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임종건

[중소기업신문]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이 사회적배려대상자(사배자) 자격으로 국제중학교에 입학한 사건을 보면서 3년 전 자유칼럼의 '교육의 과잉'이라는 글을 통해 자율고의 입학부정 문제를 다뤘던 상황에서 한 치의 개선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시와 달라진 게 하나 있습니다. 그때는 정원 미달된 경제적 사배자를 학교장 추천을 받은 부유층 자녀들로 채운 게 말썽이 됐는데 이번엔 '비경제적 사배자' 제도를 이용해 합벅적으로 부유층 자녀들을 입학시킨 것입니다.

국제중, 자사고 등의 사회적배려대상 제도는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바로 그 위의 차상위 빈곤계층을 돕자는 취지로 도입됐습니다. 2012년 기준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월 소득액은 4인 가족 기준 149만5,000원 이하, 차상위자 소득액은 179만4,000원 이하입니다.
 
이런 가정에서 비록 면제를 받는다지만 연간 수업료가 1,000만원 수준이고, 수업료만큼의 별도 학습비를 부담해야 하는 국제중에 자녀를 보낸다는 것이 애당초 아귀가 안 맞는 얘기입니다. 일례로 스쿨버스 통학료만도 월 80만원 수준이고, 해외 수학여행비로 350만원을 내야 한답니다.

이런 학교에 1인당 소득액이 30만~40만여원 수준인 가정의 아이들을 정원의 20%까지 입학시키도록 한 교육당국의 배려는 ‘천사의 마음’일까요? 이 제도의 변칙과 파행 운영과정을 보면 그것은 오히려 책임회피적인 위선이라 함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학부모의 입장에선 학비 부담감으로 자녀들을 보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학생 스스로도 ‘빈곤의 딱지’를 달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 꺼려졌을 것입니다. 그것이 입학 때마다 경제적 사배자 전형에서 대량 미달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었다고 하겠습니다.

20%의 경제적 사배자는 당초부터 수업료 면제 조건이므로 학교 수지에 크게 영향을 끼칠 것도 아니지만 학교 측은 정원을 채우지 못해 학교 경영이 안 된다고 아우성을 쳤을 것입니다. 학교 측의 아우성은 돈을 싸들고 와서 자녀를 입학시키겠다는 부잣집 학부모들의 아우성과 비례해서 커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재용 부회장이 의탁한 비경제적 사배자제도입니다. 부모의 이혼이나 사망으로 인한 결손 가정, 부모 없이 조부모가 양육하는 조손 가정, 장애인 가정, 특수직 종사원 가정, 다문화 가정 등의 자녀에게도 같은 혜택을 주자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 분야 전형의 경쟁률이 단박에 5대1 이상으로 뛰었습니다. 어느 학교에서는 1억원의 기부금을 내고 입학했다 해서 ‘일억이’로 불리는 학생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봅시다. 결손 가정, 조손 가정, 다문화 가정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기본적으로 빈곤의 개연성이 높을 것으로 상정한 개념이 아니겠습니까? 굳이 국제중에 넣지 않더라도 학교나 가정에서 자녀에게 최상의 교육을 시킬 여건을 갖추고 있는 부유층이 ‘정서적 약자’를 들먹이며 비경제적 사배자에 끼어드는 것은 어색하지 않나요?

결국 교육당국이 국제중을 허가하면서 귀족학교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사회적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박애주의적 교육정책으로 포장한 것이 사배자 제도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부유층 자녀들의 편법입학의 길을 터주기 위해 빈곤층 자녀들을 들러리로 이용한 셈입니다.

특수목적 학교의 한 교사는 경제적 사배자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빈곤층 학생이 있어야 부유층 학생들도 가난이 무엇인가를 알게 돼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빈곤층 학생은 부유층 학생으로부터 정서적으로 어떤 것을 알게 될까요. 빈곤에 대한 배려가 실은 부자에 대한 배려일 뿐 빈곤에는 무배려임을 알게 됩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정책이 약자를 더 힘들게 하는 예는 사배자 제도 외에도 비정규직 보호, 세입자 보호 정책 등에서 종종 보았던 일입니다. 현장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일수록 그런 결과로 나타납니다.

제도 개선책으로 경제적 사배자를 우선해서 채우고 나서 비경제적 사배자를 뽑도록 단계적 선발방법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어떤 개선을 하더라도 결과가 달라지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사립의 귀족학교 몇 개 세워진다고 교육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그 정도의 다양성은 수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빈곤층 자녀를 부유층 자녀들과 무리하게 섞는 것은 박애도 평등도 아닙니다. 빈곤층 학생들에게는 어린 마음에 상처를 안겨주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육에서 빈곤의 문제는 일반고라는 국공립 학교의 정상화로 대처하면 됩니다. 다행히도 최근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소득 대비 계층 이동성에서 ‘아직은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평가됐다고 합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꼭 짚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모든 형태의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평등주의적 교육관을 지닌 교육자들이 비경제적 사배자 제도 도입에 앞장을 섰다는 아이러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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