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김영환

“너희가 항복한다면서 성을 고치는 이유가 무엇이냐?”

청 태종 홍타이지의 침공으로 삼전도에서 무릎 꿇고 항복한 조선의 인조만큼 전란의 참화를 깊이 겪은 임금은 13세기의 고려 고종입니다. 고종은 1232년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겨 39년간 몽골에 저항했습니다. 포악한 전란 속에서도 불력으로 외적을 물리치려고 12년 간 판각해 만든 팔만대장경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빛이 납니다.

몽골도 고려의 항쟁에 지쳐서 왕이 출륙환도(出陸還都)하면 철군하고 화친하겠다고 했지만 고려가 강화성을 수축하자 반발한 것입니다. 고려의 외적은 원나라 말고도 있건만 ‘해 뜨는 땅에서 해 지는 땅’까지 정복한 원은 자신만이 천하 유일의 국가라고 오만을 떨면서 끝내 강화성을 파괴하는 장면을 사신이 입회하여 확인했습니다.

몽골의 침입으로 고종 41년인 1254년 한 해에만 20만6,800여 명이 포로로 잡혔다고 고려사절요는 쓰고 있습니다. 죽고 다친 군사와 백성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소강상태를 빼고 거의 30년간 7차례에 걸쳐 몽골이 쳐들어올 때 고려는 스스로를 ‘소방(小邦)’이라고 칭하는 국서를 내서 제발 물러가 달라고 애원하면서 침략자들에게 특산물을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몇 년 전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宗義智)가 선조 임금에게 왜가 개발한 신무기 조총을 진상했습니다. 그러나 희대의 암군(暗君) 선조 밑에서 무능할 수밖에 없었던  조정은 조총의 성능을 평가하기는커녕 당쟁으로 갈려 “평화 시에 민심을 자극하여 가뜩이나 어려운 민생을 피폐시킬 필요가 없다”면서 편안한 낙관론에 빠져 다가오는 왜란을 수수방관하다가 7년 전쟁의 참화에 시달려 금수강산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공산권의 팽창을 저지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은 자주국방의 미흡함을 보완하는 이승만 주도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버팀목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며 지금도 그 대체재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미군부대가 안보 위협이라면서 옮겨가라고 외치는 경기도 북부의 시민을 텔레비전 뉴스에서 볼 때 어리둥절했습니다. 

역사는 반복한다고 하지만 지금 G10 급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이상한 안보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좌파적 북핵관으로 호된 비판을 받지만 제주해군기지 건설에는 “어떤 평화의 섬에도 비무장은 없다”는 안보관으로 밀고 나갔습니다.

북한은 호시탐탐 대한민국을 적화하려고 국지적 열전과 사이버전을 ‘믹스’하며 우리 내부에 분란을 일으키는 종북세력을 비호해왔습니다. 북한은 유사시 미군의 자동개입이 겁나 미군철수를 입에 달고 살죠. 유럽과 달리 집단안보체제가 형성되지 못한 동북아에서 안보나 북한인권, 탈북자 문제를 보건 우리에게 가치 동맹이 소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미국이 북의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주한미군에 배치하려는 고고도 방어미사일(사드, THAAD:Terminal High-Altitude Area Defense)을 중국이 노골적으로 반대하며 우리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사드는 적의 미사일 발사와 대기권 이탈 후 대기권 재진입 과정의 고도 150킬로미터, 거리 약 200킬로미터 이내에서 요격하는 방어용 무기입니다.

자신들은 항공모함 등으로 한껏 군비확장에 열을 올리고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에 아무 억지력도 못 쓰며 6자회담도 북의 시간만 벌어준 현상이 10 수 년 간 계속되어온 마당에 사드 미사일이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중국의 이상한 논리에 좌익 매체와 정치인들은 대안 없이 맞장구를 칩니다. 안보에 정파로 갈려서는 안 된다는 임진왜란의 교훈을 잊은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를 강조하는 것도, 이완구 새 국무총리가 설을 맞아 일선 장병을 위문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미국의 사드 요청이 없었다"라고 얼버무릴 게 아니라 북의 도발을 막기 위한 국방력이 절대 열세인 우리에게 필수라고 당당하게 나서야죠. 안보는 경제의 상위 개념입니다. 경협은 경협이고 안보는 안보입니다. 휴전선에서 누구보다 북핵 미사일의 대남 도발 위협을 절감했을 주한미군사령관들이 수년 전부터 주장해온 사드 배치입니다.

얼마 전 문화일보의 여론조사 결과 63.7퍼센트의 국민들이 사드 배치에 찬성하여 반대 의견 29.7퍼센트의 2배를 넘었습니다. 지역적으론 호남에서만 반대여론이 불과 1.3퍼센트 높았을 뿐입니다.

정치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는 국민 여론을 중시해야 합니다. 임진왜란에서는 수십만의 군사와 백성이 왜군들의 조총과 칼날에 도륙되고 코가 베어져 소금에 절인 전리품으로 일본에 보내졌습니다. 선조는 중국으로 난을 피하려고 하다가 중신들의 만류로 뜻을 접었습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한반도 전체의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눈앞에서 날아간 6·25전쟁에서 미군 3만6,516 명을 포함한 유엔군 5만8,000여 명이 그 이름도 몰랐던 나라에 젊은 피를 뿌렸습니다. 한국군은 사망자 13만8,000여 명, 부상자 45만여 명, 실종자까지 합하면 60만9,000여 명의 피해입니다. 남한 민간인 피해는 사망 24만5,000여 명, 학살 13만여 명, 부상 23만 명, 납치 8만5,000여 명, 행방불명 30만3,000여 명으로 100만 명이 넘는데 유족회와 학자들은 학살된 숫자만 100만 명이 넘는다고 봅니다. 유사시에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 것은 혓바닥을 놀리는 한 줌의 정치인이 아니라 민초였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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