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한국유행가연구원장
유차영 한국유행가연구원장

21세기 대한민국 범인(凡人)들은 자연생태 확산을 꿈꾸는데, 치인(治人)들은 도시확산을 주창하고 있다. 큰 도시의 울타리와 경계 확산을 통한 지경 확대와 아우름 틀의 재편 시도이다. 삼면 바다의 우리 반도, 허리 조른 철조망 휴전선, 국토 7할의 산, 자연 인구 감소, 감소인구의 도시 집중, 총체 인구의 고령화, 이농향리의 무인공산·무농황토 확산,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져 가는 소성영아(消聲嬰兒) 시대, 이런 다난한 현실 방정식의 해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우리 660만 《노래하는 CEO》들의 각성은 무슨 그림일까.

이런 시류에서 떠오른 영감(靈感)이, 생태광역자치단체 설정을 통한 우리나라 미래 삶의 환경 진화 모색이고, 그 설정이 설악생태연광역시(雪嶽生態光域市) 혹은, 대청자연광역시(大靑自然光域市)이다. 양양·속초·인제·고성을 아우르는 생태자연광역자치단체의 구상이다. 이러한 생각의 맥락에 매달린 유행가가 하춘화의 절창 <설악산 메아리>이다. 청춘 낭만 객을 향하여 손을 잡고 찾아가자고 청하던 노래.

흰 구름 덮인 설악산으로 그대와 손잡고 / 휘파람을 불면서 하이킹 가자 / 진달래 철쭉꽃 우리들을 부른다 / 레이 레이 레이호 / 레이 레이호 / 산메아리 들려온다 사랑노래 들린다 / 시원한 폭포수가 노래를 합창하면 / 오색의 무지개 핀다 / 그대와 손을 잡고 설악산 찾아가는 / 즐거운 청춘 하이킹 / 형제봉으로 마등령으로 즐거운 하이킹 / 콧노래도 흥겹게 설악산 가자 / 에델바이스가 우릴 부른다 / 레이 레이 레이호 / 레이 레이호 / 산새들이 노래한다 흰 구름이 떠 있다 / 금강산 찾아가다 설악산 봉우리 된 / 전설의 울산바위로 / 발걸음 가벼웁게 비선대 찾아가는 / 즐거운 청춘 하이킹.

이 노랫말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설악산 대청봉을 향하여 달려가자’이다. 제목과 가사에 호출된 설악산·오색약수·형제봉·마등령·울산바위·비선대 등을 합치면 그렇다. 생각의 범주를 좀 더 넓히면, 신선봉을 연하여 북녘으로 고성군으로 이어지고, 서편으로 내린천을 따라 흐르면 인제 안골로 이어진다. 위도상으로 북에서 남으로 훑으면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을 거쳐 대관령에 이른다. 한반도 동편 능선의 동서령이고, 그 령(嶺)의 중심이 대청봉이다.

대청봉은 북위 38도7분, 동경 128도27분에 걸려 있다. 최고점은 1,708m,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서면 오색리와 인제군 북면 용대리, 속초시 설악동과 엇대어 있다. 예전에는 청봉(靑峯) 또는 봉정(鳳頂)이라고 불렀다.

청봉이라는 이름은 봉우리가 푸르게 보인다는 의미로, 창산 성해응(1760~1839)이 지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 유래 되었고, 봉정은 봉황의 머리라는 의미이다. 이 봉우리는 태백산맥에서 가장 높고, 남한에서는 한라산 백록담(1,950m) 지리산 천왕봉(1,9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그 골골의 능선과 속내를 살피면 공룡릉·화채릉·서북릉 등으로 명명되며, 주요 능선의 출발점으로 내설악·외설악의 분기점이 되며, 천불동계곡·가야동계곡 등 계곡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높이별로 중청봉(1,665m), 끝청봉(1,610m), 소청봉(1,581m)이 형제지간처럼 걸쳐 있다.

