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작가·번역가
장경덕 작가·번역가

마틴 에버하드는 2003년 7월 친구 마크 타페닝과 테슬라라는 “기술기업이기도 한 자동차 제조업체”를 설립했다. 이듬해 2월 650만 달러를 투자해 테슬라 최대주주가 된 일론 머스크는 2007년 8월 에버하드를 CEO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소송전을 벌인 두 사람은 2009년 9월 합의에 따라 에버하드, 타페닝, 머스크와 엔지니어인 이언 라이트, 제프리 B. 스트로벨 다섯 사람을 모두 공동창업자로 부르기로 했다.)

에버하드와 타페닝은 테슬라를 먼저 시작했으나 전기차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지는 못했다. 똑같은 예가 하나 더 있다. 이 둘은 1997년 4월에도 함께 회사를 설립했다. 누보미디어라는 전자책 회사였다. 오늘날의 전자책을 생각하면 신석기쯤 되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개인정보 단말기(PDA) 팜파일럿이 막 소개되고 휴대전화는 호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세련됐다.

전자책 구상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1971년 미국에서 마이클 하트가 비영리 단체로 시작한 프로젝트 구텐베르크는 개인용 컴퓨터로 디지털화한 책을 읽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에버하드와 타페닝은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전자책 단말기에 하나의 작은 서재를 집어넣을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으로 누보미디어를 설립했고 최초의 전자책 단말기 ‘로켓 e북’을 내놓았다.

이들은 1997년 말 시작품을 들고 시애틀의 제프 베이조스를 찾아갔다. 반투과 LCD 화면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두 도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전자책이었다. 450g 남짓한 무게에 20시간 지속할 수 있는 배터리를 달았다. 베이조스는 감탄했다. 하지만 마음에 차지는 않았다. 책을 내려받으려면 단말기를 컴퓨터에 연결해야 했다. 이를테면 공항에 가다 문득 생각나 책을 내려받으려면 무선 접속이 가능해야 했다. 그것은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디스플레이의 눈부심도 문제였다. MIT 미디어랩의 전자잉크와 제록스의 전자종이 기술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투자 협상은 무산됐다. 베이조스가 투자자로서 독점권(미래 투자자에 대한 거부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존이 도운 전자책의 성공을 반스앤드노블 같은 경쟁자가 가로챌까 염려했다. 일이 틀어지자 누보미디어는 결국 오프라인의 강자 반스앤드노블과 거대 출판사 베텔스만을 투자를 받고 지분 절반을 넘겼다. 로켓 e북은 첫해에 2만 대를 팔았고 1999년에는 시스코의 투자도 받았다. 2000년 2월에는 젬스타 TV 가이드에 인수됐다. 1억8700만 달러짜리 거래였다.

제프 베이조스가 전자책 시장을 석권한 킨들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2007년 11월 19일이었다. 그전에 이미 로켓 e북뿐만 아니라 ‘에브리북’ ‘밀레니엄’ ‘소프트북’ ‘소니 리더’ 같은 전자책들이 나왔다. 하지만 저장 용량과 배터리 수명, 디스플레이 기술, 책 종수 면에서 미흡했다. 베이조스는 젬스타가 e북 사업을 접던 2003년에 이미 전자책 전용 단말기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는 전자잉크 기술이 무르익는 것을 끈기 있게 지켜봤다. 또 값싼 무선 접속의 혜택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기다렸다. 그는 타이밍의 달인이었다. 컨설턴트 래리 다운즈와 폴 누네스의 표현처럼 ‘빅뱅 파괴’가 이뤄질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빅뱅 파괴는 안정적인 사업을 몇 달, 심지어 며칠 만에 침식하는 새로운 유형의 혁신이다. 크리스텐슨의 혁신 모형에서는 파괴의 징후를 일찍 알아본 기존 기업의 경영자가 변화에 대비할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검증하면서 주류 고객들이 그 가격과 성능을 받아들이게 될 때를 대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빅뱅 파괴는 그런 식의 느긋한 대응을 허용하지 않는다. 빅뱅 파괴자들은 일부 하위 시장 고객만을 겨냥해 열등하고 값싼 제품으로 시장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 기존 제품과 서비스는 아예 경쟁 상대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들은 통상적인 경쟁 규칙 자체를 무시한다.

다운즈와 누네스는 빅뱅 파괴가 특이점(singularity), 대폭발(big bang), 대붕괴(big crunch), 엔트로피(entropy) 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을 설명하면서 상어 지느러미 이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수면 위에 삐쭉 튀어나온 지느러미를 떠올려보자. 지느러미는 잔물결 위로 갑자기 솟아올랐다가 그만큼 가파른 하향 곡선을 그린다. 저자들이 빅뱅 이론에서 빌려온 어려운 용어들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물밑에서 끓다가 어느 순간 상전이를 겪는 변화의 양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양상을 묘사하는 더 유명한 표현이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자넨 어쩌다 파산했나?” “서서히, 그러다 갑자기.”

빅뱅 혁신은 상승만큼 붕괴도 가파르다. 2014년 ‘빅뱅 파괴’를 낸 다운즈와 누네스는 몇 년만 지나면 이 책에서 빅뱅 파괴의 사례로 든 기업과 제품, 서비스는 이미 사라지고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그렇지 않았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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