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채권은행, 신용위험평가 기준 대폭 강화
엄격해진 평가 잣대에 올해 구조조정 대상 늘 듯

▲ 올해부터 금융당국과 채권은행의 신용위험평가 잣대가 한층 엄격해지면서 저금리 은행 빚으로 연명하는 한계 중소기업의 퇴출작업이 강도 높게 이뤄질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 모습. 사진=연합

[중소기업신문=이지하 기자] 올해 채권은행의 '부실기업 솎아내기'가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그간 채권은행들의 봐주기·온정주의식 신용위험평가 덕에 빚으로 근근히 연명해 온 한계기업에 대한 강력한 퇴출 의지를 다지고 있어서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영여건 등으로 부실여신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은행들도 기업대출 관리에 고삐를 죌 예정이어서 올해 구조조정 대상에 이름을 올린 중소기업이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던 지난해 수준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채권은행은 매년 거래 기업을 대상으로 정기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해 A~D등급을 매긴다. A등급은 정상기업, B등급은 정상기업이지만 일시적으로 유동성 부족을 겪는 기업이며, C·D등급은 각각 워크아웃과 법정관리에 들어가야 하는 이른바 '퇴출 대상'이다.

그러나 채권은행들은 기업과의 장기 거래관계 등을 이유로 온정적인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하는 경우가 더러 존재했고, 이로 인해 진작 퇴출당했어야 하는 한계기업이 정상기업으로 연명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올 상반기 중 채권은행의 신용위험평가 모델이 적정한지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을 새롭게 도입하고, 각 은행의 신용위험평가 모델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부실기업에 대한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중요해지면서 올해부터는 봐주기식 신용위험평가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조만간 금융감독원과 신용평가회사 등이 참여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객관적인 신용위험평가 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채권은행의 엄격한 신용위험평가를 유도해 구조조정 대상기업 선정이 지연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들어 은행들도 대기업은 물론 부실 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불투명한 실적 전망으로 국내 기업들의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되는 데다 건설·조선·해운 등 취약업종의 극심한 불황 속에 구조조정 등의 여파로 경영난에 빠진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들이 늘고 있는 탓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 여파로 선제적인 부실관리가 중요해지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업고객의 신규대출이나 상환연장 신청에 대한 내부적인 심사기준이 한층 까다로워졌다"고 설명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말 은행권의 기업대출 규모는 금융위기 이후 월간 기준으로 가장 많이 줄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744조9000억원으로 전월보다 2.0%(15조원) 줄었다. 이는 2009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올해에도 은행권의 기업대출 관리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여 기업대출 감소폭이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금융당국의 전방위 압박 속에 시중은행들도 기업대출의 부실화 차단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만큼 올해 구조조정 명단에 속하게 될 부실 중소기업은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지난해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된 중소기업은 176곳으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 만에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C등급 중소기업은 70곳, D등급 기업은 105곳이었다. 이들 C·D등급 기업이 지난해보다 1곳 증가하는데 그쳤지만, 신용위험 평가 대상이 된 기업(2035곳)은 100곳이나 넘게 증가했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대다수가 부품 제조업체들로, 전년에 비해 20곳이 늘어난 125곳에 달했다. 금속가공제품(22곳), 전자부품(20곳), 기계장비(19곳) 순서로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많았고, 특히 금속가공제품 분야 구조조정 대상 기업은 1년 새 14곳이나 늘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국내 산업 전반의 상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취약 산업을 꼼꼼히 모니터링해 구조조정 대상을 선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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