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작가·번역가
장경덕 작가·번역가

‘세간의 이목을 끌며 시장에 진입한 기업의 전략이 특별한 유형의 파괴를 이룬다고 가정하는 것은 실수다. 이런 사례는 흔히 잘못된 범주에 들어간다. 요즘 가장 두드러진 예는 테슬라 자동차다.’

한 지혜로운 경영학자가 테슬라는 파괴적 혁신의 사례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름 아닌 파괴적 혁신 이론으로 유명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다. 그가 2015년 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마이클 레이너, 로리 맥도널드와 함께 쓴 글을 보자.

‘이 회사가 파괴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테슬라는 자동차 시장의 상단에 발판을 마련했고(차 한 대에 7만 달러 이상을 기꺼이 지출하려는 고객을 겨냥했다), 이 부문은 기존 기업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시장이 아니다. 테슬라의 진입은 당연히 기존 경쟁자들의 주목을 받고 대규모 투자를 끌어냈다. 파괴적 혁신 이론이 맞는다면 테슬라의 미래는 훨씬 큰 기업에 인수되거나 시장에서 의미 있는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 여러 해 동안 힘겹게 싸우는 모양이 될 것이다.’

2015년 테슬라의 주가는 (고점 대비 반 토막도 안 되는) 지금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2015년 12월에는 15달러 선을 오르내렸고 2021년 11월에는 장중 한때 414달러까지 치솟았다. 파괴적 혁신 이론의 대가가 향후 6년 만에 주가가 20배 넘게 뛸 기업의 미래를 ‘더 큰 기업에 인수되거나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어렵게 싸울’ 것으로 내다봤다면 뭔가를 놓쳤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그동안 투자자들이 테슬라의 혁신을 잘못 평가하며 투기적 거품에 뛰어들었다고 봐야 할까?

시간을 돌려보자. 2014년 가을 한 투자자가 크리스텐슨 교수에게 정중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테슬라 주식을 보유한 그 투자자는 일론 머스크가 새로운 파괴적 모형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크리스텐슨의 모형에서 파괴적 혁신 기업은 처음에 열등한 저가 제품으로 시장에 진입해 점차 상위 시장으로 치고 올라간다. 기존 기업은 기회비용을 생각할 때 수익성 높은 주류시장에 집중하면서 하위시장을 무시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테슬라는 처음 10년 동안 10만 달러 넘는 고가의 전기차를 팔았다. 2015년에는 7만 달러짜리 모델을 도입하고 몇 년 안에 3만 달러대 차를 예고한 터였다. 이론 모형과는 달리 처음부터 고가시장에 치고 들어가 하위시장으로 내려오는 전략이었다.

크리스텐슨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톰 바트먼과 동료들에게 부탁해 과연 테슬라가 새로운 하향식 파괴적 혁신 모형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검토하도록 했다. 테슬라의 혁신이 파괴적이냐 존속적이냐는 수많은 자동차업체와 협력업체, 투자자들에게 다 같이 중요한 문제였다.

바트먼의 연구팀은 다섯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 신규 진입 기업은 필요 이상의 고성능 고가 제품을 쓰던 고객들을 겨냥해 저성능 저가 제품을 공급하거나, 기존 제품을 이용할 수 없던 고객들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제품을 내놓았는가? 둘째, 그것이 비대칭적 동기를 유발했는가? 다시 말해 신규 기업은 상위 시장으로 치고 올라가려는 강력한 동기를 갖는 데 비해 기존 기업은 그에 맞서 싸울 동기를 갖지 못하는가? 셋째, 신제품은 낮은 원가구조를 유지하면서 고객의 기대에 맞춰 빠르게 성능을 향상할 수 있는가? 넷째, 판매 채널을 비롯해 새로운 가치 네트워크를 창출하는가? 다섯째, 그것은 모든 기존 기업을 파괴하는가, 아니면 기존 기업 중 발 빠르게 그 기회를 활용하는 기업도 있는가?

연구를 진행하면서 분명해진 것은 테슬라는 파괴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고가의 제품을 내놓고 점차 성능을 향상시키는 테슬라는 파괴적 혁신에 대한 크리스텐슨의 정의에 맞지 않았다. 크리스텐슨의 이론에 따르면, 파괴적 혁신 전략을 따르는 기업은 오랫동안 경쟁기업의 강력한 반격에 직면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테슬라는 전형적인 ‘존속적 혁신’ 기업이었다. 그렇다면 틈새시장을 벗어나는 즉시 격렬한 경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

크리스텐슨이 테슬라 투자자의 질문을 받았던 2014년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1650만 대의 차가 팔렸다. 이 중 순수한 전기차는 12만 대(0.7%)에도 못 미쳤다. 테슬라는 당연히 이 틈새시장을 벗어나 거대 자동차업체들과 맞붙으려 했다. 기존 경쟁자들이 모두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격화하고 수익성은 떨어질 것이다. 테슬라는 대단히 험난한 전략적 경로를 선택한 것이다. 적어도 이론 모형은 그렇게 예측했다.

크리스텐슨의 이론은 놀라운 설명력을 가졌다. 하지만 테슬라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일까? 2015년 그와 동료들의 글은 테슬라는 진정한 파괴자인가에 관한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의 모형에 딱 들어맞지 않는 사례를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모형도 제시됐다. ‘빅뱅 식 파괴’도 그중 하나였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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