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작가·번역가
장경덕 작가·번역가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가 맥도날드와 비교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는 언젠가 사람들이 두 회사를 비교하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2008년 1월 10일 이코노미스트). 그럴 때면 “까무러칠 만큼(apoplectic)” 화를 냈다고 한다(2017년 6월 8일 포천). 그런 슐츠가 2007년 컨슈머 리포트의 시음에서 스타벅스 커피가 맥도날드 커피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을 때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스타벅스만의 로스팅 철학과 특별한 풍미를 고집하던 그가 패스트 푸드 체인의 “범용화” 전략과 타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폭발적 성장에는 독특한 경험과 브랜드의 “물타기”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1987년 일 지오날레가 스타벅스를 인수할 때 매장 수는 모두 17개였다. 1999년에는 2500개에 이르렀다. 2007년 국내외 매장은 1만5000개에 달했다. 스타벅스는 줄곧 가속 패들만 밟아왔다. 이제 일단 멈추고 다시 기본을 생각해야 할 때였다.

“스타벅스의 영혼은 무엇인가?” 슐츠는 “우리가 팔고 있는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팔리는 속도를 즐기는 악순환의 덫에 빠져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스웨터에서 실이 한 올씩 풀려나가듯” 서서히 다가오는 위기를 감지했다. 2008년 초 CEO로 복귀한 슐츠는 미국 내 매장 개점 속도를 늦추고, 실패한 매장의 문을 닫고, 해외 성장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13만5000명에 달하는 바리스타에 대한 전면적인 재교육을 하기로 했다.

바리스타들은 스타벅스의 분위기와 경험을 연출하며 고객에 감동을 팔아야 하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밀라노에서 슐츠를 매료시켰던 바리스타의 친근함은 느낄 수 없었다. 2008년 2월 26일 오후 5시 30분. 미국 내 7100개 스타벅스 매장은 일제히 고객들에게 밖으로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문을 닫아건 직원들은 한 잔의 에스프레소를 완벽하게 뽑고 우유를 알맞게 데우는 일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처럼 너무 빠르게 쏟아지면 에스프레소는 향이 약하고 농도가 묽다. 너무 느리게 떨어지면 너무 곱게 갈았다는 뜻으로 맛이 쓸 것이다. 완벽한 에스프레소는 숟가락에서 떨어지는 꿀처럼 보인다.’ 에스프레소에 첨가하는 우유는 일정하게 달콤한 크림처럼 데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바리스타들은 효율성을 핑계로 고객 주문도 받기 전에 큰 피처로 우유를 데워놓았다가 필요할 때 다시 데워 썼다. 하지만 한 번 데운 우유는 달콤한 맛을 잃어버린다.

스타벅스가 클수록 경쟁은 격렬해졌다. 스타벅스가 성능 좋은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효율성을 높였다면 맥도날드나 던킨이 똑같이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 진출한 맥도날드는 미국 내 1만4000개 매장에 에스프레소 바를 만들고 맥카페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원두를 갈아서 적당한 밀도로 눌러 짜고 최적 온도로 물을 붓고 알맞게 데운 우유를 타는 과정을 모두 자동화해 ‘바리스타가 필요 없는’ 에스프레소를 만들었다. 슐츠에게 “패스트 푸드 업체와의 경쟁 때문에 스타벅스 가치가 추락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스타벅스의 본질은 프리미엄 커피였다. 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커피 자체로 증명해야 했다.

슐츠는 한잔의 커피가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공동체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린 시절 그는 뉴욕의 초라한 아파트에 살면서 숨 막히는 집안 공기를 피해 계단에 홀로 앉아 있곤 했다. 에스프레소 바를 처음 열 때 그가 원했던 것은 “사람들이 그날의 혼란에서 벗어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었다. 집도, 직장도 아닌 “제3의 장소”는 단순히 네 벽 사이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사고방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온갖 사람들이 찾아와 서로를 고양해주는 공간이었다. 그런 스토리와 경험으로 차별화하지 않으면 커피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을 터였다.

경쟁은 혁신과 향상을 불러왔다. 2009년 11월 12일 언스트앤영 포럼에서 슐츠는 “맥도날드는 우리를 더 낫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그는 잠시 멈추고 기본으로 돌아감으로써 초고속 성장 기업이 흔히 겪는 ‘빅뱅 후의 빅 크런치’를 피할 수 있었다. 맥도날드 역시 매장이 3만 개를 넘어선 2001년 과잉 확장의 위기를 겪은 터였다.

오늘날 지구촌에서 스타벅스 간판을 내건 매장은 3만8000여 개에 이른다. 4만1000개 가까운 맥도날드와 조금 못 미친다. 2024년 3월 12일 현재 스타벅스의 주식시가총액은 1046억 달러로 맥도날드(2125억 달러)의 절반이다. 두 회사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5배 안팎으로 비슷하다.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는 서로를 싫어하면서도 서로에게 배워야 했다. 커피 전쟁이 격화할수록 당사자들은 쓴맛을 보겠지만 소비자들은 그만큼 입이 즐거워진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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