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작가·번역가
장경덕 작가·번역가

2007년 2월 어느 날 하워드 슐츠는 식탁에 앉아 편지를 썼다. 자신을 대신해 CEO로서 스타벅스를 이끄는 짐 도널드와 경영진에게 보낼 것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1000개도 안 되던 매장을 1만3000개 넘게 늘리는 성장을 이루기 위해 내려야 했던 결정들은 돌이켜보면 스타벅스의 경험을 희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진한 풍미의 에스프레소를 멀건 아메리카노로 바꾸는 것과 같은 물타기가 계속돼왔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창업자의 눈으로 포착한 물타기와 범용화의 문제를 꼼꼼히 지적했다. “우리는 자동 에스프레소 기계를 도입해 서비스 속도와 효율성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극적 효과와 낭만을 제거해버렸죠.” 고객들은 커피 바 너머의 키 큰 에스프레소 기계 때문에 바리스타가 커피를 뽑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기계는 바리스타와 고객이 친밀하게 대화하는 것도 방해했다.

매장에서 원두를 갈 때 나던 향은 약해지거나 거의 사라져 버렸다. 미리 갈아서 봉지에 담아 가져온 커피를 쌓아두고 파는 방식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면 도시의 일상에 지친 고객들을 저 멀리 코스타리카나 아프리카의 자연으로 데려다준다는 스타벅스의 자랑스러운 서사는 어떻게 되는가. 직원들에게 담배 피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향수도 뿌리지 말라고 하던 슐츠였다. 진한 커피 향의 감동을 잃어버리면 고객들에게 무엇으로 호소할 것인가.

슐츠가 생각하는 ‘스타벅스의 경험’은 특별한 것이었다. 그는 1983년 밀라노에서 에스프레소 바의 진한 풍미와 따뜻한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됐다. 한 해 전 점포 네 개의 커피 회사 스타벅스(1971년 시애틀에서 창립했다)에 마케팅 책임자로 입사한 그는 밀라노 출장 중 호텔에서 박람회장으로 가는 길에 작은 에스프레소 바에 들렀다. 커피콩을 갈고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우유를 데우고 카푸치노를 만드는 바리스타의 정교하고 우아한 동작은 섬세한 춤 동작 같았다.

손님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던 바리스타는 슐츠가 에스프레소를 주문하자 그만을 위해 향이 풍부하고 진한 커피를 내려 조그맣고 흰 잔에 담아 건넸다. 그는 감동했다. 슐츠는 그곳에서 커피의 진정한 마법을 발견했다. 귀국 후 경영진에 밀라노의 에스프레소 바 같은 스타벅스를 만들자고 설득했다. 설득이 통하지 않자 1985년 독립해서 일 지오날레라는 커피 회사를 차렸다. 1987년에는 아예 스타벅스를 인수했다. 그리고 20년 동안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규모가 커질수록 창업 초기의 특별한 경험은 희석됐다. 2007년 그가 느낀 위기는 “얼굴 주름만 펴는 성형수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심장을 이식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치즈 탄 냄새가 커피 향을 덮어버리는 문제를 비롯해 창업자 특유의 직관으로 포착한 ‘희석’은 전문 경영자들에게 그다지 절실하게 와닿지 않았다. 2007년 봄 슐츠가 경영진에게 그 문제를 지적하며 메일을 보낸 후에도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창업자와 CEO의 갈등은 깊어졌다.

2008년 1월 결국 슐츠는 CEO에 복귀한다. 그의 자서전 ‘온워드(Onward)’의 한 장면을 보자. 슐츠는 CEO인 짐을 집으로 불렀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이사회는 내가 CEO로 복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며 “그래야만 스타벅스에 필요한 변화와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정의 골이 깊었던 두 사람의 대화는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빨리 끝나버렸다. 짐은 “실망과 놀라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슐츠를 쳐다보고는 몇 가지 법률 서류를 받아 집에서 나갔다. 회사를 위해 필요한 일이더라도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물론 떠나는 사람은 더 괴로울 것이었다.

2008년 1월 7일은 월요일이었다. 이사회실에 고위 관리자들을 불러모은 슐츠는 단호하게 말했다. 회사의 핵심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이 방 안에 있다면 누구든 용납하지 않겠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쁜 감정 가질 것 없이 회사를 떠나면 된다. (창업자가 전문 경영자를 자르고 CEO로 복귀하는 것인데도 쿠데타라도 하듯이 비밀리에 작전을 벌였다. 슐츠는 복귀 작전을 위해 뉴욕의 전략 컨설팅 회사를 찾아가 도움을 받았다. 복귀의 명분을 강화하는 서사와 미화도 필요했을 것이다.)

다시 CEO가 된 직후 슐츠는 여러 충격요법을 내놓았다. 그는 “카드를 뒤집기 전의 도박사”와 같은 심정으로 2월 26일 하루 동안 미국 전역의 7100개 스타벅스 매장을 한꺼번에 닫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무엇을 노렸던 것일까?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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