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련 12% 증가했지만 R&D는 4%에 그쳐…혁신성장 기대 난망

기획재정부가 올해보다 9.7% 증가한 총지출규모 470조5000억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 발표했다. 예산 증가율은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편성한 전년대비 10.7%의 증가율 다음으로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이른바 ‘슈퍼 예산안’ 편성으로 일자리 쇼크와 소득 양극화를 극복하고, 저성장과 저출산 등의 경제·사회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보건·복지·노동 예산을 올해보다 12.1% 증가한 162조2000억원으로 편성했다. 복지예산의 연평균 증가율이 이명박 정부 8.3%, 박근혜 정부 7.4%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복지를 통한 소득주도 성장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현 정부의 의지가 담겨있다. 특히 중점 사업인 일자리 예산은 23조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2% 늘어났다.

대폭 삭감됐던 산업 예산은 내년에는 14.3%가 늘어난 18조6000억원이 배정됐다. R&D 예산도 4% 증액해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어서 혁신성장을 위한 예산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직접적인 고용효과가 높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올해 3조원 삭감된 데 이어 내년에 5000억원이 더 줄어 18조5000억원에 그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SOC에 해당하는 복지와 R&D 예산은 증가한 반면, 도로 건설 등 전통적인 개념의 SOC 예산은 2년 연속 축소되어 경제 정책 방향을 이전 정부와 뚜렷하게 차별화했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어려울 때 적극적 재정 정책을 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는 통상적인 경제 위기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도 언급했듯이 "성장률, 수출 등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지표들은 나쁘지 않은데 일자리나 소득분배 등 체감경기가 매우 나쁘다"는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은 과거의 경제 패러다임이 극심한 양극화와 불공정 경제를 초래해 결국 현재의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경제를 살리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내년도 예산안은 ‘양극화 완화와 혁신성장 제고’를 위한 적극적 예산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소득주도성장을 통한 양극화 해소로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고, 혁신 성장을 통해 장기적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 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산안 내역을 보면 일자리 예산 등 복지 관련 예산은 12.1% 증가한 반면, R&D 예산은 4% 증가에 그치고 있어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혁신성장 정책 사이에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반대론자들이 지적하듯이 혁신성장 관련 R&D 예산은 단기간에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지만, 복지 예산 등은 직접적인 지원을 통해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대기업 중심의 불평등 성장 정책으로 심화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복지 예산을 늘리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뚜렷한 성장 정책 없이 예산을 투입한다면 선심성 예산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물론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은 하고 있지만, 이는 엄연히 분배의 문제이지 성장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발표된 ‘100대 국정과제’에서도 소득주도성장이 주 성장정책으로 나와 있고, 혁신성장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었다. 이후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 상호 보완해 나가는 개념으로 발표되었지만, 이번 예산안 발표를 보면 여전히 소득주도성장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간의 균형이 ‘공정경제’라는 가치 아래서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성장 없는 분배는 없다’는 기본적인 명제를 곰곰이 되새겨보아야 할 때이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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