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정세 안정은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주변국 체제안정에 도움
평화·통일에 대한 사고·자세 새롭게 변화해야 남북 북미정상회담 성공

“한국통일은 5년 이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농민들이 북한농민들을 돕는다면 통일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금이 있다면 지금부터 DMZ(비무장지대)의 땅을 사면 부자가 될 것이다.”

김병원 농협회장은 지난 6일 농민신문사가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한 ‘제3회 미농포럼(Minong Forum)’ 개회사를 통해 세계 3대 투자가 짐 로저스(Jim Rogers) 로저스홀딩스 회장과 전날 만찬을 함께 하며 나눈 대화내용의 일부를 이와 같이 소개했다.

로저스 회장은 또 이날 ‘세계 상품시장 동향과 전망’을 주제로 한 특강에서는 “통일이 되면 북한화폐가 수집가들의 타깃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화폐‧물류‧항공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조한 것이다. 로저스 회장은 2013년 북한을 방문한 뒤 국제시장에 나온 북한화폐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당시 현장에서 김 회장과 로저스 회장의 ‘통일투자’ 발언을 들으면서 반신반의했다. 그가 비록 동물적인 투자 감각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날 오후 대북특사단이 북한에서 가져온 6개항의 합의문은 그 생각을 흔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면담하고 나온 뒤 백악관에서 발표한 내용을 접하고, ‘로저스 회장의 전망이 맞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한 한 조기에 만나고 싶다는 뜻을 표명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항구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 위원장과 5월까지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는 정 실장의 발표는 ‘분단체제’를 송두리째 흔드는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4월 말의 남북정상회담, 5월의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경우 한반도 냉전체제는 종식될 가능성이 높다. 북미정상회담에서 북미수교 종전선언 불가침조약 평화협정 등이 합의될 경우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지고 ‘한반도 평화체제’도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 분단 73년, 정전 65년의 한반도가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훗날 한반도 평화를 일궈낸 역사적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먼저 4월의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6·15남북공동선언’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10·4남북정상선언’을 계승해 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 정례적인 남북 당국간 회담, 민간분야의 경제문화교류 협력, 이산가족 상봉 등 모든 분야에서의 전면적인 남북관계 복원에 대해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우리 정부는 ‘완전한 남북경제교류 협력 프로세스 합의’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어 5월의 북미정상회담은 일단 북핵동결과 인도적 지원을 묶은 2012년의 ‘2·29합의’를 복원한 뒤 대화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 핵폐기에 대해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모델은 2015년 이란 방식이다. 2015년 7월14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등 6개국과 이란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도출했던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대신 이란에 대한 각종 제재 조치 해제’를 골자로 하는 ‘이란 핵 협상 합의’를 모델로 삼아, 남북한과 미 중 일 러가 참여하는 6자회담이나 남북한과 미 중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개최해 ‘북핵폐기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을 추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당시 이란은 경제제재 해제에 따라 천문학적인 재원을 확보해 경제발전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마찬가지로 북한과 미국은 ‘핵무기 폐기’와 ‘제재해제 북미수교 대규모 경제지원’을 ‘빅딜’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휴전체제를 종식시키는 ‘종전선언’, ‘불가침조약’과 함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새로운 한반도 질서를 건설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떤가. 중국은 휴전협정의 당사국이다. 중국이 반대할 경우 북한이 북미대화에 나서기 쉽지 않다. 하지만 중국은 이번 남북대화에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9일 필자에게 “한반도 평화가 중국의 이익에 부합되기 때문에 그동안 중국 정부는 보이지 않는 선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중재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2014년 2월12일 부임한 추궈홍(邱國洪) 주한 중국대사는 5년째 근무하고 있다. 한국에 2019년까지 근무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는 뭔가 매우 중요한 ‘중단할 수 없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은 현재 국가적으로 최대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하는 개헌 여부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변이 없는 한 오는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의 표결에서 ‘시진핑 사상’과 ‘국가 주석 임기 제한 철폐’를 담은 개헌안은 일사천리로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혁기를 맞는 중국에겐 체제안정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동북아 정세가 안정돼야 한다. 그 관건은 한반도 평화다. ‘시진핑 체제’가 더욱 공고해지기 위해선 북핵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판단에서 중국이 남북대화를 물밑에서 지원했다는 것이다.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에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을 놓고도 미국과 중국이 물밑에서 조율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무회담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북미정상회담을 수용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실제로 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전화통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와 양국관계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고도로 중시한다”고 말했고, 시 주석은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수호,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실현하기 위해 확고히 힘쓰겠다”고 화답했다.

