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개헌에 속도…기본권 강화, 생명·안전권 신설, 지방분권 보완, 대통령 중임 등 윤곽

여권이 개헌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개헌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1일 의원총회에 개헌안을 논의했다. 2월 중 개헌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제 대통령도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등 개헌 준비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며 “이를 위해 대통령 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고 국회와 협의할 대통령의 개헌안을 준비해달라”고 지시했다. 여야가 국회에서 개헌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국민을 위한 국민의 개헌’을 원칙으로 하되 ‘국민이 공감하고 지지하는 최소한의 개헌’을 위해 ‘대통령의 개헌안’을 내겠다는 뜻이다. 이는 국회에 대한 ‘개헌압박’이며, 강한 ‘개헌의지’ 표명이다. 동시에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해 적극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성의표시’일 수도 있다.  

6월 지방선거에서의 국민투표를 전제할 때, 3월 중순까지 개헌안을 발의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 없다. 2월 말까지 국회든 정부든 개헌안을 마련해야 한다. ‘개헌안 발의→공고→의결’ 등의 법적 절차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권이 ‘개헌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개헌안 발의보다 개헌안 의결이 문제다. 개헌안을 통과시키려면 국회 296석 중 198석(3분의 2)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 의석수는 121석으로 77석이나 모자란다. 게다가 자유한국당 의석은 개헌 저지선인 99석(3분의 1)보다 8석이 많은 117석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자유한국당이 쪼개지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개헌안이 국회에서 의결되기 어렵다.

여권은 이런 상황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개헌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정치공세’인가. 아니다. 정계개편을 시도하겠다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고 본다.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선거 전략의 일환인가. 그것 역시 아닌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정치공학의 선수’가 아니다. 그렇다고 촛불혁명과 같은 개헌혁명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순진한 정치인도 아니다.

결국 답은 ‘국민이 공감하고 지지하는 최소한의 개헌’이란 말에 있다. 여권의 진짜 개헌카드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9일 여야원내대표 회동에서 “내년 6월에는 약속대로 개헌하겠다. 대통령제 유지가 맞겠다고 생각해왔으나 다른 권력구조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문 대통령은 권력구조 개편보다 기본권과 지방분권 강화에 관심이 있다. 즉, 평등권을 강화하고 생명·안전권 규정을 신설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입법·재정 권한을 높여주는 내용을 담은 개헌안에 문 대통령의 시선이 집중돼 있는 것이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에게 개헌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점이 이를 말해준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의 ‘사람이 먼저다’, ‘나라답게 정의롭게’라는 슬로건도 개헌의 지향점이 어디인지를 웅변한다. 그래서 여권이 야권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카드를 수용하게 될 경우 야권이 반대할 명분을 상실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필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사람이 먼저다’는 정신을 담는 대통령 개헌안이다. 이는 대한민국 최초 헌법의 정신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은 전문 첫머리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 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 19민주주의 이념을 계승하고”를 명시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법통은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 출발한다.

3·1운동 직후 중국 상해에 모여든 이동녕(李東寧) 조소앙(趙素昻) 안창호(安昌浩) 신채호(申采浩) 등 1000여명의 독립투사들은 1919년 4월10일 임시의정원을 구성, 국호를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조소앙이 기초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조소앙 이광수 신익희 등 3인의 심의를 거쳐 4월11일 임시의정원에서 결정됐다. 임시헌장은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취지를 밝힌 전문과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등 10개조의 본문으로 구성돼 있다. 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한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인 셈이다.

헌법 전문에 해당하는 ‘대한민국임시헌장선포문‘은 다음과 같다. “神人一致(신인일치)로 中外協應(중외협응)하야 漢城(한성)에 起義(기의)한지 三十有日(삼십유일)에 平和的 獨立(평화적 독립)을 三百餘州(삼백여주)에 光復(광복)하고 國民(국민)의 信任(신임)으로 完全(완전)히 다시 組織(조직)한 臨時政府(임시정부)는 恒久完全(항구완전)한 自主獨立(자주독립)의 福利(복리)로 我子孫(아자손) 黎民(려민)에 世傳(세전)키 위하여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임시의정원)의 決議(결의)로 臨時憲章(임시헌장)을 宣布(선포)하노라.”      

이 선포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키워드는 ‘神人一致(신인일치)’다. 조소앙 선생은 무슨 생각에서 ‘신인일치’를 임시헌장의 첫 글자로 삼았을까.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이다)’ 사상을 담기 위함인가. 물론 ‘신인일치’는 ‘인내천’사상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뜻을 담고 있다. 우리 민족은 단군(檀君)의 후예로 ‘천손민족(天孫民族)’이며, 반만년 역사와 홍익인간(弘益人間)사상을 계승한 배달겨레로 자주독립을 달성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이런 정신은 현행 헌법 전문 첫머리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으로 압축, 표현됐다.

‘사람이 먼저다’는 원래 ‘인내천 사상’에서 나왔다. ‘신인일치’라는 임시헌장의 헌법정신과 맥락을 같이한다. 실제로 현행 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란 임시헌장 제1조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촛불혁명도 이런 헌법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촛불혁명의 현장에서 대한민국 헌법 1조가 구호로 수없이 외쳐졌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사람이 먼저다’는 문재인 정부의 슬로건이라고 폄하해선 안 된다. ‘신인일치’의 사상을 계승한 대한민국 헌법의 근본정신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당리당략에 따라 ‘정부형태’ ‘권력구조’를 논의하는 것은 지엽적인 문제이다. 무엇보다 먼저 ‘신인일치’, ‘사람이 먼저다’는 헌법정신을 2018년 개헌안에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기본권(행복추구권 평등권 자유권 참정권 사회권 청구권적 기본권)을 강화하고, 생명권·안전권 규정을 신설하고, 지방분권을 보완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물론 ‘87년체제’의 단점도 보완해야 한다.    
    

아울러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좋은 헌법’을 만드는 데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좋은 헌법’을 위한 개헌안은 보다 거시적 역사적 정신사적 맥락에서 마련·추진돼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각 시대마다 헌법이 담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정신이 무엇인지를 깊이 통찰해야 할 것이다.

‘신인일치’로 시작된 대한민국의 헌법은 고귀하다. 신성하다. 그래서 개헌은 경건해야 한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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