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가계대출 심사 깐깐…대출총량·속도 관리에 고삐
'빚더미' 한계가구 급증, 금리상승·소득감소 등 충격에 취약
"한계가구 집단 부실화 차단해야…선제적 관리·감독 필요"

▲ 최근 국내 시중금리가 빠르게 오르고 최악의 구직난, 기업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실직 사태 등으로 가계소득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의 뇌관을 터뜨릴 도화선이 될 수 있는 한계가구의 집단 부실화를 막는 정부 차원의 선제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시내의 한 시중은행 지점 모습. 사진=연합

[중소기업신문=이지하 기자] 올해부터 은행은 물론 상호금융·저축은행 등 전 금융권에서 가계대출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가계빚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금융기관의 대출문턱 높이기가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빚에 연명해 생활하는 한계가구들은 전방위적인 대출 옥죄기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최근 가팔라진 금리 상승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고 만기 도래한 대출 돌려막기가 힘들어지면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취약계층의 다중채무자부터 부실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가계부채의 뇌관을 터뜨릴 도화선이 될 수 있는 한계가구에 대한 정부의 선제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가계대출 급증에 따른 부실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올해 은행권의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는 6%대로, 지난해 10% 안팎을 기록했던 가계대출 증가율보다 4%포인트 가량 낮춰잡았다. 은행들도 이미 가계부채가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판단해 대출자산 증가보다는 '리스크관리'로 입장을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은 지난 1일부터 주택담보대출과 동일하게 아파트 잔금대출에 대해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파트 잔금대출도 원리금을 나눠 갚아야 하는 분할상환 원칙이 적용되며, 신규 취급한 잔금대출에 대해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산출하고 표준 DSR이 80%를 초과하면 사후 관리 대상으로 선정해 리스크 관리 등에 활용한다.

농·수·신협과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도 오는 3월부터 신규 주택담보대출에 맞춤형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시행할 예정이다. 상호금융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차주의 상환능력을 확인하는 소득 증빙이 대폭 강화되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60%를 넘는 주택대출은 분할상환을 해야 한다. 

금융권의 전방위적인 대출 죄기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약한 고리'는 고령층·저소득층·영세자영업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한계가구들이다. 한계가구는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고, 원리금 상환액이 처분가능소득의 40%를 초과하는 가구를 말한다.

가계의 빚이 소득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빚더미에 앉은 한계가구는 2015년 3월 말 현재 134만 가구에 달했다. 이는 전체 금융부채 보유가구(1072만가구)의 12.5%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한계가구는 1년 새 4만가구나 늘었다. 이들이 가진 금융부채는 전체 금융부채의 29.1%를 차지했다.

한은은 대출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경우 한계가구 비중이 금융부채 보유가구의 12.5%(134만가구)에서 13.3%(143만가구)로 높아지고, 이들의 금융부채 비중도 31.8%로 2.7%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올해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가 시작되고 조선·해운·철강·건설·석유화학  등 5대 취약업종에 대한 기업 구조조정이 타 업종으로 확대돼 대규모 실업 사태가 가시화될 경우 소득만으로 빚을 갚기가 어려운 한계가구는 빠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총량이 아닌 외부충격에 취약한 한계가구의 부실화 가능성"이라며 "제2금융권에서 상대적으로 비싼 금리를 주고 사업자금이나 생계자금용 대출을 받은 취약계층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러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제2금융권 가계대출은 2013∼2015년 3년간 연평균 8.2%의 증가률을 보였지만, 지난해에는 13%대까지 뛰어올랐다. 특히 제2금융권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 비중은 지난해 1분기 26.9%로 높아졌고, 저소득층 대출자 비중도 33.6%까지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국내 시중금리가 빠르게 오르고 최악의 구직난, 기업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실직 사태 등으로 가계소득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한계가구의 파산 위기를 막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금리 인상으로 고령층이나 저소득층, 은퇴 가구,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가계부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지금 당장은 이자를 갚을만한 능력이 될지 몰라도 소득 대비 상환 부담은 점차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계가구를 줄이고 이들의 상환능력을 제고할 수 있는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며 "한계가구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금리 상승이나 주택가격 하락, 소득 감소 등의 충격을 완화하고 소득증대 대책 등을 통해 채무상환능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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