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한국유행가연구원장
유차영 한국유행가연구원장

우리 유행가가 품고 있는 ‘역사와 노래와 사람 앙상블’을, 좀 더 찰지게, 맛나게, 멋지게 유행시키는 유행가스토리텔링 콘텐츠 깃발을 흔들자. 오늘날 복고곡(復古曲) 중심으로 펄럭거리는, 지상파 공중파 스튜디오 가창열풍(歌唱熱風)에 새로운 장(場)을 더하는, 경향(傾向)을 선도하자는 주창이다.

이러한 재미와 흥미 중심의 바람결에, 의미를 더하는 유행가스토리텔링 콘텐츠 깃발 흔들기 캠페인을 제언하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시도를 물리적인 구동축(驅動軸)과 시스템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정부(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해야 할까, 문화예술 동호 단체가 앞서야 할까, 아니면 의지와 열정만 넘치는 특정 매니아(개인)가 주창해야 할까.

이런 맥락에서 오늘 《노래하는 CEO》 곡목은, 우리 대중가요 100년사에서 가장 통속적인 노랫말이면서도 대중들 삶을 리얼리티로 얽은 노래, 송대관의 <유행가>를 스토리텔링으로 펼친다. 유행가 노래 가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 음정 박자 다르지만 넘치는 감정으로 부르는 노래이다.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 나도 한번 불러본다 / 쿵쿵따리 쿵쿵따 짜리자짜 / 유행가 노래 가사는 /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 / 오늘 하루 힘들어도 / 내일이 있으니 행복하구나 /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 나도 한번 불러본다 / 유행가 유행가 서글픈 노래 / 가슴 치며 불러본다 / 유행가 노래 가사는 / 사랑과 이별 눈물이구나 / 그 시절 그 노래 / 가슴에 와닿는 당신의 노래.

그렇다. 유행가 노래 가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다. 우리(we)는 바로 너(you)와 나(me)이다. 결국 너도 나이고 나도 나이며, 나도 너이고 너도 너인 것이 우리 사는 세상이다. 내(너)가 바로 우주이고 세상살이의 핵심이다. 세상 사는 이야기, 내가 아닌 그 누구의 큰 상처와 아픔과 시련도 내 어깨 위에 걸린 한 자루의 모래주머니 무게보다 가볍다. 타인의 사연은 다만, 마음을 아리게 할 뿐이다.

그래서 유행가가 머금고 있는 주관적인 사연과 탄생 시점의 역사적인 애환을 스토리텔링하는 콘텐츠를 육성하고, 공감 공명하는 장을 펼쳐야 한다. 오늘 하루 힘들어도 내일이 있으니, 행복한 마음의 태세를 견지할 수 있음의 이유이기도 하다. 서글퍼서 가슴을 쳐보지만, 견디어 낼 수 있는 흡입력과 인내력을 공유하거나 충전하는 모멘텀은 새로운 지향점을 바라보게 한다.

1곡의 유행가 노랫말을 인수 분해하면 작사, 작곡, 가수, 시대, 사연, 모티브, 사람의 삶과 시대정신이 매달려 있다. 저마다의 노랫말은 직유와 은유와 비유로 서사 서정되는데, 그래서 유행가는 시(詩)보다는 경(景)과 화(畵)에 가깝다. 따라서 산문적으로 풀어서 엮어야 대중들 감정선에 불을 댕기기가 용이하다. 대중 인기의 비결이기도 하다.

이제는 우리 유행가에 대한 새로운 시선의 갈래를 펼쳐야 한다. 전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위아래 층층으로 구획하는 통속의 시선과 관념 잣대에, 우리 고유의 비단결 같은 품과 결을 더해야 한다. 유행가는 통속(通俗)이고, 클래식은 별속(別俗)이라는 생각에 매달리면, 범속(凡俗)의 갈래에서 멀어져 있는 견해다.

