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판 원천 부정하는 법원 행태 국민 불신 증폭…억울함 해원(解寃)이 사법 불신 해소책

영화 ‘재심’의 소재는 실화다. 살인범 누명에서 벗어난 ‘약촌 오거리 사건’이 소재다. 영화는 고초를 겪은 주인공들의 사연 못지않게 엉터리 수사와 재판에 대한 공분을 느끼게 했다.

영화가 상영되기 1년 전 한 공중파 시사프로는 이 사건을 집중 취재한 바 있다. 취재카메라를 피해 도망가는 현직에 있는 당시 수사검사의 모습이 오버랩(overlap)됐다. 그의 도망질을 잠시 생각해본다. 양심의 가책인가, 부끄러움인가. 아니면 징계를 두려워했던 것인가.

이 사건은 숱한 언론기사와 영화로 고발됐다. 하지만 책임진 검 판사는 없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진범이 잡히고 수많은 사람의 노력에 힘입어 재심의 행운을 잡았다. 그러나 오판에 항의하며 재심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2016년 재심 형사사건 1500건 중 인용율은 7%, 무죄판결은 108건에 불과했다. 과거 ‘여운환 사건’도 한 예(문화일보 2017년 12월6일자)다. 여씨는 20년 전 김영삼 정부 초기 조폭 두목으로 몰려 4년의 옥살이를 치룬 멍에를 벗기 위해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당시 사건을 직 간접으로 인지했거나 사건에 관련됐던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범죄증거가 하나도 없는 부실 재판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판 검사 출신 변호사, 법학 교수 및 언론인들이 주축이 되어 3년 전 발족한 ‘한국무죄네트워크’가 현재 여씨의 재심 절차를 돕고 있다.

형사 재심은 무죄입증에 필요한 새 증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재판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 게 또한 현실이다. 재심은 선배가 가름한 판결을 뒤엎는 결정이기에 객관적이고 정직함이 요구되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게 인간임을 감안하면 재판부도 잘못한 재판에 대해서는 피하고 덮는 식의 자세를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선책을 찾는 노력은 그중의 하나다.

흔히 법은 어른의 몫이라 한다. 이는 세월만큼 많은 경험과 합리적 사고를 요구한다는 뜻이다. 40대가 전체 법관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우리 법원의 인적 구조는 아쉽게도 이와는 거리가 멀다.

재심 요구가 많다는 사실은 판결이 잘못됐거나 이해가 가지 않는 재판결과의 반증이기도 하다. 재심의 폭을 넓히고 턱 높이를 없애는 조치를 강구할 시점이다. 학계 등 관계자들은 ‘재심 전담 법원 설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배심제를 기반으로 한 재심 법원은 추락한 사법 신뢰도를 보완 회복시켜줄 수 있는 방안으로 꼽힌다. 이들은 배심제 전담법원이 신설되면 선배가 판결한 재판에 대한 부담감도 덜어지고 전관예우와 같은 부조리도 성당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새 정부 들어 과거 잘 못된 판결에 대한 재심이 간혹 이뤄져도 시국 관련이 아닌 일반사건 경우는 여전히 어렵다.

법관에겐 ‘잘못 함이 없다’는 ‘갑질의 절대선’ 의식이 가장 큰 문제다. 판결을 비판하면 ‘사법부 독립’이란 구호성벽을 내세우는 현실을 어느 누구도 제어하지 못한다. 감시기능을 해야 할 메이저 언론은 게으르고 나머지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의 민 형사 사건 오심율이 25%에 이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법정 앞에서 사실 발견’이란 제목의 책에서 밝혀졌다. 이순철 전 목원대 법대 교수가 번역했다. 이 책에 따르면 독일 법정의 현실은 사실인정과 개선의 방법을 모색하는 조치로 이어진다. 오심의 사실을 인정하고 재심의 문을 보다 넓게 모색하는 독일법조의 용기와 노력은 시사하는 바 크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오판을 원천 부정하는 법원 행태는 국민 불신을 증폭키는 요인이다. 지난 10년 두 정권을 거치면서 한국의 사법 신뢰도는 후진국 수준으로 추락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에 거는 기대는 어느 때보다도 크다. 이유는 그가 잠자는  갑질 법관들의 의식을 깨우쳐 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우선 재심의 문을 활짝 열어 억울함을 해원하는 조치가 있기를 바란다. 일반 국민 눈으로 보면 블랙리스트 보다 더 나쁜 게 법대로 오판한 오심이다.

이춘발 언론인·한국무죄네트워크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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