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김영환

되도록 철도를 이용하여 여행하는 필자에게 지난 연말의 코레일 철도파업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나마 파업에 참가 안한 노조가 있는 복수노조 체제라서 여객 열차 운행률이 최악의 경우에도 평균 70퍼센트를 넘어 다행이었지만 시멘트 등 산업 물자 수송률은 30퍼센트대로 떨어져 직·간접적인 피해는 1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새해 정동진 앞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보며 새 희망을 빌고 싶은 꿈에 부풀었을 철도 마니아들의 불편과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먼 옛날 청량리 역에서 야간 완행열차를 타고 뱀처럼 꾸불꾸불한 강원도 산간 지역을 졸며 가다가 문득 눈을 뜨니 새벽 창 너머로 하얀 거품을 내며 넘실대던 동해 바다 위로 장엄한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철도를 이용하려고 인터넷에서 예약할 때마다 이번 철도 이용으로 ‘나무를 X그루 심었습니다’는 격려의 글을 접하면 입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환경운동가가 된 것 같아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파업은 반환경적입니다.
 
코레일 파업은 당국자들의 단호한 민영화 부인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 분명한 미래의 일을 반대하는 희한한 투쟁이라서 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일부 좌파 인사들은 1979년 8월 YH무역 생산직원들의 신민당사 농성을 철도노조 파업에 비유하는 견강부회를 저질렀습니다. YH사건은 가발 등의 수출 부진으로 회사가 폐업하자 일자리를 잃은 여사원들이 생존권을 위해 당시 마포에 있던 제1 야당인 신민당사로 들어간 생존형 투쟁이었으니 배가 부를 대로 부른 코레일 철도파업과 차원이 다릅니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내가 선로에 드러누워서라도 민영화를 막아내겠으니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고 파업철회를 호소했지만 무위였습니다.
 
더욱이 코레일 파업이 찬반투표 때에는 임금 8.1퍼센트 인상을 내걸었는데 대외적인 목표는 민영화 반대 등 정부 정책반대의 정치투쟁을 목표로 포장했다는 것입니다. 평균 연봉 6,300만원이라면 신의 직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격무에 시달리는 중앙 일간 신문사 평균 연봉이 겨우 2,000만원 남짓한 곳도 꽤 있습니다. 일자리 세습 등 사기업에서 도저히 믿기 어려운 각종 특혜의 홍수를 보면서 왜 코레일 노조가 수서발 KTX 계열사 설립이라는 경쟁체제까지 두려워하는지 짐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국민들로부터 철밥통에 안주하려고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던 거죠.
 
요즘 코레일 파업을 기폭제로 민주노총 등 일부 노동계가 1,577만 명의 국민이 뽑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주장에서 목표를 잘못 겨냥한 화살의 모습을 봅니다. 어느 종편의 앵커는 “투표로 잃은 것을 시위로 되찾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치가 마음에 안 들면 노동운동을 접고 정당의 간판을 달아 이번 지방선거부터 출마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각자가 자기 영역의 일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하면서 웬 참견과 월권이 그리 많냐는 것입니다. 뿌리가 깊지 못한 민주주의의 왜곡, 혹은 병폐입니다. 민영화로 철도 산업의 공공성이 걱정된다면 국민 혈세로 충당해온 한 해 5,700억 원의 코레일 적자에 노조가 민영화 반대와 함께 적자 개선을 위한 ‘연봉 몇십 퍼센트 자진삭감’이라는 구호라도 내걸었어야 대국민 호소력이 커졌을 것입니다.
 
요즘 국민들은 어린이, 노인 할 것 없이 잠 잘 때 빼놓고는 놓지 않는 휴대폰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국내·외 정보에 정통해집니다. 고성능 확성기로 고함치며 차도까지 점령하는 ‘쌍팔년도식’ 아날로그 형 가두 투쟁은 이제 안 먹혀든다는 거죠, 그나마 몇몇 국회의원들이 제풀에 넘어질 파업을 뒤늦게 참견하고 나서 노조의 퇴로를 열어주었다는 평을 받고 있죠.
 
파업이라는 실력행사보다 먼저 대화가 필요했죠. 국민의 발, 그것도 무궁화 열차 같은 서민의 발을 볼모로 삼고 파업부터 돌입한 뒤에 대화와 중재를 요구한 것은 순리가 아니죠. 민영화 반대에서 보듯이 팩트를 멋대로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경부선 6만원이 28만원이 되고 지하철 요금이 5,000원이 된다’는 민영화 괴담이 횡행했습니다. 아마 요금이 그렇게 뛸 때 쯤이면 직장인들의 임금도 그런 비율로 올라갈 것이라고 봅니다. 최악의 경우 민영화한다고 해도 저소득층 차등요금제를 적용하면 되죠. 일본 동경은 민영 지하철이 공영선보다 20퍼센트 정도 더 저렴합니다. 정작 우스운 것은 대중교통이라고는 지하철 환승 방법도 모르는 자가용족 젊은이들이 어디서 들은 인터넷 유언비어에 오염되어 부화뇌동한다는 것이죠.
 
"(미국산 소고기 먹는 대신)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 넣는 것이 낫겠다"라고 설치다가 결국 예명을 바꾼 여자 탤런트는 과거 미국에서 햄버거를 먹던 사진이 화제의 초점이 됐습니다. 소위 ‘광우뻥’에 속고 싶은 사람들이 속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죠. 그 폭란의 최일선에 나섰던 사람들도 자녀들은 미국에 유학 보낸 게 들통 났는데 자녀들은 미국에서 한국산 소고기 수입해 드셨나요?
 
팩트보다 선동을 중시하는 몹쓸 풍토입니다. 여기에는 몇 십 년 전의 오보도 정정하는 선진국다운 용기가 없는 언론도 한 몫 거들었다고 봅니다. 새해에는 팩트가 중시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영논리에 빠져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지 않은 것을 팩트라고 왜곡하지 않는 성숙한 사회가 되어야 나라가 발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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