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평균보다 연간 300시간 더 근무하는 ‘부끄러운 현실’
일자리 나누기와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워라밸’ 시대 열어야

‘주52시간 근무제’가 지난 1일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에서 본격 시행됐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2월 국회에서 통과된 결과다. 50인 이상 299인 이하 사업장은 2020년 1월, 5인 이상 49인 이하 사업장은 2021년 7월에 적용된다.

일단 ‘주52시간 근무’는 2004년 7월에 도입된 ‘주5일 근무’보다 경제적인 파괴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주5일 근무’는 근로시간을 4시간 단축했지만, ‘주 52시간 근무’는 근로시간을 16시간 단축했기 때문이다. 물론 ‘주52시간 근무’는 ‘국민 생활의 대변혁’의 측면에선 ‘주5일 근무’보다 파장이 작을 수 있다. ‘저녁이 있는 삶’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나 생활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민주당 강병원 원내대변인은 지난 1일 “장시간 노동으로 얼룩진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동시에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최대 19만 개의 일자리 나누기가 가능한 기회”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이날 “생산성 향상 없는 섣부른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부담을 가져다준다”고 우려했다. ‘주 52시간 근무’가 정쟁의 소재로 부상한 것이다. 

이런 점을 예상해서인지 당·정·청은 지난 달 20일 ‘주 52시간 근무’와 관련해, 6개월간 계도기간을 두고 사실상 처벌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결정은 ‘주 52시간 근무’의 충격 최소화와 연착륙을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노동계는 “기업들에 잘못된 신호를 준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30일 노동자대회에서 “최저임금법 개악과 주52시간 근로의 처벌유예조처 등 정부의 노동정책이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 52시간 근무’가 정착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사실 노동시간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역사는 오래됐다. 노동시간이 바로 우리의 삶에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19세기 초 영국에선 파장이 큰 정치쟁점이었다. 쟁점은 1819년 영국 의회가 아동노동을 구제하기 위해 제정한 ‘면직공장규제법(the Cotton Factories Regulation Act)’으로부터 발화됐다. 

당시 영국에서는 면직공장의 경우 8세부터 아동들이 하루 12~18시간 일했다. 아동 노동이 전체 노동자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였다. 그러다가 1819년 면직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17명의 소녀들이 숨졌다. 이 앳킨슨(Atkinson)사건으로 영국은 발칵 뒤집혔다. 결국 영국 의회는 9세 이하는 고용을 금지하고, 16세 미만은 12시간 노동으로 제한하고, 이를 위반하는 공장주에 대해 벌금 10~20파운드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면직공장규제법’을 제정했다. 반발이 거셌다. 반대파들은 이 법이 ‘노동할 자유’와 ‘고용할 권리’ 등 시장과 계약의 원칙을 침해함으로써 자유시장의 기반을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에도 일부 가난한 나라에선 아동노동이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선 누구도 아동노용 허용을 주장하지 않는다. 소말리아를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들이 UN이 제정한 ‘아동권리협약(CRC‧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200년 전 영국 상황이나 오늘의 한국 상황은 유사하다. 재계 일각에선 ‘주 52시간 근무’로 기업이 망할 것처럼 떠드는가 하면,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그 때나 지금이나 자유시장의 원리에 위반된다는 논리가 담겨 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과로 사회에서 벗어나 나를 찾고 가족과 함께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일자리 나누기와 노동생산성 향상의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사람이 먼저다’는 문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주52시간 근무’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교수 미국 뉴욕시립대교수도 ‘사람중심 경제’를 강조했다. 그는 지난 28일 ‘2018 국민경제 국제 콘퍼런스’에서 “단순히 GDP가 아닌 사람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며 그것의 핵심은 사회적 포용”이라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일원임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27일 전경련 특별대담에선 한국의 ‘주52시간근무’에 대해 “52시간이요? 선진국에 비해서 굉장히 많이 일한다. 한국도 선진국 아닌가? 그렇게 많은 시간을 일하다니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히려 노동시간을 더 단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돈’을 벌기 위해 ‘일’에 대한 비중을 80%로 생각했다. ‘삶’에 대한 비중은 20%에 불과했다. ‘돈’을 벌기 위해 ‘삶’보다 ‘일’을 선택했다. 노동시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돈’만 많이 주면 철야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사람다운 삶을 영위해야 할 때다. 문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간곡한 호소를 경제계나 노동계 모두가 수용할 때가 된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둘러봐도 우리 정도 수준을 갖춘 나라 가운데 우리처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나라는 없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연간 300시간 더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는 부끄러운 현실을 이제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주 52시간 근무’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의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일 50%와 삶 50%’의 균형을 맞춰 살아가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인가. 먼저 ‘일’은 노동이 아니다. 몸을 살찌게 하는 외적인 삶이다. 그리고 진정한 ‘삶’은 마음을 살찌게 하는 내적인 삶이다. 인간은 몸과 마음이 균형을 이뤄야 건강하고 행복해진다. 그것이 워라밸이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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