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김영환

[중소기업신문] 18대 대선은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치러졌으면서도 근본적인 정책 토론이 실종된 수준 미달의 대선이었습니다.

당선자에 반대한 48%의 유권자들, 그리고 무관심으로 기권한 4분의 1에 이르는 국민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를 박근혜 당선자가 헤아리는 자세가 절실합니다. 특히 박 당선자는 교만에 빠지지 말고 왜 두 동강이 난 수도 서울에서 부촌인 강남 4구와 용산구를 빼고 전패했는지 겸허히 반성해야할 것입니다. “혹시 나는 최악이 아니라 차악으로 당선된 게 아닌가”라고 되씹으란 말이죠. 야당 또한 여론조사와 본선경쟁력을 무시한 조직의 주술에 걸려 민심을 경시하고 내세운 후보의 시대착오적인 프레임이 어떤 참담한 결과를 빚었는지 교훈으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연속 패배에서 배운 게 없기 때문이죠.

필자는 개헌이 불필요하다고 보는 사람이지만 대통령제의 폐해를 고치자는 개헌론자들은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을 거듭해왔습니다. 이 어휘가 등장한 까닭은 무엇보다 대통령들의 교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권위는 필요하지만 청와대가 천하를 잡은 양 멋대로 모든 것을 해치우는 권부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선거전에서는 여야 후보 모두 100조 원도 더 들어갈 별별 공약을 다 말했지만 정상회담 같은 외교 사안을 젖히면 대통령이 독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극히 드뭅니다. 바람의 아들처럼 대선 결과도 안 보고 홀연히 출국한 안철수 후보의 말대로 국회가 움직여야 법이 만들어지고 대통령의 정책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은 그것을 지난 국회에서 목격하며 아연했습니다.

박 당선자 자신은 약속을 지키려 한다면서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야당보다 앞장서서 주도함으로써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죠. 그렇게 국회는 대통령의 정치 철학도 뒤엎는 힘을 과시한 자리입니다. 이제 60여일 후에 대통령이 되지만 유신체제가 아닌 지금 직접 법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어린이날 어린이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한 어린이의 소원을 들은 사회자가 “대통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고 묻자 잘 모르겠다고 하더니 한참 뒤에 “대통령이 돼서 하고 싶은 것을 지금 하면 된다”고 말했죠. 5선 국회의원인 당선자가 되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지금 승리한 세력들은 환희에 빠져 나는 어느 자리를 차지할까, 속계산을 할지도 모릅니다. 나의 당선에 기여한 사람, 내가 아는 사람, 내 고장 사람이라는 좁디좁은 인재 풀에서 논공행상으로 고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실패가 반복됩니다.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진짜 능력자들은 관직 같은 데 관심이 없죠. 정치나 행정 아니고도 자신의 인생을 재미있고 보람 있게 사는 방법을 알고 그에 더 많은 비중을 두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람이라는 말이죠. 자신을 추천하는 사람은 의욕이 넘칠지 모르나 자질이 부족하기 쉽습니다. 대통령은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베스트 중의 베스트를 골라 천재지변이 없는 한 임기 끝까지 함께 끌고 가는 장관을 엄선하기 바랍니다. A도 시켜보고 B도 시키는 주기적인 선심성 교체로 장관 경력자를 가치 없이 양산하지 말란 말이죠. 그렇게 가볍게 인사를 하니 국민들은 뉘 집 개가 뭐가 되었느냐 식으로 뜨악한 반응이죠.

당선자도 돈이 많이 들어갈 공약도 양산했죠. ‘동남권 신공항건설 적극 검토’ 같은 것입니다. 이 공약을 전체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강변하면서 세금을 자신의 돈처럼 퍼붓지 말라는 말입니다. 지금 인천국제공항과 지근거리의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송도나 영종청라 신도시조차 모래 먼지가 펄펄 날리는 허허벌판입니다. 표를 듬뿍 준 출신 지역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미래를 위한 박근혜 정권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하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나라 발전에서 가장 큰 갈등은 한반도 평화와 대북 원조가 관련된 문제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의 북한이 저지른 천안함, 연평도, 금강산 도발을 덮어두고 북한에 원조를 재개해줄 것인가 아니면 사과의 절차를 거쳐서 할 것인가가 초점이죠. 이런 논쟁이 대통령 한 사람의 의견으로 결정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온 가치, 대한민국을 지탱해온 힘이 무엇인지를 훼손하지 말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간 최대 100억 달러의 대북 원조 금품은 북한의 작은 도발을 막았을지 모르지만 북한은 여유를 갖고 핵무기와 각종 미사일 개발로 최근의 광명성 3호를 지구 궤도에 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비판받고 있죠. 물론 흉작과 한발, 수재의 경우엔 일정 규모의 인도적 지원은 필요한 것이지만 불행한 햇볕정책으로의 유턴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향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을 펼치는 정부를 만들기 바랍니다. 기업가 출신의 MB는 체질상 구체적 수치가 늘 목표가 되었고 너무나 야심 찬 ‘747’ 공약은 꼼짝없이 미달로 판명되었습니다. 반면 노회한 정치인들의 솜씨 같은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라는 것은 말은 멋지지만 실적을 수치로 계량화하기가 매우 어려워 빠져나갈 틈이 있죠. 정치적인 구호는 되지만 목표 달성여부가 불명확해 행정지표로 되긴 어렵죠.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는 사람이 도처에 널린 나라, 빌딩 밖 앞마당마다 남녀가 어울려 인도를 향해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뿜어대는 나라의 행복도를 어떻게 높여갈까요? 행복지수를 중시해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부탄왕국은 국민총행복(GNH)이 세계 최상위권인데 세계 유일의 금연왕국입니다. 행복한 나라 만들기가 어렵다는 증거죠. 부자 증세와 재벌 개혁도 마찬가지죠. 먼저 부자에 대해서는 증세에 앞서 어떤 포트폴리오로 어떤 규모의 재산을 가져야 해당되는지 그 정의
부터 합의해야 합니다. 재벌 개혁문제 또한 예컨대 자랑스러운 휴대폰 세계 1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심사숙고하란 말이죠.

광복 이후 찢어지게 가난했던 국민들은 의식주 중에서 의와 식만을 해결했을 뿐이죠. 아직도 서민들은 전세 폭등과 월세, 반(半)전세 폭란에 시달립니다. 서민들이 내는 월세에 공정과세를 하려면 뭘 임대하건 월세 수입자들의 수입이 드러나도록 국세청 표준 계약서를 의무화해 주택임차인을 보호하고 세원을 자동 확보해야 합니다. 사방에 세입의 구멍이 뚫려 있죠. 정치를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말고 하나라도 과학적으로 하자, 재벌개혁 같은 거창한 경제민주화 구호보다 뒷골목의 서민 주거 보호부터 잡는 것이 행복한 나라의 출발입니다.

19일 투표장을 나오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새 대통령은 국민을 하늘처럼 생각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만 가지면 된다”고 갈파했습니다. 대통령은 곤룡포를 입는 임금도 아니고 청와대를 상징하는 봉황도 아닙니다. 주권자인 국민들이 혀가 빠지도록 부려먹어야 할 5년 시한의 상머슴입니다. 새정치는 그런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개혁 대상 1순위인 국회의원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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