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들 수익성 악화에도 특별한 대책없어…"내리라면 내려야"

[중소기업신문=박진호 기자] 선박부품 제조업체 A사는 단가협상을 할 때면 대기업 구매담당자로부터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을 제시받고, 사정 반·협박 반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강요받는다. 다른 계약조건에 대해서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가 없다. 결국은 해달라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다.

의류잡화 부자재 제조업체 B사는 대기업으로부터 단가 인하를 위해 연매출에 육박하는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자금 지원은 없다. 장비가 좋아지면서 생산비는 절감이 되지만 이에 따른 이익은 대기업의 몫이다. 아울러, B사가 견적서를 작성해 대기업에 제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대기업이 견적서를 작성해 B사에 전달하는 방식이 오래 전부터 유지되고 있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C사는 매년 3%의 단가인하를 조건으로 대기업과 계약했다. 단가인하의 여력은 제한되어 있는데 계약기간이 끝나면 거래보장을 전제로 계속 단가인하를 요구한다. 자동차의 경우 한 번 개발되면 10년씩 생산하는 것도 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부품의 경우 단가가 안 맞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대기업 이익개선에 중소기업의 눈물이 깔려 있는 셈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3~4월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제조업체 300개사를 대상으로 '하도급거래 부당 단가결정 애로조사'를 한 결과 납품단가 협상이 여전히 대기업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1일 밝혔다.

부당한 납품단가 결정을 경험한 적 있다고 응답한 업체는 14.3%였다. 매출액별로는 '1억∼5억원 미만'(33.3%)의 기업이, 업종별로는 '조선'(19.3%)이 부당한 납품단가 결정을 가장 많이 경험했다.

부당 납품단가 결정 이유는 '거래처의 가격경쟁에 따른 원가 인하 전가'가 58.1%로 가장 많았다. '경기불황'(14.0%), '업계관행'(11.6%), '생산성 향상을 이유로 원가 인하'(9.3%) 등이 뒤따랐다.

부당 단가결정 행위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업체 중 34.9%는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단가를 결정한 후 합의를 강요했다고 응답했다.

지속적인 거래관계 보장을 전제로 부당하게 납품단가를 결정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23.3%였다.

협력업체들은 부당한 단가결정에도 별다른 대책 없이 수용(62.8%)하는 경우가 많아 대기업의 가격경쟁에 따른 부담이 고스란히 협력업체로 전가돼 수익성이 악화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조공정 개선을 통해 부당 단가결정에 대응하는 업체는 9.3%로 많지 않았다.

제조원가를 구성하는 요소 중 인상요인이 있음에도 납품단가에 가장 반영이 되지 않는 항목은 노무비(47.9%)이고, 그 다음은 재료비(38.7%)인 것으로 조사됐다.

부당하게 납품단가를 결정하는 행위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업체가 바라는 정책 방향은 자율적인 상생협약 유도(45.3%), 판로 다변화(19.0%), 모범 하도급업체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19.0%) 등이었다.

김경만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납품단가 협상이 많이 이루어지는 연말·연초에 공정한 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대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며 "대기업은 일방적으로 단가를 인하하기보다 공정한 방법을 통해 협력업체와 함께 생산성을 올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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