 파괴적 혁신을 이룬 것이다. 혁신이 존속적이냐, 파괴적이냐는 중요하다. 존속적 혁신과 달리 파괴적 혁신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뉴코가 열등한 저가 제품으로 시작해 상위 시장까지 치고 올라간 것은 전형적인 파괴적 혁신이었다. 거대한 일관제철소를 가지고 고품질 철강을 생산하는 유에스스틸은 날렵하고 유연한 미니밀 업체인 뉴코의 도전을 넋 놓고 보고 있지는 않았다. 뉴코와 같은 기술에 투자할까 하고 계산기를 두드려보기도 했다. 이미 감가상각이 끝난 기존 제철소를 이용하면 톤당 350달러짜리 제품을 원가 50달러로 생산할 수 있었다. 뉴코처럼 새 제철소를 지으면 원가는 270달러로 늘어날 터였다. 유에스스틸은 지난날 성공을 안겨준 역량에 안주하기로 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수익성을 극대화한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컴퓨터산업은 파괴적 혁신의 파노라마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만들던 IBM에게 디지털이큅먼트(DEC)의 미니컴퓨터는 파괴적 기술이었다. 메인프레임 제조업체들이 성능과 수익성이 떨어지는 미니컴퓨터를 무시한 것은 어떤 면에서는 합리적이었다. 한동안 시장을 지배했던 미니컴퓨터 업체들이 개인용 컴퓨터를 무시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후반 데스크톱 컴퓨터가 미니컴퓨터에 견줄 만한 성능을 제공하자 파괴가 일어났다. 그다음에는 휴대용 컴퓨터가 파괴자로 등장했다.

IBM과 DEC는 가만있지 않았다. DEC는 뒤늦게 네 차례에 걸쳐 PC 시장 공략에 나섰다. 새 경영진도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자원을 배분하는 이들은 왜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에 돈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IBM의 접근법은 달랐다. 처음에는 PC 사업을 위해 뉴욕 본사와 멀리 떨어진 플로리다에 자율적인 조직을 만들었다. 기존 사업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과 논리로 추진하려는 것이었다. DEC는 기존 기업이 파괴적 혁신에 대응하려면 독립적인 새 조직을 꾸려야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는 원리를 몰랐거나 실행할 능력이 없었다.

퍽이 갈 곳으로 달려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하키 선수나 기업 경영자나 마찬가지다. 그럴수록 기업의 역사에서 파괴적 혁신의 패턴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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