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약 건수도 매년 감소세…해지 환급금은 38조로 '역대 최대'
"보험료로 차라리 재테크"…"생활비·목돈 마련 위해 보험해지"

지난해 국내 생명보험 신규 계약액이 사상 처음으로 20조원 아래로 떨어지면서 생보사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비우호적 환경들이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사진/pixabay
지난해 국내 생명보험 신규 계약액이 사상 처음으로 20조원 아래로 떨어지면서 생보사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비우호적 환경들이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사진/pixabay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생명보험 수요와 니즈의 변화로 위기에 빠진 생명보험업계에 다시 한번 우울한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국내 생명보험 신규 계약액이 사상 처음으로 20조원 아래로 떨어지면서 생보사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비우호적 환경들이 수치로 나타나며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여기에 고금리·고물가와 경기 침체에 따른 생활비 부담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기존에 가입돼 있던 보험까지 깨 그 해지환급금으로 대출 이자나 노후 자금에 쓰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가입은 적어지고 이탈은 많아지는 '보험 엑소더스' 현상이 다 빨라지고 있다.

1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국내 생명보험 신계약 월평균 금액은 19조6473억원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 기준이 바뀐 2020년 이후 월평균 신계약 금액 20조원선이 무너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0년 24조8154억원이던 월평균 신계약 금액은 2021년(23조원), 2022년(20조9000억원)을 거쳐 점점 내려오다가 불과 3년 만에 80% 수준까지 급감했다.

신계약은 보험계약자의 가입 금액 전체를 합친 수치로 보험사의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미래 성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신계약이 줄어들면 생보사의 수익이 떨어지고 종국에는 자산 운용 기능까지 쪼그라들어 자본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액수만이 아니라 건수로도 신계약 지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2020년 약 125만건이었던 신계약 건수는 2021년(118만), 2022년(109만), 2023년(105만)까지 우하향을 그리는 중이고 3년 만에 약 16% 감소한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신계약 건수가 월 100만건 밑으로 떨어지는 일도 시간문제인 셈이다.

문제는 가입은 적어지는데 기존 고객이었던 가입자들의 이탈은 해가 지날수록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0월 국내 생보사들이 지급한 해약 환급금과 효력상실 환급금은 38조4357억원으로 집계됐다. 1~10월 기준 역대 최대 기록으로 2020년 같은 기간(34조6428억원) 대비 11% 증가했다.

해약 환급금은 고객이 스스로 보험을 해약할 때 지급되는 돈이고 효력상실 환급금은 고객이 보험료를 내지 않아 자동으로 해약될 때 지급되는 돈이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보험 계약을 깬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점에서 생보사들로서는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생보사들의 위기는 전통적인 효자 상품이었던 종신보험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종신보험 회의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매월 납부하는 보험금으로 차라리 다른 재테크를 하겠다는 풍조가 널리 퍼진 영향도 크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20~30대 청년들에게 종신보험은 언제 받을지 알 수 없는 보험금을 위해 매달 보험사에 돈을 내야 하는 불합리한 금융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매월 부담하는 보험금으로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투자하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데 내가 왜 보험을 들어야 하냐는 생각들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다른 생보사 관계자는 "가정이라는 단위의 구성과 그 구성원들의 역할 변화도 종신보험 수요를 떨어뜨리고 있다"며 "예전에는 가장이 집안을 책임지는 경우가 많았고 불의의 사고로 가장이 죽을 경우 남은 가족들은 그야말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게 돼 보험이 꼭 필요했으나 요즘은 맞벌이도 많고 딩크족 등 무자녀 가구도 많아 가장의 부재로 남은 가족들이 당장 생활고에 빠지는 일은 없어졌다"고 말했다.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금융비용 자금과 당장 필요한 생활비를 위해 보험을 깨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보험연구원 박희우 연구위원은 "최근 해지환급금 급증의 원인은 주로 60대 이상의 소비자가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보험계약을 해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납입부담 유형의 보험계약을 해지하는 소비자 중 약 8%는 연체 등 가계경제의 어려움을 겪으며 보험계약을 해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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