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한국유행가연구원장
유차영 한국유행가연구원장

동백꽃이 만발한 3월, 유튜뷰 500만 뷰가 넘는 동영상 여러 개를 보유하고 있는 동백꽃 소녀, 정서주의 감성 바람이 후끈거린다. 이 소녀를 리틀이미자라고 부르지만, 너무 의례적인 표현이다. 그녀의 특출함에 비하면 아쉬움이 부풀려지는 호명이다.

천재는 만들어지거나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서주는 21세기 하늘로부터 내려받은, 천강가객(天降歌客)이라고 할 수 있다. 천재(天才)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는 도달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고유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문학 과학 예능 등 감성적인 분야에서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오롯하다. 첨단과학과 기술의 발달을 전제로 하고, 시간과 공간의 융복합과 축약을 고려한 인공지능 시대를 예단하더라도, 이러한 천부적 재능을 조탁해내기는 쉽지 않으리라.

이런 사람인 정서주가 미스트롯3에서 1964년 이미자의 목청을 타고 넘어온 <동백 아가씨>를 절창했다.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와 연결된 열창이었다. <동백 아가씨>는 한국대중가요 사상 최초로 음반 100만 장 판매의 탑, 첫 벽돌을 쌓은 노래다. 빨간 열매 정을 맺은 동백 아가씨의 멍든 가슴팍을 댕강거리게 한 노래~.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원곡 노래는 낭랑한 중간대사로 선율과 노랫말을 감칠맛 나게 이어주기도 했는데, 정서주는 이를 생략했다. ‘물새 날고 파도치는 아주까리 섬/ 빨간 열매 정을 맺는 아가씨 귀밑머리/ 뱃사공아 노를 저어 떠나면 언제 오나/ 심술 치마에 담은 이 동백꽃 누구를 주랴.’

심술 치마는 어떤 치마일까, 작사가 한종명의 고향 청진과 성장지 부산을 두루 살펴도 이에 대한 묘답이 없다. 아마도 동백꽃 떨기가 떨어져서 낭자하게 쌓이는 남녘 바닷가 촌락에서 귓속말로 소곤거리던, 토속적인 말(방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연모의 정을 가슴에 담고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낭자가 입은 다홍치마~. 그 치마폭의 팔락거림에 2절 노랫말을 매달아 본다. 새벽이슬 머금은 동백 꽃잎에서 이슬방울이 구슬처럼 굴러떨어질 듯한 노랫말들~.

동백꽃 잎에 새겨진 사연 / 말 못 한 그 사연을 가슴에 묻고 /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 아가씨 / 가신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정서주는 이미자 주현미 심수봉 나훈아의 노래를 리메이크로 부르지 않고, 커버 송으로만 부른다. 리메이크곡은 원곡 노래에 약간의 개사(改辭)나 편곡(編曲)을 가미하여, 다시 부르는 가수의 멋과 맛을 곁들이는데, 커버 송은 원곡을 그대로 부르면서, 자기만의 감성을 더하는 방식의 창법이다.

이런 창법은 원곡 가수의 메시지에 커버 가수의 감성이 순수하게 더해지는, 멋과 맛의 향연을 펼친다. 이는 리메이크 가수의 고상함이 매력과 마력을 넘어 묘력(妙力)을 지어낸다. 이러한 묘력을 풍기는 정서주의 음색과 가창력이, 이미자와는 분별(分別) 되는 타고난 천재성이라는 것이다.

이미자는 슬픈, 한(恨)의 분말을 가마솥에 붓고 맹물을 타서, 끓이고 휘저으면서 한 통의 감성 묵을 쑤어내는 가수다. 이미자의 목청으로 쑤어내는 묵은 단단하게 응어리지지 않는다. 그래서 묵 판에 부어 응고시켜서 일정한 모양으로 모를 떠낼 수가 없다. 한 덩어리 뭉클거리는 슬픔의 대롱거림.

그래서 이미자를 에레지(비가, 悲歌)의 여왕이라고 하는 것이다. <동백아가씨>, <기러기 아빠>, <그리움은 가슴마다>를 음유해 보시라. 그 자체가 슬픔의 도가니(늪), 웅덩이이다. 이것이 우리 대중가요 100년의 살아 있는 전설, 이미자 선생의 매력과 마력이다.

정서주는 이미자의 매력과 마력을 더한 묘력(妙力)을 절창한다. 기이한 소리 묘한 감성으로 감정선의 둑을 넘실거리게 하는 물결을 지어낸다. 노래를 특이하게 잘하는 끼에 자기만의 감정 덩어리를, 일정하지 않은 노랫말과 가락마다의 굽이에 알맞은 파랑을 지어 잘랑거린다.

정서주의 노래는 수중지월(水中之月)이다. 하늘의 둥근 달이 강물 속에서 일렁거리는 모양이다. 모양은 존재하되 일정하지 않으며, 눈에는 보이지만 건져올 릴 수가 없다.

이태백이 장강의 돛배 위에 앉아서, 강물 속을 내려다보다가 풍덩 뛰어들어 건지려고 했던, 그 달덩어리의 일렁거림이다. 모양은 존재하되 붙잡을 수가 없고, 소리가 들리기는 하는데 걸리지 않고, 감성 그물망을 오가는 바람 소리와 같다.