결국 중국으로부터 일련의 ‘압박’을 받은 북한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던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이 중국을 자극해 오히려 발목을 잡힌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김정은 노동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4차례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결의 2087호(2013년 1월 미사일 발사에 따른 제재) 안보리 결의 2094호(2013년 3월 3차 핵실험에 따른 제재) 안보리 결의 2270호(2016년 3월 4차 핵실험에 따른 제재) 안보리 결의 2321호(2016년 12월 5차 핵실험에 따른 제재) 안보리 결의 2356호(2017년 6월 미사일 발사에 따른 제재) 안보리 결의 2371호(2017년 8월 미사일 발사에 따른 제재) 안보리 결의 2375호(2017년 9월 6차 핵실험에 따른 제재) 안보리 결의 2397호(2017년 12월 미사일 발사에 따른 제재) 등 잇따른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와 함께 남한 미국 일본 유럽연합 독일 중국 등도 독자적인 대북제재를 단행했다. 특히 중국의 대북제재가 북한에게 큰 충격을 줬다.

동시에 국제 사회의 잇단 대북제재에 따라 북한 경제난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북한 주민들 기본적 삶의 조건까지 악화됐다. 북한 군부를 비롯해 권력 내부에서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에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철저히 이행되면 2018년 이후 ‘고난의 행군’ 수준의 경제난이 닥칠 것이며, 경제성장률은 최대 -5%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 정권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법하다. 2010년 통계청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고난의 행군(1996~2000년)’ 시기에 대략 33만여 명이 사망했고,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0여 년 동안 식량난으로 61만 명의 인구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됐다. 이런 배경에서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제1차,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런 역사적 교훈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병진노선’ 중 ‘핵무력 완성’은 달성했지만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수행’은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즉,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수행’이 차질을 빚어 경제가 파탄할 경우 ‘김정은 체제’는 자멸할 수도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는 우리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의 선린우호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새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모든 나라들과의 선린우호관계 발전시켜 나갈 것’은 북미관계 개선을 우회적으로 표명한 대목이다.

아무튼 동북아 질서는 재편될 수밖에 없다. 남한의 경우 미국의 ‘제한적 대북선제타격’을 방지해 한반도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고,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와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외교적 업적을 쌓아야 하는 입장이고, 중국의 경우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체제’를 평화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고, 북한의 경우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수행’을 성공시켜 군부를 달래고 민심을 안정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네 나라가 모두 ‘대결’보다는 ‘대화’를 통해 평화의 길로 가야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대화의 물결은 장강처럼 흐를 수밖에 없다.

다만 미국이 북한 비핵화의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를 북한이 완전 수용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북한의 투명성과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9일(현지시간) 북미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의한 구체적인 조치와 구체적인 행동을 보지 않고는 그러한 만남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바로 이 ‘CVID’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시설 핵무기 공개→국제사회의 사찰 검증→폐기’ 과정을 이끌어내야 한다.

따라서 4월 남북정상회담이 중요하다. 이번 회담에서 우리 정부는 2007년 10월4일 남북이 합의한 ‘10·4남북정상선언’의 별도 조항인 “남과 북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하였다”는 합의사항을 복원 이행하고, ‘정상회담 정례화’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특히 ‘10·4남북정상선언’의 제4항의 1 ‘정전체제 종식을 위한 종전선언 추진협력’에 대한 합의사항을 복원하고,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10월1일 ‘10·4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행사 특별연설에서 마지막 대목을 이렇게 장식했다. “이런 저런 구체적인 통일방안이나 협상의 전략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방안이나 전략은 근본적인 사고와 자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고와 자세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 모두가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야 할 내용이다. 통일과 평화에 대한 ‘사고와 자세’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두 정상회담이 성공할 수 있다. ‘신사고(新思考)와 신자세(新姿勢)’가 새 역사를 창조한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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