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김수종

서울시청에 '시민참여옴부즈만'이란 제도가 있습니다. 옴부즈만(Ombudsman)은 북유럽에서 발전한 제도로 일종의 시민감사제도입니다. 옴부즈만이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입회 활동입니다. 서울시와 산하 기관이 발주한 공사나 프로젝트의 입찰이나 심사 과정에 입회하여 공정하게 시행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일입니다.

사업 규모가 2억~3억 원 정도 되는 소규모 디자인 프로젝트 평가 과정에 입회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여러 업체가 입찰 경쟁에 참여합니다. 이들 업체가 심사위원회 또는 평가위원회에서 제안서를 발표하고 질의에 응답하는 시간은 길어야 30분 정도입니다. 이 짧은 시간에 경쟁자들은 혼신의 힘으로 심사위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프로젝트를 수주하려는 업체들은 제안서를 작성하기 위해 현장실사와 자료수집 등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디자인 프로젝트인 경우 발품이 많이 들고 시간이 소요되고 창의력을 요하는 일들입니다.

심사 결과 낙찰자는 한 업체입니다. 승자 독식입니다. 낙찰자는 낙찰가에 의해 공사를 수행해서 이윤도 내고 프로젝트 제안서 작성에 소요된 비용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심사에서 떨어진 나머지 업체들은 고스톱 판에서 돈 잃은 사람들처럼 빈 가방을 들고 나와야 합니다. 프로젝트 제안서 작성을 위해 들어간 비용은 잃어버린 판돈입니다. 업계에서는 그게 당연한 일로 치부됩니다.

옴부즈만 좌석에 앉아 이러한 모습을 자주 보며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첫째, 제안서 제작에 들인 업체들의 노력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영세한 업체일수록 입찰에 실패할 확률은 높은 것 같습니다. 현장조사와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휘하는 데도 돈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영세 업체의 경우 이런 공모에 몇 번 탈락하면 그 타격은 엄청날 것이며 생존의 위기에 내몰릴 수도 있습니다. 업계의 생태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라도 일정 수준의 제안서를 제출한 업체에 비용의 일부라도 보전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탈락자를 배려해야 할 또 한 가지 이유는 낙찰자를 경쟁과 긴장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탈락자가 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가 프로젝트를 입찰에 부치는 것은 경쟁을 유도해서 비교적 합리적인 비용으로 우수한 프로젝트 수행자를 선택하기 위한 것입니다. 입찰 경쟁에 참여했다가 떨어진 업체들은 결과적으로 들러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들 들러리가 있었기에 낙찰자는 더욱 열심히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응찰 가격에도 신경을 쓰게 됩니다. 서울시가 프로젝트를 경제적으로 수행하는 데 공헌을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배려는 논리적으로 부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재벌이 아니고는 하루아침에 큰 기업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소기업이 창의력과 경영능력을 발휘해서 큰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영세한 소기업에게 절실한 것은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는 힘입니다. 서울시가 약간 생각만 바꾼다면 도시 디자인 등 창의력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프로젝트 제안서에 대한 최소한의 비용을 보전해줌으로써 소기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즘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추신수 선수와 텍사스 레인저스가 맺은 7년간 계약액 1억3천만 달러가 화제입니다. 추 선수는 한때 부상으로 마이너리그로 밀려나 한 달 월급 1천 달러를 받고, 돈을 아끼기 위해 동료와 한 방을 쓰며 버텼다고 합니다. 이제 메이저리그 시즌이 되어 추 선수가 받게 될 1개월 월급은 약 16억 원입니다. 마이너리그의 월급 1천 달러가 없었다면 오늘의 추 선수 출현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기업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중앙정부는 창조경제를 말하고, 서울시는 소기업 육성을 강조합니다. 기존에 하던 방식을 바꾸라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창의력을 요하는 소규모 프로젝트 입찰에서 탈락자에게도 동기를 부여하는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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