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혐의 모르쇠 일관…불·탈법 행위 처절한 뉘우침 있어야

한때 ‘샐러리맨의 신화’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 그는 자신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 2008-2013’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나는 정치자금을 걷지 않았다. 대신 내 재산을 사회에 내놓았다. 샐러리맨 생활을 하면서 평생 아껴 쓰며 모은 돈이었다. 오늘을 있게 해준 많은 분들과 우리 사회에 대한 감사였다. 그리고 가난했던 어머니와의 약속이었다. 이해해준 가족들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는 110억 원대 뇌물수수·350억 원대 다스 횡령 등 혐의로 23일 새벽 구속됐다. 그가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이 모두 거짓말로 드러난 셈이다. “깨끗한 정치를 넘어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의 말은 ‘망어(妄語)’로 남았다.

이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횡령 조세포탈 직권남용 등 14개 안팎의 혐의를 받고 있다. 19일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와 22일 법원의 영장 발부에서 적용된 혐의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특가법) 뇌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특경법) 횡령 특가법 조세포탈 특가법 국고손실 형법상 수뢰 후 부정처사 정치자금법 위반 형법상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8개에 달한다. 향후 재판에서 그의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 중형(최대 징역 45년 형)을 피하기 어렵다.

참고로 그의 혐의가 어느 정도인가는 검찰의 구속영장청구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검찰의 한 관계는 23일 “구속영장청구서에 모든 혐의를 다 기록하면 국민들이 충격을 받을까 봐 다 기록하지 못했다. 파면 팔수록, 들추면 들출수록 너무나 기가 막힌 혐의가 나온다”고 했다. 구속영장에 적힌 그의 주요 혐의와 해명은 다음과 같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 : 김희중 전 부속실장 10만달러 수수(특가법 뇌물수수 국고손실), 김백준 전 기획관 4억원 수수(특가법 뇌물수수 국고손실), 박재완 전 수석에게 전해진 2억원(특가법 뇌물수수 국고손실) ▶MB해명 “받은 사실 인정…대북공작 등 사용"

민간영역 불법자금 수수 의혹 : 이팔성 전 우리금융회장 불법자금 22억6000만원 수수(특가법 뇌물수수 수뢰후 부정처사·정치자금 부정수수), 김소남 전 의원 4억원 공천헌금 수수(특가법 뇌물수수 정치자금 부정수수),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 공사 수주 청탁 5억원 수수(특가법 뇌물수수), 손병문 ABC상사 회장 2억원 수수(특가법 뇌물수수), 능인선원 주지 지광스님 3억원 수수(특가법 뇌물수수) ▶MB 해명 "모르는 일.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 없다. 자신들의 처벌을 경감하기 위한 허위진술 아닌가 생각" 

다스 140억 반환개입 및 삼성 뇌물 수수 의혹(특가법 뇌물수수) : 삼성 다스 소송비 약 67억7000만원 대납, LA 총영사 등 다스 소송 관여 지시(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MB해명 "미국 대형로펌이 무료로 소송 도와준다고 들어. 소송비 대납 관련 보고받은 바 없다. 그런 청와대 문건이 있다면 조작된 문건일 것"

다스 차명보유 및 경영비리 의혹 : 다스 비자금 조성 및 법인카드·차량 사용 348억원 횡령(특경법 횡령), 여직원 횡령금 반환 회계조작으로 31억원 탈세(특가법 조세포탈), 김재정씨 사망 전후 청와대에 상속세 납부 방안 검토 지시(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MB해명 "전혀 모르고 관여한 바 없다. 다스 관련 청와대 문건도 몰라. 조작된 문건일 것. 법인카드 사용은 인정"

청와대 문건 유출 의혹 : 다스 비밀창고로 대통령기록물 불법 반출·은닉(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MB해명 "모르는 일.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실무진의 실수일 것"

이 전 대통령만 혐의가 있는 게 아니다. 부인 김윤옥 여사와 아들 시형씨, 형 이상은 이상득씨, 사위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 조카인 이동형 다스 부사장 등 친인척들과 핵심 측근들도 불법에 가담한 혐의를 적용받아 기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이병모 사무국장, 이영배 금강대표 등은 구속수사 기한이 만료돼 이미 재판에 넘겨졌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회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차관 송정호 청계재단이사장 등은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의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서울대 교수 출신 류우익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실용주의’를 국정철학으로 삼았다. ‘국가 통치’가 아닌 ‘국가 경영’을 지향한 것이다. 그는 회고록에서 “통치가 아닌 경영을 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경영’, 바로 그것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통치’는 법과 정의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경영’은 실리를 추구하며 실적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가 ‘국가 경영’을 지향했기 때문에 ‘실용주의’를 국정철학으로 삼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2008년 10월 13일부터 4년 5개월 동안 109번 방송했던 그의 ‘라디오 연설’의 단골메뉴가 경제문제였던 것이 그 단적인 사례다. 결국 이런 ‘MB식 국가 경영’은 실리와 실적을 위해선 법과 정의도 무시하면서 ‘선진화’가 아닌 ‘부패화’의 길을 갔던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을까. 그는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입장문에서 “지금 이 시간 누굴 원망하기보다는 이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심정이고 자책감을 느낀다”며 “과거 잘못된 관행을 절연하고 깨끗한 정치를 하고자 노력했지만 오늘날 국민 눈높이에 비춰보면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직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사기꾼들은 사기행각을 벌이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자신의 사기행위를 이익을 얻기 위한 ‘사업 활동의 방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역의 제1괘(卦)인 중천건(重天乾)의 효사(爻辭·주역에서 괘(卦)를 구성하는 각 ‘효(爻)’를 풀이한 말)에 “상구(上九),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상구는 상왕(上王), 즉 전직 대통령을 가리킨다. ‘항룡유회’는 ‘높이 오른 용(龍)이니 뉘우침이 있을 것’이란 뜻이다. 즉,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감에 따른 재앙(災殃)’이란 것이다. 공자(孔子)는 이렇게 해석했다. “존귀하여도 (그에 합당한) 지위가 없으며, (비록)높은 지위에 있어도 그를 따를 백성이 없으며, 현인(賢人)들이 아래 있지만 (그를)돕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상구(上九)가 움직임에 후회가 있는 것이다.” 지금의 MB에 해당되는 말이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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