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해외 투자자들 반발은 삼성이 자초…주주가치훼손 안돼"
불법과 편법 얼룩져도 사회적책임 외면 '이재용 삼성' 가시밭길 예고
국민연금 '침묵'길어지면 '재벌 백기사'아니냐는 비판 휘말릴 수도

[중소기업신문=김두윤 기자] '이재용 삼성'의 서막을 예고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다. 미국의 한 펀드가 주주가치훼손을 이유로 합병을 반대, 법적대응에 나섰으며, 다른 해외 투자자들도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을 지적하고 있다. 삼성측은 이를 '해외투기자본'으로 규정해 반발하고 있지만, 일부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오히려 엘리엇에 힘을 보태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삼성에게 등을 돌렸다. 합병에 적신호가 켜진 셈으로, 작금의 상황은 삼성이 자초했다는 시민단체들의 비판이다.

스스로 저지른 불법으로 국민들에 약속한 '사재출연'은 지키지 않으면서도 자식들에게는 자신의 부를 온전히 넘기려고 사력을 다한 것으로 보이는 이건희 회장의 의지를 받들어 '이재용 회장님' 만들기에 올인하던 삼성이 제대로 뒤탈이 났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해온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지난 9일 삼성물산 주총결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신청했다고 밝혔다. 최근 삼성물산 지분 7.12%를 확보했다고 공시한 엘리엇은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요 주주들에게 서한을 보내 이번 합병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합리한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어 반대해야 한다고 촉구한 상태다.

합병비율에 의문을 품은 곳은 엘리엇뿐만이 아니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네덜란드 연기금(APG) 등 장기투자 성향의 외국인 기관투자자 30~40곳 역시 삼성물산 합병비율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합병은 '이건희 삼성'에서 '이재용 삼성'시대로 가는 중요한 길목으로 평가된다. 제일모직 지분 23%를 보유한 이재용 부회장은 합병을 통해 합병법인 지분 16.5%를 확보, 그룹 계열사의 지배력을 강화하게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 부회장의 지분은 0.5%에 불과하지만, 삼성물산의 보유지분은 4.1%다. 이번 합병이 삼성가의 경영승계관점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그 본질이 이건희 일가의 '부의 대물림'에 있다는 말이다. 앞서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합병에 대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업재편"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만약 삼성물산 주주들의 반발로 합병이 무산될 경우 '이재용 삼성'구축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영능력검증에 대한 문제를 제외하고라도 부당이득논란, 무노조경영, 백혈병문제 등 사회적승인을 위한 사회적책임 문제를 외면, 삼성과 오너일가를 보는 눈이 다 곱지만은 않은 상황에서 최종 결론이 길어질 경우 자칫 '이재용 삼성'을 보는 부정적인 여론이 더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을 삼성 스스로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8일 논평에서 “외국계 펀드의 삼성물산 합병 반대는 삼성이 제시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이유와 합병비율, 주주설득 작업이 모두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상장한 제일모직은 현재 최고가를 유지하지만, 삼성물산의 경우 부동산 경기침체로 최저점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에서 제일모직 1주당 삼성물산 주식 0.35를 맞바꾸는 것은 과대평가된 제일모직과 과소평가된 삼성물산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지속돼왔다.

일각에서는 철저하기로 유명한 삼성이 이같은 상황에 처한데는 국내에서 '삼성공화국'으로 까지 불릴 정도로 비대해진 자신들의 영향력을 믿고 너무 자만하다 이런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풀이마저 나온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삼성은 합병을 추진하면서 구체적인 미래비전 제시나 주주가치제고책 등에서 주주배려에 소홀했다"며, "주주들을 생각했다면 이렇게까지 했겠느냐. 일반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삼성의 주주가 오너일가 밖에 없느냐는 불만이 커질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측은 이번 합병이 미래불확실성이 반영된 결정이라며 맞서고 있다. 삼성물산은 "건설업의 미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합병을 통해 사업 시너지를 내고 효율을 제고해 회사 가치를 높이는 것이 주주들을 위해 더 바람직한 것이라고 판단해 합병을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합병비율이 불공정하게 산정됐다는데 대한 반론이다.

외국 투자자와 삼성간의 대립각이 본격화되면서 세간의 시선은 지분 9.7% 보유한 최대주주 국민연금으로 쏠리고 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주주가치훼손 논란에도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현재 주가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을 비교해 판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국민들의 자금을 운영하는 국민연금이 왜 적극적인 의사표명에 나서지 않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커지고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경우 적극적인 의사표명은 하지 않은 채 현재 주가와 반대매수청구권 행사가격만으로 판단하겠다고 하는 등 최대주주의 지위에 걸맞지 않은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로서 삼성물산 주가의 정상화를 위해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대화와 관여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합병에는 반대하도록 돼있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지침’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한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을 맡은 바 있는 이찬우 국민대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발표하면서 주주가치 제고 내용이 빠져 실망했다. 향후 어떻게 기업을 이끌어가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이 교수는 합병비율과 관련 “건설경기 불황도 있지만 삼성그룹이 두 회사를 홀딩컴퍼니(지주회사)로 생각하고 그동안 주가를 고려하지 않았느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으며, 삼성이 합병의 불가피성이 있었다하더라도 주주가치문제를 외면한데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주주가치훼손 가능성에도 침묵을 지속한다면 그 배경에 대한 의심을 사면서 국민들의 국민연금이 '재벌의 백기사 역할'을 하려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여론에 휘말릴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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