서양 노래의 묘미가 애청자를 객체화하는 선율에 있다면, 우리 것은 노랫말에 감흥이 매달려 있다. 노래를 부르거나 듣는 화자가 노랫말의 주인공, 주체가 되는 까닭이다. 그러니 서양 노래는 오선지 위에 선율이 올라앉은 격이고, 우리 유행가는 선율 위에 민초들의 삶을 펼쳐놓은 것과 같다. 이런 우리 노래의 기이한 돛단배 사공이 정서주다.

정서주가 리메이크로 부른 <동백 아가씨>는 프랑스 소설이 노래로 화(化)한 것, 노래가 다시 영화로 탄생하는 대중문화예술품 천이(遷移)의 대표곡이다. 1850년을 전후하여 파리 5대 극장가 특별석에 밤마다 나타나 한 달 중 25일은 흰 동백꽃, 5일은 붉은 동백꽃을 가슴에 매달아 자신의 생체리듬을 표시해 온 화류계의 퀀이 있었다.

그녀는 고급 창녀, 마리 듀프레시스였다. 그녀는 프랑스 시골에서 가난한 홀아비의 딸로 성장하다가 열 살쯤, 배고픔을 견뎌내기 위하여 한 접시의 수프와 처녀성을 바꾸기도 했다. 그리고 열두 살 때, 맨발에 누더기를 걸치고 파리로 왔다.

이 창녀를 사랑한 사람이 소설 <삼총사>와 <몬테 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알렉산드르 뒤마 페르의 사생아, 알렉산드르 뒤마 피스(1824~1895)였다. 안타깝게도 그가 아버지와 함께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이유 여행을 하고 돌아와 보니, 마리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1847년 마리는 23세였다. 폐결핵이 원인이었다.

당시 동갑내기였던 뒤마 피스는, 이 비련을 울면서 글로 쓰기 시작하여 3주일 만에 완성했다. 그 글이 바로 소설 『춘희』(椿姬)다. 이 소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854년 이 소설을 주세페 베르디(1813~1901)가 오페라로 상연한다. La traviata, 『타락한 여인』이다.

상연 극 중에 여주인공이 들고나오는 흰 꽃과 붉은 꽃이 바로 동백이다. 동백(冬柏) 꽃말은, ‘그대를 사랑한다, 맹세를 지킨다’이다. 그래서 결혼식에서 약속의 상징으로 쓰기도 한다. 『라 트라비아타』를 『춘희』(椿姬)로 번역하는데, 춘(椿)은 동백이란 뜻이니, 춘희란 곧 동백아가씨인 셈이다.

이미자는 우리 유행가 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1990년대 앨범 600 여장, 노래 2,100여 곡을 발표한 가수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그녀는 통속적인 노랫말로 대중들과 소통했고, 2009년 그녀의 노래 인생 50년을 그림 에세이 『동백아가씨』로 발간했었다.

이미자의 폐활량은 일반인의 2.5배, 그녀는 말하듯이 노래를 하는 성대구조를 가졌단다. 정서주는 폐활량보다는 소리 자체에 묘한 감성을 버무린 성대구조를 가진 듯하다.

이 노래는 1964년 영화 <동백 아가씨> 주제곡이다. 김기 감독이 연출하고 신성일, 엄앵란이 열연한 영화이다. 이 노래는 원래 최숙자가 LP 음반으로 취입할 예정이었으나, 계약금액 문제로 성사되지 못하고, 딸 정재은을 임신하고 있던 이미자가 불러 대박을 터뜨린다.

<동백 아가씨>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녹음된 노래가 현미의 <떠날 때는 말없이>이다. 두 가수는 당시 임신을 한 상태였다. 녹음 장소는 충무로 스카라극장 옆 2층 건물이다. 이 두 곡이 다 히트하자, ‘임신한 가수가 음반을 내면 대박을 친다’는 속설이 생겨나기도 했었다.

당시 23세 이미자는 1941년 한남동에서 출생하여, 할머니 슬하에서 성장하여 문성여상고를 졸업하였다. 1958년 텔레비전 노래자랑에서 1등을 한 뒤, 이듬해 나화랑(1921~1983. 본명 조광환)의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다. <동백 아가씨>는 베트남 전쟁 파병, 비둘기부대의 사단가가 되었을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2024년 2월 기준으로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록 곡은 122만5천여 곡이다. 이 중에서 동백(冬柏·冬栢)을 노래 제목에 얽은 곡은 216곡이고, 동백섬을 얽은 곡조는 16곡, 동백꽃을 얽은 절창은 129곡이다. 동백꽃에서 피어나는 감성과 감정의 빛깔이 또렷하다는 증거다. 이 동백꽃은 향기가 없다. 그래서 폐 질환 환우에게 문병(問病) 갈 때 들고 가기도 한다.

정서주는 2008년 부산 출생, 동아중학교 재학생이다. 정서주를 리틀이미자라고 부르지 마시라. 이미자 선생은 엘레지의 여왕이고, 서주는 감성저수지(감지, 感池) 봇물 속에 일렁거리는 달덩어리이다. 수중지월(水中之月)이다. 정서주의 팬카페는 《동분서주》이다.

 

한국유행가연구원장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유행가스토리텔러

문화예술교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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