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임종건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 나라에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의 아픔과 피해 극복에의 동참을 독려하는 구호로 흔히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슬픔은 전염되는 것이고, 나누면 몇 배로 커지게 될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재난 보도를 엄격히 통제하는 전체주의 체제가 그랬습니다. 스탈린 시절의 소련이나 모택동 시절의 중국이 그랬었지만 지금은 두 나라도 웬만한 재난은 즉시 보도하는 나라로 바뀌었습니다. 아직까지 그 전통을 교조적으로 지키는 나라가 북한입니다.
 
그런 북한에서 23층 아파트의 붕괴라는 대형사고 발생 사실을 관영 매체들이 보도하고,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사고 소식에 너무 가슴이 아파 밤을 지새웠다’는 사실까지 전했습니다. 바로 직전까지도 북한의 대남선전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논평을 내고 '세월호와 함께 남한사회가 동째로 뒤집히고 있다' ‘반정부 투쟁만이 살 길’이라며 사돈 남의 말하듯했습니다.
 
아파트 붕괴는 5월 13일에 발생했는데 조선중앙통신의 첫 보도는 5일 뒤인 18일에야 나왔습니다. 90세대가 넘게 입주한 23층 아파트의 붕괴라면 수백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나 희생자 수나 구조 활동에 관한 보도는 없었습니다.

‘평양시 평천구역 건설장에서 주민들이 쓰고 살게 될 살림집 시공을 되는대로 하고 그에 대한 감독통제를 바로 하지 않은 일꾼들의 무책임한 처사로 엄중한 사고가 발생하여 인명피해가 났다’는 내용에다 관련 공직자의 반성의 말을 덧붙인 게 전부였습니다. 사진도 희생자 유족들의 슬픔에 싸인 사진 한 장뿐, 현장의 참혹함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사건 사고를 이례적으로 보도한 경우가 전에도 몇 번은 있었습니다. 2004년 4월 24일 평북 용천역 폭발사고와 2012년 4월 13일 인공위성 광명성 3호 발사 실패가 그것입니다. 근년 들어 태풍 같은 자연재해는 외국 원조에 대한 기대 때문이겠지만 피해상황을 영상을 곁들여 비교적 자세히 보도하기도 합니다.
 
용천역 폭발사고는 인공위성에서 포착됐을 정도로 대형 인재 사고였고,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 후 귀로에 발생해 여러 정치적인 억측까지 제기됐던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 역시 발생 사실만 간략하게 보도됐을 뿐, 여타 피해상황에 대한 보도는 없었습니다.

광명성 3호 발사실패 시인은 발사를 앞두고 외국 기자의 참관허용, 파편 낙하지점의 국제기구 통보 등 투명성 제고 조치를 취한 탓에 보는 눈이 많아 날조가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미국의 AP 통신의 평양 지국이 개설돼 있고, AFP 통신 지국도 연내 개설이 예정돼 있는 등 개방 추세인 언론환경의 영향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 북한에서 발생한 많은 사건 사고는 철저히 통제됐거나 날조되기 일쑤였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인 1998년 8월 31일 발사된 광명성 1호, 2009년 4월 5일의 광명성 2호 발사는 실패로 밝혀졌음에도 궤도 진입에 성공해 인공위성에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전송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자유언론 체제에서는 인명 피해의 규모나 내용이 사고의 크기와 성격을 좌우합니다. 모든 언론은 인명 구조와 원인 규명,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춰 보도합니다. 우리 언론들이 세월호 사건의 마지막 실종자를 찾을 때까지 수색 상황에 시선을 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점에서 북한의 재난 보도에 관한 인식은 아직도 ‘슬픔을 전염시킬 뿐’인 ‘위험’입니다. 그런 슬픔이 자칫 분노와 결합하면 북쪽에서도 화살이 김일성 일족에게 향할 수도 있습니다. 무오류의 완벽한 지도로 이룩한 '지상낙원'에서 이런 사고가 뭐냐는 것이죠.
 
왕조시대의 왕들은 가뭄이 들면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알고 하늘에 용서를 구하면서 기우제를 올렸습니다. 홍수가 나고, 벼락이 쳐도 임금은 자신의 허물을 살폈습니다. 세월호를 이유로 일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도 그런 전통의 영향일 듯합니다.
 
재난 보도에서 은폐가 결과하는 가장 큰 폐해는 재난의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어렵게 한다는 점입니다. 세월호 사건에서 보았듯이 대형사고에서 언론의 과장 및 왜곡 보도는 언론자유의 부작용이란 말이 민망할 정도입니다. 또한 같은 원인의 사고가 되풀이 되고 있어 보도가 재발방지에 기여한다고 주장하기도 어렵게 됐습니다만 오류의 시정을 통한 사회의 발전은 은폐가 아닌 개방에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죠.

그 점에서 북한의 재난 보도에 대한 자세 변화는 바람직합니다. 특히 광명성 3호 실패와 아파트 붕괴 시인이 김정은 시대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위성의 감시가 정밀하고, 탈북자 및 휴대전화 보급 등으로 더 이상 감추기가 어려워진 안팎의 환경 탓도 있을 겁니다. 또 우리 사회가 경험했듯이 날조나 은폐가 유언비어와 사회불안의 원인만 된다는 현실인식일 수도 있는 겁니다.

그것이 나아가 앞으로 누워서 침 뱉기 식의 남한에 대한 욕설과 비방에 신중해지는 이유가 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큰 재난에 최고 지도자가 책임을 느끼는 체제였다면 북한은 오래 전에 좋은 나라가 됐을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특히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남북 간 주택사업의 협력문제입니다.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 취재를 위해 평양에 갔을 때 북측은 평양 시내 고층아파트 단지에 남측 취재단 일행을 안내하더니 아파트 안에는 못 들어가게하고 밖에서 구경만 시켰습니다.

안내원은 10층도 넘는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걸어서 오르내린다고 했습니다. 주차시설도 지하 주차장은 개념도 없고, 동마다 지상에 그어 놓은 10여대 주차 공간이 모두라고 했습니다. 남북통일이 되면 그냥 헐어야 할 콘크리트덩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아파트의 붕괴사고도 분명 낙후한 건설기술과 날림공사가 원인일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가 알아주는 건설 기술로 도시 농촌 가리지 않고 아파트를 지어 이제는 공급과잉 상태에 빠졌습니다. 국내의 주택산업이 앞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곳이 어디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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