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책·무진단서부터 80세 이후 암 발병 시 가입금 100% 지급 상품도
금융당국 '단기납 종신보험' 규제로 생보사 새 먹거리로 건강보험 부상

생보업계가 이색적이고 다채로운 특약을 내건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관련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사진/pixabay
생보업계가 이색적이고 다채로운 특약을 내건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관련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사진/pixabay

저출생·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보험 수요의 변화로 성장 한계에 직면한 생명보험회사들이 제3보험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제3보험은 건강, 간병, 질병보험 같은 생보사와 손보사가 모두 다룰 수 있는 보험상품을 뜻한다.

그간 생보사들의 주요 먹거리였던 단기납 종신보험이 금융당국의 강력한 규제 틀에 묶이게 되면서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야 하는 생보업계는 이색적이고 다채로운 특약을 내건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관련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1월 2일) 출시한 삼성생명이 출시한 '다(多)모은 건강보험 필요한 보장만 쏙쏙 S1(이하 다(多)모은 건강보험 S1)'은 건강보험 중 가장 많은 144개의 특약을 제공한다. 특히 18년 만에 재출시한 '파워수술보장' 특약은 질병 또는 재해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를 위해 1~5종 수술 치료 시 약관에 따라 정액보험금을 지급한다.

이어 삼성생명은 같은 달 16일 암과 간병에 대한 보장을 강화한 '삼성 생애보장보험'을 출시하며 건강보험 라인업을 확대했다. 삼성 생애보장보험은 종신보험의 성격을 가진 건강보험으로 가입자가 암에 걸릴 경우 보험료의 50~100%를 돌려받고 사망보장까지 유지된다.

신한라이프의 새해 첫 신상품 역시 건강보험이었다. 삼성생명의 다(多)모은 건강보험 S1과 같은 날 출시한 '신한 통합건강보장보험 원(ONE)'은 진단비, 입원비, 수술비 등 개인의 보장 니즈에 따라 100여가지 특약을 맞춤형으로 조립할 수 있는 통합 건강보험 상품이다.

이 상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의무 특약을 최소화해 불필요한 특약 없이 고객이 자신에게 꼭 필요한 보장만 골라 '나만의 건강보험'을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약 조립을 통해 'DIY(Do It Yourself) 건강보험' 가입이 가능한 셈이다.

무엇보다 신한 통합건강보장보험 원(ONE)은 '무면책'과 '무진단'이라는 파격 조건으로 시장의 눈길을 끌었다. 일반적으로 보험사는 면책 기간(60~180일)을 가입자에게 부여하고 가입자는 기간 내에는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 반면 신한라이프는 면책 기간을 없애고 보험 가입 후 하루만 지나도 질병 진단비를 최소 7000만원에서 최대 2억원까지 받을 수 있게 상품을 설계했다.

흥국생명은 초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80세 이후 발병하는 암 보장에 초점을 둔 '(무)흥국생명 다(多)사랑암보험(해약환급금미지급형V2)'을 출시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80세까지 보장하는 기존 암보험 가입자들이 비교적 저렴한 보험료로 80세 이후를 대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80세 이후 암 발병 시 가입금액의 100%를 지급하고 80세 이전에 발병할 경우에는 20%만 지급한다. 대신 보험료가 기본형의 절반 수준으로 저렴하다.

생보사들이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한 제3보험 시장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그간 생보사들의 효자 상품이었던 단기납 종신보험이 당국의 제지로 사실상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이름 그대로 종신보험이면서 단기성을 띤 보험이다. 고객이 환급률 120%짜리 10년납 종신보험에 가입했다고 가정할 시 매월 100만원씩 7년간 보험료를 납부한다. 이 경우 고객이 납입한 총보험료는 8400만원이 되는데 이후 3년간 계약을 더 유지하고 나서 보험을 해지하면 납입한 보험료의 1.2배(130%)인 1억800만원을 해지환급금으로 받게 된다. 사실상 저축성 보험의 성격을 가진 종신보험인 셈이다.

지난해부터 도입된 IFRS17(새 회계제도)도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를 부추겼다. IFRS17 아래서 가장 중요한 지표는 보험계약마진(CSM)이다. CSM은 보험계약으로 얻을 미실현 이익을 평가한 값인데 일반적으로 저축성 보험보다 보장성 보험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가진 회사가 이 CSM이 높게 책정된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저축성 보험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보장성 보험에 속하기 때문에 많이 팔수록 해당 회사의 CSM은 높아지게 되고 실적도 좋아지게 된다. 문제는 10년 후에 고객들이 일제히 보험 해지에 나섰을 때 보험사가 치러야 할 대가다. CSM 과열 경쟁은 결국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이익을 가져다 쓰는 셈인데 단기납 종신보험 대량 해지 사태로 보험사의 재정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지난해 7월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 과열을 우려하며 "납입기간 종료 시까지 해지를 유보한 후 납입종료 직후 해지가 급증할 경우 보험사의 건전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생보사들은 높은 해지환급금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고 고객들에게 가입을 유도했고 환급률이 130%를 넘는 등 과열 양상을 띠면서 결국 당국은 단기납 종신보험을 수술대에 올렸다. 그중 하나가 해지환급금 중 기납입보험료를 초과하는 금액을 당기손익에 즉시 반영하도록 하게 하는 방안이다.

CSM을 높이는 구조를 역으로 활용해 단기납 종신보험의 해지환급금 경쟁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셈인데 이렇게 되면 생보사 입장에서는 팔수록 손해로 인식되는 단기납 종신보험을 굳이 팔 필요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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