우리 유행가는 KPS(Korean Popular Song)다. 그러니 저마다의 곡조는 탄생 시기의 시대 이념과 정신과 삶을 품고 있고,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감성을 묵이나 두부 같은 덩어리로 엉어리지어놓았다. 이러한 메시지와 묵시가 없는 노래는 100년 세월의 강 물결 위에 유랑하는 돛단배가 될 수가 없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걸린 국민애창곡 면면이 그 증거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1926년 오사카 닛토레코드에서 딱 한 번 녹음된 이래, 97년간 풍성된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고 한, 윤심덕의 사랑 비련에 공감하는 대중들의 가슴 늪이 감성 바다가 되었다.

1935년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은 그 전해 가을, 대한제국 10대도시 향토애향가사 모집에 응모한 3천 곡 중에 1등을 한 <목포의 사랑>이 원제목이다. 1947년 현인의 <신라의 달밤>은 우리대중가요사에 최초의 앙코르곡이다. 서울예술극장의 본체인 시공관에서 음반으로 녹음되기 이전 노래를 현인이 불렀고, 대중들은 재창(再唱)을 아홉 번이나 청했다.

1952년 5월 25일, 6.25전쟁 임시수도이던 부산에서 발생한 정치파동에 매달린 절창은 박재홍의 <물방아 도는 내력>이다.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다고 외친 곡조는, 대중들 가슴팍을 다독거렸고, 입가에 소가 머금은 듯한 헛웃음을 머금게 했다. 1951년 1월 4일, 1.4후퇴의 동부전선 진원지 흥남철수작전을 서사한 <굳세어라 금순아>도 그 시절의 서사, 검정색 물감을 담뿍 머금고 있다.

1975년 조용필이 절창한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로부터 1년 전 제29주년 광복절 기념행사 도중에 발생한 문세광 사건에 매달린 절창이다. 만경봉호를 통하여 지령과 활동 자금을 받은 조총련계 만행이었다. 이에 대한 후속 조처로 시행된, 조총련모국방문추석성묘단 일행 698명이 부산항 제1부두로 입항을 할 시간에 울려 퍼진 노래다.

1982년 이동기는 꽃 잎술을 입에 문 <논개>를 절창하여, 임진왜란 제2차진주성전투 승전파티를 하면서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남강 위암(危巖)으로 동반 유인하여, 남강물에 함께 뛰어들어 순국한 사연을 환생시켰다. 이후 논개의 시신은 조선 의병에 의하여 남강 지수목에서 인양되어, 지금 함양군 금당리 능선에 남편이던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와 같이 아래위로 잠들어 있다.

1992년 김흥국이 열창한 <59년 왕십리는> 고려왕조(918~1392)와 조선왕조(1392~1910)의 경계 지점, 한양 천도를 위한 상황을 모티브로 만들어지고 불려진 노래다. 고려의 마지막 쿠데타 집권자 이성계가, 나라 이름을 조선으로 정하고, 남경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지형정찰을 보낸 무학대사의 발길이 머문 곳이 오늘날 왕십리다.

1995년 전미경은 바람의 여인 <장녹수>를 절창하면서, 조선 10대 임금 연산군(1476~1506)을 등에 업은 요부(妖婦) 여인네의 물거품 인생 헛바람을 빼냈다. 부귀도 영화도 구름인 양 간 곳이 없었다. 장녹수는 오늘날 동아일보 사옥이 있는 자리에 있던 군기시(軍器寺) 앞마당에서, 군중들이 던진 돌에 맞아서 주검이 돌무덤이 되었었다. 2007년 박상철의 절창 평양기생 <황진이>의 삶도 같은 맥락이다.

2013년 김연자의 절창 <아모르파티>는, 독일의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의 《운명애》(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를 풀어낸 노랫말이다. 산다는 게 다 거른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를 세상에 남기고 가지~. 이 노래는 손인호의 <산 팔자 물 팔자>와 엇대인다. 손금에 새긴 글씨 풀지 못할 내 운명, 인심이나 쓰다 가자, 사는 대로 살아보자~.