일출 일몰이 장관이며 기상 변화가 심하고,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강한 바람, 낮은 온도 때문에 눈잣나무 군락이 관목(灌木)으로 자라고 있고, 망망대해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은 늦가을부터 늦봄까지 눈으로 덮여 있고, 6~7월이면 진달래·철쭉·벚꽃으로 뒤덮인다.

정상을 향하여 오르는 길은 오색 방면, 한계령 방면, 설악동 방면, 백담사 방면의 코스가 있는데, 오색 방면(남설악 탐방지원센터)에서 설악폭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5.0km(4시간) 거리의 코스가 최 단거리 코스이다. 2023년 11월 20일 이 코스에 삭도(索道) 설치를 위한 첫 삽을 떴다. 설악산 오색삭도 착공식이었다. 국무총리 도시사 군수 등이 동참하였고, 40여 년만의 첫걸음이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은 금강산~향로봉~진부령~미시령~북주릉~공룡릉~소청봉~중청봉을 거쳐 이곳 대청봉을 지나 끝청봉~한계령~점봉산~오대산~태백산~소백산~덕유산~지리산까지 연결된다.

필자의 영감(靈感) 포인터가 여기에 있다. 이 백두대간 태백준령 줄기에, ‘설악생태광역시(雪嶽生態光域市) 혹은 대청자연광역시(大靑自然光域市)’를 조성하자는 것이 기획설정의 포인터이다. 이 바탕 그림에 동맥과 정맥의 핏줄을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설계하고 건설하시라. 그러면 천년만년의 민족정기가 되어 흐르고 뛸 것이다.

대청봉을 중심으로 한 인프라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 양양국제공항이 그 첫째다. 글로벌 세계인들이 내리고 오를 수 있는 곳이다. 북으로 멀지 않는 곳에 명산 절경 금강산이 있다. 청정 동해바다 저만치에 울릉도 독도가 있다. 때맞추어 을릉도에 공항이 건설 중이고, 2026년에 관관객을 태우고 이착륙을 할 터이다. 여기에 더하여 동해 독도에 ‘동해독도국제해양컨벤션’을 건설하면 베리~ 굿이다.

<설악산 메아리> 노랫말을 지은 김령인은 최정자의 <금수강산>, 권미라의 <대답 없는 경포대>, 원방현의 <동백꽃 일기>, 박일남의 <그리움> 등의 노랫말을 남겼는데, 그 신상 이력의 궁금증은 훗날 풀어보리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황해 금천 출생 김능인(1910~1937)과 엇대어 본다. 그는 본명 승응순이고, 추엽생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동요창작과 문단활동도 하였으며, 오케레코드 창설과 더불어 발탁된 문예부장이다. 필명 금릉인은 고향 금천의 다른 이름 금릉(金陵)에서 따온 것이다. 남풍월이란 필명도 사용했다. 그는 오케레코드 사장 이철과 연희전문 동문이었다.

<설악산 메아리>를 작곡한 고봉산은 본명 김민우, 1927년 황해도 안악(김구의 고향)에서 출생하여 악극대원으로 활동하다가 1961년 <아메리칸 마도로스>로 데뷔하여 남일석이란 예명도 사용하였다. 그는 젊은 날, 목소리가 크고 뻥이 세다고 하여, 별명이 고대포였으며, <용두산 엘레지> 히트 후 작곡과 노래를 병행하다가 1990년 6월 21일 심장병으로 향년 67세로 타계했다.

그가 남긴 <용두산 엘레지>(추억의 용두산)는, 무적인(이재호 필명) 작사 이재호 작곡 손인호 노래 <울어라 기타줄>의 가수 선정과정에서, 손인호가 노래를 녹음하게 된 배신감이 모티브가 되어 스스로 만든 절창이다. 고봉산이 지방공연 중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손인호의 노래를 듣고, 배신 당한 감정의 불꽃을 피워 올린다. 용두산아 용두산아 너만은 변치 말자~. 노랫말이 첫 소절에 매달린 이유이다.

