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대선 전부터 남북대화 많은 노력 기울여
신뢰 바탕으로 특사단 성과…욕심내지 않으면 결실 클 듯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였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8일 미국으로 출발했다. 두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나눈 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을 전하고 북미대화를 촉구할 예정이다. 정 실장은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서 원장은 마이크 폼페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과도 접촉할 계획이다. 그리고 두 특사는 방미 이후 중·러·일 측에도 방북 결과를 설명한다. 정 실장이 중국과 러시아, 서 원장이 일본에 갈 예정이다.

앞서 이들은 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으로 지난 5일부터 6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면담했다. 면담 결과는 ‘언론발표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6개항의 합의사항으로 발표됐다.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서 제3차 정상회담 개최  군사적 긴장완화와 긴밀한 협의 위해 정상간 핫라인(Hot Line)을 설치 및 정상회담 이전 첫 통화 실시  북, 한반도 비핵화 의지 분명히 함. 체제안전 보장시 핵보유 이유 없어  북, 비핵화·북미관계 정상화 북미대화 용의  북, 대화 동안 핵실험·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없다. 남에 무력 사용 안 해  남측 태권도시범단과 예술단의 평양 방문 초청.

문 대통령은 7일 여야 5당 대표에게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있어 아주 중요한 고비를 맞이한 것 같다. 지금까지 오는 과정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사전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긴밀하게 협의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6일 “한국과 북한에서 나온 성명은 매우 긍정적이며 북한은 물론 한반도와 전 세계에 굉장한 일이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는 그동안 한 미 간에 긴밀한 협의와 소통이 이뤄졌음을 웅변한다.

제1차와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실무진으로 참여했던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방북 특사단의 결과보고는 기대 이상이었다. 김정은이 비핵화를 확인하고 북미대화에 나서고 조건부 모라토리엄을 수용한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비핵화에 절대 나설 것 같지 않던 김정은이 비록 기존의 조건하에서이긴 하지만 비핵화 협상에 동의한 것은 일단 북미가 마주앉을 수 있는 최소 필요조건은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마침내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뒷좌석에 태움으로써 이른바 ‘문재인의 운전자론’이 성과를 드러낸 것이다. ‘운전자론’이 완전히 성공하기 위해선 김 위원장 옆 좌석에 트럼프 대통령까지를 태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방미특사단의 트럼프 면담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이미 한 미 간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에 대한 시나리오가 충분히 논의됐을 터. 이에 따라 북미대화도 머지않아 성사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사단의 방미는 예정된 수순에 불과하다고 본다.

사실 그동안 우리가 염려했던 것은 트럼프 대통령보다 김정은 위원장이었다. 그가 과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에 나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미국과 북한은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직후인 2012년 2월29일 북핵 회담을 본격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이른바 ‘2·29 합의’다.

하지만 북한은 2012년 4월 ‘광명성-3호’를 발사해 ‘2·29합의’는 ‘없던 일’이 됐다. 2012년 4월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기했다. 심지어 4차례의 핵실험을 했다. 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선 ‘핵무력 개발’과 ‘경제개발’을 동시 추진하는 ‘병진노선’을 공식 채택했다. 이후 북핵 회담은 재개되지 못했고, 북미대화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특사면담에서 보여준 김 위원장의 언행과 남북 간 합의내용은 이런 회의감과 우려를 한 방에 날려버린 파격 그 자체였다. 언론발표문에 따르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다.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다”며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북미관계 정상화도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원래 그렇게 결단력이 있는 인물이었던가. 아니면 다른 변수가 있었던 것인가. 물론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에는 ‘핵무기가 자위적 억제력’이라는 기존입장이 은폐돼 있다. 뭔가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도 감지된다. 솔직히 약간의 초조감과 긴장감이 배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 위원장이 ‘핵무기가 자위적 억제력’이라는 점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고 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주고 북미대화에 나서겠다고 한 것은 문 대통령의 ‘친서’가 크게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신뢰’할 수 있는 내용이 ‘친서’에 담겨 있었기 때문에 ‘비핵화-북미대화’를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 ‘신뢰’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상당히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대선이전부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대선이후 남북은 많은 접촉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12월 중국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에서 남과 북이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대북전문가에 따르면 당시 쿤밍에는 눈이 많이 와서 남한 대표단이 자동차로 이동할 수가 없어 6시간을 걸어가 북한 대표단을 만났다고 한다.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에 대해 모든 것을 털어놓고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다. 남한 측은 미국의 대북제재, 그리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에 대한 미국의 제한적 타격을 뜻하는 ‘코피(bloody nose)전략’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고 한다. 협박이 아닌 진정성을 갖고 북한 측을 설득했다고 한다.

유엔과 미국, 그리고 중국까지 가세한 대북제재에 따른 경제위기 통치자금 고갈로 체제 및 정권위기를 느낀 북한은 마침내 움직였다. 남한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 결과는 김 위원장의 2018년 신년사로 나타났다. 그는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선언했으며, 다음과 같이 남북 간 접촉 교류 협력을 강조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를 끝장내지 않고서는 나라의 통일은 고사하고 외세가 강요하는 핵전쟁의 참화를 면할 수 없습니다(중략) 북과 남은 정세를 격화시키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하며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여야 합니다(중략) 북과 남 사이 접촉과 내왕 협력과 교류를 폭넓게 실현하며 서로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통일의 주체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김 위원장 결단의 백미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대남특사 파견이었다. 김 위원장이 ‘김여정 특사 카드’를 사용한 것은 ‘신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2014년 10월4일 인천아시아게임 폐막식에 당시 북한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비서, 김양건 대남선전부장 등 최고위급 인사 10여명을 파견했으나, 김 위원장은 자신의 ‘뜻’이 100%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봤다. 그래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자신의 ‘뜻’을 100% 전달할 수 있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김 제1부부장을 대남특사로 파견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여정 카드’는 성공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대북특사를 면담하면서 김 제1부부장이 앞서 보고했던 문 대통령 면담내용과 문 대통령의 ‘친서’가 일치했고, 자신의 뜻이 문 대통령에게 100% 전달됐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문 대통령이 자신의 ‘뜻’을 100%로 전달할 수 있는 정의용 실장과 서훈 원장을 대북특사로 파견한 것도 성공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북미대화의 물고를 텄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이 보도한 “김 위원장이 북·미 대화를 전제로 영변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겠다는 입장도 확인했다”는 내용이 사실로 확인되고, 이 내용이 정 실장을 통해 미국에 전달될 경우 북미대화는 빠르게 진전될 것이다.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손익계산을 마쳤을 터. 북미대화는 급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은 정 실장과 서 원장을 통해 그동안 이룩한 모든 성과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릴 것이다. 가령, 문 대통령은 북핵문제 해결의 성과를 통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려고 할 것이다. 심지어 4월말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러 차례 밝혔지만 서두르는 것은 금물이다. 또 나이가 어리다고 김정은 위원장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그는 오랫동안 ‘통치교육’을 받았다. 외국어(독일어 영어 중국어)도 능통하다. 집권 전에 비밀리 중국에 가서 중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내부 권력투쟁에서도 형들을 제치고 집권에 성공했다. 특히 정적을 과감히 제거하는 냉혹한 인물이다. 집권 7년의 ‘통치경험’을 갖고 있다. ‘문재인의 운전자론’은 이제 막 출발했을 뿐이다. “불욕이정 천하장자정(不欲以靜,天下將自定)”이라 했던가. 욕심을 내지 않고 고요하게 있으면 천하는 저절로 안정될 것이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 회장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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