위에 펼친 노래 모두가 100년 유행가의 진수다. 이런 유행가 작사사 작곡가는 노래 제조자(제조업자)이다. 가수는 이 완제된 감성 예술품을 작품자들로부터 구매(준다고 하지만, 사실상 매매임)하여, 시장에 내다가 파는 상인이다. 가요황제 나훈아가 말하는, ‘꿈을 파는 예술가’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많은 대중은 저작권과 실연권에 대하여 착각하거나 모르고 있다. 대중가요 저작권은 작사 작곡 편곡가에게만 있고, 가수는 실연권만 있다. 그래서 저작권협회와 실연자협회가 따로 있는 것이다.

<유행가> 2절은 반복적이다.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본다/ 쿵쿵따리 쿵쿵따 짜리자짜.../ 유행가 노래 가사는 사랑과 이별 눈물이구나/ 음정 박자 따로지만/ 넘치는 감정으로 부르는 노래. 리얼리티 노랫말이다. 한 사람의 통속적인 삶이 가락으로 영글었다. 이런 주관적인 삶의 궤적은 객관적인 공유의 감흥 깃발로 나부낀다.

이 노래를 부를 때, 송대관은 독특한 발걸음과 때를 미는 듯한 손동작을 한다. 이는 노래하는 춤꾼 박진영이 직접 짜준 안무다. 송대관은 아내 이정심이 써준 노랫말이 히트할 거라는 확신으로, 이름난 작곡가들을 찾아다녔단다. 하지만 하나같이 작곡비를 높게 달라고 해서 평소 친분이 있던 최정환에게 부탁하여 곡을 완성했단다. 노래는 통속적인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노래방 인기곡이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랜 세월 바람을 타고 흘러 오늘날 세계무대에 우뚝한 K-컬쳐, K-팝 물결을 따라 우리 것으로 고유화(固有化)된, 외래 용어이면서도 본디 우리 것이 아닌, 트로트(trot)를 순수 우리말 용어로 변경하기를 제언한다.

필자가 국민제안 한 단어는, 우리 고유노래 아리랑과 가요를 합친 단어 ‘아랑가(ArangGA, 我浪歌·我朗歌)’다. 하지만 필자의 국민제안은 채택되지 않았다. 이유는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로 다시 문의(제언)하라는 역 제언 메시지와 국민운동으로 전개하라는 전언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안번호 1AB-2312-0015650, 『현재 통용하고 있는, 우리 대중가요의 한 장르인 ‘토로트’용어를, 우리 말 고유의 명칭(단어/용어)인 ‘아랑가’로 변경하는 캠페인을 정부(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전개』하기를 제언한 내용이었다.

불채택 이유는,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용어 변경에 대한 국민적 합의 필요, 자연발생적인 새로운 용어의 사용과 확산, 이에 대한 사용자들의 합심 노력, 개인의 언어 주권에 대한 국가 통제 불가,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로의 재문의 등이다. 산 넘어 산, 옥상옥과 같은 생각이 든 것은 왜일까.

개인의 열정은 천착이 되고, 이런 천착은 유행을 만들고, 유행이 확산되면 문화가 되고, 문화가 지속되면 역사가 된다. 이러한 진화 승화 강화의 문화예술적 주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닌가.

개인(필자)이 국민 제안한 내용을, 다시 국립국어원으로 패싱한 처사다. 얼마 전 뉴스로 회자 된, 충TV 주인공 공직자 사연이 반추되었다. 찾아가는 서비스, 창의적인 소임 수행, 제안자와 주무관의 동행, 유체이탈 화법 같은 공직자의 소명감(calling)과 사명감(mission)은 어디에 있는가 등등의 생각으로 머리가 어질거린다.

임자도 주인도 없는 ‘트로트’라는 굴러온 돌을, 누가 순수 우리 말, ‘아랑가’로 치환할 것인가. 1914년 미국의 폭스 트롯이, 왜국으로 천이되면서 도롯도가 되고, 이것이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트로트로 자리 잡았다. 이참에 ‘아랑가’라는 노랫말을 하나 지어서, 송대관의 목청에 걸어야겠다. 송대관의 <유행가> 같은 깃발이 될지, 누가 아니라고 하랴.

한국유행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문화예술교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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