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김영환

[중소기업신문] 대학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으로 약을 사려고 동네 약국에 내면 없다고 하기가 일쑤입니다. 병원 근처 약국에서 사지 않은 것을 바보로 여기는 듯한 눈치를 줍니다. 친한 약사들은 처방전을 놓고 가면 구해줄 테니 기다리라고도 합니다.

동네 의원들의 처방전도 몇 킬로미터를 벗어나면 구하기 어려운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첨가되는 소화제만 해도 위에 익숙해진 'XX약'으로 처방해 달라고 하면 자신의 처방이 더 좋은 약이라면서 안 해주기도 합니다.

나는 좀 까다로운 편이기 때문에,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의원급에서는 내가 선호하는 약품으로 처방해달라고 흔히 주문하는 편입니다. 물론 착한 의사들은 선뜻 그 약으로 처방해줍니다. 더 나아가 이제는 그 약이 출시가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약으로 처방할 수밖에 없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해주죠. 한참이 지난 뒤 그 약을 기억해 놓았는지 내가 찾던 그 약이 이제 또 나오기 때문에 다시 그 약을 처방한다는 설명도 붙여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약 안 씁니다”라며 평소 다른 의원에서 처방받아 잘 쓰던 약을 단칼에 자르는 의사도 있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많은 병·의원에서 환자는 갑이 아니라 을이라고 생각하면서 의사들이 굳이 환자의 여망을 무시하고 어떤 특정 약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라고 생각해봅니다.

요즘 아내는 “의사가 가장 싫어하는 환자가 인터넷을 들먹이는 환자라는데 제발 아는 척 좀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화시대죠. 의사가 그런 환자들을 싫어하건 말건 온라인에는 의약품 정보가 정말 자세하게도 떠 있어 환자들도 정보화로 무장되어 있죠. 알약의 모양과 빛깔, 표면의 약자를 보고도 환자들이 무슨 약이고 무슨 용도이며 금기와 부작용은 무엇인지도 찾아갈 수가 있는 정도입니다. 국민들의 건강에 관한 알 권리가 점점 더 많이 충족되어가는 것이죠.

몇 년 전 어느날 저녁에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느껴져서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갔습니다. X선과  CT 촬영, 혈액검사 등 많은 절차를 거쳐서 내린 결론은 상복하는 약의 부작용 가능성이었습니다. 결국 그 약을 다른 약으로 바꾸고 나서 그런 부작용은 사라졌습니다. 의사가 어떤 특정 약품의 약리작용이야 임상 경험으로 어느 정도 짐작하여 알겠지만 그 병을 앓아 본 일이 없으니 환자만큼 그 약의 작용에 민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최근 검찰은 5년 동안 이뤄진  1조1,000억원 규모의 제약회사 리베이트 사건을 적발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의약품의 리베이트가 매출액의 20퍼센트나 되는 것으로 보고 있고 그 규모는 연간 2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의약품 리베이트를 의료사기로 보고 수십억 달러를 해마다 적발한다고 합니다.

이런 관행을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소비자시민모임(회장:김재옥)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공동대표:안기종, 백진영, 양현정)는 작년 12월 28일 ‘의약품리베이트감시운동본부’를 발족했습니다. 이들은 "의약품 리베이트는 가격 경쟁력이 있는 의약품을 구매, 처방하기보다는 리베이트가 많은 것으로 유도해 필연적으로 고가 약, 과잉처방으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제약회사와 의료기관이 부당한 이득을 취득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하면서 제약회사들을 상대로 리베이트 환급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일종의 의약품 '채택료' 관행은 현찰 등이 오가는 지하경제의 비극입니다. 자정에 나선 의사 단체들은 “약의 선택은 의사의 권리이지만 그 대가는 의사의 권리가 아니다”라고 했답니다. 과잉 처방, 과잉 복용은 약물 중독으로 건강을 오히려 해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실례로 감기에 무려 10가지 약을 처방한 기막힌 병원의 사례가 있다고 EBS는 2008년 6월 다큐멘터리 '감기'에서 보도했습니다.

나는 처방전을 받아 복용할 약은 환자가 고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들은 자기가 아는 지식을 토대로 동일한 성분 중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상품명을 고를 권리가 있습니다. 자기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연장선에서 말입니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은 환자 자신이지 어느 누구도 대신 져주지 않습니다. 목숨에 대한 권리인 것이죠.

의사의 급여가 적다거나 의약품이 비싸 리베이트의 유혹에 넘어간다고 얼버무릴 게 아니죠.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20퍼센트 대로 최소한 200조원이 넘는다는 거대한 지하경제 규모로 볼 때 의약품 리베이트는 아주 작은 부분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체는 이런 작은 부분들의 집합입니다.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을 좀먹는 의약 리베이트는 망가지는 국민건강을 생각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적정한 치료에 적정한 대가를 지불하는 의료경제의 민주화를 위해서라도 이제 각계의 의견을 취합하여 합리적인 제도로 개선을 할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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