<설악산 메아리> 노래의 주인공 하춘화는 1955년 영암 출생, 그녀는 예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녀를 1930~40년대생 원로가수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남편은 이인순, 그녀는 우리나라 대중가수 중 최초의 철학박사다. 개인 공연 최다횟수로 기네스북(1991년 총공연 8천 회)에 오른 예술인. 대표곡은 <아빠는 마도로스>, <물새 한 마리>, <잘 했군 잘했어>, <영암 아리랑>, <하동포구 아가씨>, <연포 아가씨>, <아리랑 목동> 등이다.

그녀는 1961년 고복수 선생이 운영하던 동아예술학원에서 노래를 배웠고, 이어서 데뷔곡 <효녀심청 되오리다>를 취입하였다. 이후 아버지(하종오)가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그녀의 노래 끼에 추임새를 복 돋우었다. 고복수의 동아예술학원 출신 가수는 이미자 안정애 오기택 등이다.

1977년 11월 11일 저녁 9시경,‘북한군이 이리를 폭격했다! 피난민이 길을 가득 메웠다’는 제보가 방송국에 들어왔다. 이때 하춘화는 이리역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창인동 삼남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 사고로 59명이 사망하고 1,158명이 부상하였으며, 하춘화가 공연하던 극장도 크게 파손되었다.

이때 코미디언 이주일(1940~2002, 춘천)이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린 하춘화를 꺼내어 들쳐 메고 병원으로 옮긴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이때 이주일도 지붕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머리가 깨졌으나, 어린 하춘화부터 살려야 한다며 깜깜한 극장 안에서 그녀를 더듬어 찾아내어 탈출했다.

사고는 술에 취한 열차 호송원이 다이너마이트 상자 위에 촛불을 켜놓고 잠든 바람에 일어난 사고였다. 다이너마이트 30톤, 뇌관 280kg을 싣고 목포로 가던 화차가 이리역 구내에 정차 중, 호송원 신 모가 저녁 식사 때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고 화차로 돌아와, 촛불을 켜 놓고 잠든 사이 촛불이 번져 폭발한 사고였다. 인명재천(人命在天) 춘화구일(春花求逸)이다. 사람의 명은 하늘에 달려 있고, 하춘화의 명은 이주일이 구했다. 이주일의 본명은 정주일(鄭周逸)이다.

하춘화의 학구 열정은 학교설립으로 꽃을 피웠다. 그가 21세 때인 1976년에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세운 낭주고등학교. 정식명칭은 영암의 옛 명칭 낭주를 붙였지만, 지역주민들은 하춘화고등학교라고 부른다. 그녀의 학력은 화려하거나 빛나지 않고 끈질기다. 짚어보자, 서울수송초등·정화여중·일신여상·경남대병설산업전문대·한국방송통신대·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성균관대 동양철학대학원 예술철학박사. 구슬땀 내음이 절절하다. 그녀 아호(雅號)는 신풍(新豊), 가수 60년에 이르는 동안 200억 원을 기부했단다.

<설악산 메아리> 노래처럼, 양양·속초·고성·인제를 두루 아우르는 설악생태광역시·대청자연광역시가 생성되어, 태백준령과 대한민국과 글로벌 인류에 우뚝한 날이 오기를 앙망한다.

우리나라는 도시와 인구 중심으로 광역자치단체나 지방자치단체를 구획하면, 온 나라가 황폐동공화(荒幣洞空化)될 것이 자명하다. 자연 인구 감소와 도시 집중화가 그 징표다. 그러니 자연과 생태 중심의 광역자치단체 구획을 지향하시라. 설악산 대청봉을 중심으로 한, 《설악생태광역시·대청자연광역시》여~ 어서 탄생하시라. 하춘화의 <설악산 메아리>여 다시 울려 퍼져라.

 

한국유행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문화예술교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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