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김영환

얼마 전 일요일의 일입니다. 아기의 코가 막혀 코에 조금 넣은 뒤 콧물을 희석시켜 튜브로 빨아줄 생리식염수가 필요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유명 대학병원 부근으로 약품을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다섯 곳 모두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아무 안내문도 안 보였습니다. 혹시 시장에는 열었을까 생각하고 약 2킬로미터 떨어진 약국을 찾아갔습니다. 역시 셔터가 내려져 있었죠. 그래? 열린 약국을 찾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발동했습니다. '민간이 하는 대형 병원 앞에 가보자. 거긴 약국이 많으니까 열어놓은 곳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지….'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그곳으로 언덕을 넘어 자전거 페달을 밟았습니다. 기대는 또 어긋났습니다.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명절 때면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1339가 생각나 휴대폰으로 걸었습니다. 소방서가 받았습니다. 아주 친절한 분이 관내의 당번약국을 여기저기 알려주었습니다. '확실한 곳은 대형마트 내 약국일거야. 혹시 서울시장의 명령으로 오늘이 한 달에 두 번 쉬는 그날은 아닐까?' 불안하게 생각하며 다시 2킬로미터를 더 달려갔습니다. 마트는 손님으로 붐볐고 약국은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2시간 걸려 봉지에 약품을 넣고 돌아오면서 하늘을 보니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사라져가는 당번약국처럼요.

당번약국은 휴일 응급상황에 대비하여 소단위의 동네 약국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문을 열던 제도로서 잘 지켜졌던 때도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지금 30여만 인구의 광명시에는 당번약국이 아예 없다는 주장이 인터넷에 있었습니다. 어느 시민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져서 입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영등포구에서 몇 킬로미터를 헤맸다는 블로그 글 제목이 '약국 찾아 삼 만 리'였는데 내가 그 짝이 난 것입니다.

뭐 지금이야 편의점에서도 비상약을 팔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극히 일부만을 파는 것이죠. ‘약은 약사에게’라는 약사회의 주장처럼 약품은 약국에서 사야죠. 당번약국이 의약분업 시대 이전부터 시행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국민의 건강을 챙기는 아주 착한 정책이었음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왜 정착하지 못하고 후퇴했을까요. 어느 약국의 주장을 읽어 보니 평일에 환자가 100명이라면 휴일에는 20명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의약분업에 따라 약은 주로 병ㆍ의원의 처방전으로 팔고 있는데 병ㆍ의원이 쉬니 환자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심하게 지나치며 보던 마트 약국으로 몰려 성업 중이라고 합니다.
 
이해가 갑니다. 사기업에 적자 경영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요. 얼마 전 지독하게 매운 음식을 먹고 장염에 걸려 고생했습니다. 마침 일요일이라 대책이 없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서 지하철을 타고 일요일에 여는 내과의원을 찾았습니다. 이면도로에 있는 의원은 평일처럼 친절하게 진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아마 응급실로 갔다면 특진료다 뭐다 하여 덕지덕지 붙어서 의원 진료비의 10배는 지불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열흘 전 그 의원에서 슬픈 문자메시지를 받았습니다. 5월31일까지만 진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이 아무리 인술이라고 해도 환자가 없는 곳에서 자선사업처럼 열 수는 없겠지요. 그동안 반가이 찾던 환자들은 휴일에 또 어디를 헤매야 할까 딱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몸 아픈 것이 어디 평일에만 발생한답디까? 보건당국의 체계적인 홍보 부족도 이 착한 의원이 이 지역에서 진료를 멈추는 이유의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민원 서비스가 가장  발전된 안산시에서 2010년 24시간 돌아가는 '25시 보건소'를 계획했으나 의료 기득권자들의 반발로 중단했다는 소식을 오래 전에 접했습니다. 놀고 싶으면 자기들이나 놀지 왜 남이 일하는 것까지 방해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대목입니다. 국민에게 필수적인 조직은 1년 365일 돌아가야 합니다. 공적 의료부문의 확대가 절실한 것이죠.

박근혜정부 인수위 부위원장이었던 진 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며칠 전 열린 세계보건 총회에서 “대한민국은 국민 행복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국민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삶이 필수요소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건 다른 나라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지난 2월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국민행복을 추진하는 데 있어 사회복지의 행정적 완성이 가장 중요하다.”

공휴일 당번약국 제도나 휴일 병ㆍ의원 담당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수많은 헛걸음을 막으려면 약국 문 앞에 딱 예쁜 안내판 하나만 달아놓으면 됩니다. 굳게 셔터를 내린 약국을 전전하지 않도록…. 큰 글씨로 ‘공휴일 열린 약국은 119에 문의하십시오.’ 라고요. 그 플라스틱 안내판의 원가는 1만 원도 안 들 것입니다.
 
제약회사들은 의약품의 판매촉진 로비 명목으로 한 해에 수천억 원의 리베이트를 쓴다는 것을 검찰이 적발했습니다. 그 영점 몇 퍼센트만 사용해도 전국에 2만 27개(2012년 10월 기준)라는 모든 약국에 안내판을 달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복지의 행정적 완성이란 거창한 게 아닙니다. 그런 작은 것부터 주춧돌을 쌓듯이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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