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회찬 의원의 49재 추모행사가 9일 오전 11시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행사에서 권영길·심상정·이정미 등 진보정당 전·현직 대표 등 각계인사 18명은 노회찬 재단 설립을 제안했다.

이들은 제안문에서 “노회찬이 했던 사회 약자들을 대변하고 우리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활동을 '노회찬 정치'로 되살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①대한민국 곳곳의 사회약자를 살피고 정의를 바로세우고자 했던 노회찬의 말과 글, 발자취를 기록하고 펼쳐내 '좋은 정치'의 교본이 되게 하겠다 ②노회찬의 꿈과 삶을 이어갈 제2, 제3의 노회찬을 양성하고 지원하겠다 ③대한민국을 문화적이고 자유로운 나라, 사회연대의 나라, 평화로운 나라로 만들어가기 위한 연구·토론의 장을 열겠다”고 세 가지 사업방향을 제시했다.
 
필자는 49재를 며칠 앞두고 노 의원의 묘소를 참배했다. 묘소는 민족·민주열사 묘역의 중심에 있었다. 전태일·박종철 열사, 문익환 목사, 김근태 의원 등과 함께 잠들어 있었다.

▲ 고(故) 노회찬 의원의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중앙의 노란 표시가 있는 곳에 노 의원이 잠들어 있다. 풍수지리가 손건웅은 ‘동강의 풍수유람’에서 “좋은 곳에 모셨다. 역량이 좋다”고 평가했다.

노 의원 묘소에서 참배하는 동안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한 참을 서서 노 의원과 말없는 대화를 나눴다. “미안합니다. 노 의원님! 사실 저는 그동안 노 의원을 잘 몰랐습니다. 그냥 진보 정치인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크게 갖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갑자기 그가 일반적인 의미의 ‘정치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그가 선택한 수단이 ‘진보정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하늘에서도 바쁩니다. 여기서도 약자들을 위해 할 일이 많습니다”라는 노 의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하늘에서도 ‘약자를 위한 판갈이’하느라 바쁘게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온 것이다.

노 의원 묘소를 참배하고 돌아와 그가 남긴 책을 읽었다. ‘힘내라 진달래’, ‘생각해봤어?’, ‘법은 만 명한테만 평등하다’,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등을 읽고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을 했다. 그의 사상과 정치철학에 대해 사색도 했다.    

▲ 고(故) 노회찬 의원의 묘소는 정의당의 상징색인 노란 꽃과 하얀 꽃으로 덮여 있다. ‘님이 갈아엎지 못한 불판을 우리가 갈아엎겠습니다’는 글귀가 눈에 띈다. 평소 그가 즐겨 마시던 소주도 있었다. 필자는 물 한 병을 놓았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도록….

노 의원은 20대부터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용접공으로 남한 최대의 노동운동조직이었던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에서 활동했다. 그는 1987년 6월 항쟁과 베를린장벽 붕괴, 소비에트 해체 등을 목도하고 노동운동의 합법적 정치활동 전환을 추진했다. 1991년 인민노련이 ‘신노선’을 발표하고 합법정당 노선으로 전환한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다. 합법적 진보정당을 출범시킨 셈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죽산 조봉암의 영향이 컸다. 조봉암은 1956년 11월10일 혁신정치, 수탈 없는 계획경제, 민주적 평화통일의 3대 정강을 내걸고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표방한 ‘진보당’을 창당했다. 조봉암은 특히 ‘혁명’보다 ‘선거’를 강조했다.

노 의원도 ‘혁명’보다 ‘선거’를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노 의원은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를 지향한다. 스웨덴 등과 같은 사민주의 복지사회를 꿈꾼다. 그는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민주의는 개량주의다. 혁명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혁명노선이 아니라 개량노선이다. 이제 이념적으로 NL도 PD도 버리고 사민주의에서 다시 만나야 한다.” 그는 이어 “NL-PD시대, 운동권 시대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 의원은 이런 사회민주주의 이념의 차원을 넘어선다. ‘실사구시(實事求是·실질적인 일에 나아가 옳음을 구한다)’의 삶을 살았다. ‘말없는 실천’이 그의 최대 장점이다. 말만 앞세운 정치인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그가 말없이 실천한 사례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는 7년간 법률안 945건 등 1029건의 의안을 발의했다. 호주제 폐지, 장애인 차별금지, 대체복무, 개인정보보호, 고교 무상교육 등 굵직한 진보적 의제들이 노 의원의 손을 거쳐 실현됐다. 카드가맹점 수수료 인하운동,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 학교급식 직영화, 일반병원까지 6세미만 어린이의 예방접종 무료, 아토피걱정 제로 프로젝트, 지역복지재정 확충을 위한 법 개정,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전월세 세입자 보호법 개정 등을 추진했다. 그가 2007년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것도 삼성그룹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삼성 일반노조위원장 김성환씨를 위한 것이었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배려’는 이제 너무나 유명한 얘기가 됐다.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누가 이처럼 실천했던 정치인이 있었던가.

그는 무엇보다 정의를 위해 용감했다. 2005년 8월18일 국회 법사위 회의에 앞서 배포한 ‘안기부 X파일’관련 보도 자료를 통해 옛 안기부 불법 도청테이프에서 삼성그룹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언급된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그러자 검찰은 노 의원을 기소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이에 대해 이렇게 ‘입장’을 밝혔다. “나를 기소하고 싶은가? 기소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국민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은 알리는 것이 도리다. 나라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고 옳은 일이라면, 법의 잣대에 개의치 않고 나는 한다.”결국 이로 인해 노 의원은 2013년 2월 19대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약자의 대변인 노회찬! 그는 지난 5월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상에게 취임 1주년을 축하하고,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지난 1년은 이전 10년의 퇴행을 넘어서는 소중한 변화가 시작된 시간이었다”며 책을 선물했다. 문 대통령에게는 “평화와 번영의 길목에서 ‘조난자들’을 안아주십시오”라는 편지와 함께 탈북민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은 주승현의 ‘조난자들’, 김 여사에게는 “통영의 동백나무 너무 고맙습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아버지가 남겨놓은 유품을 들고 아버지의 삶을 찾아 나선 아들의 이야기인 김창희의 ‘아버지를 찾아서-통영으로 떠난 시간여정’을 선물한 것이다. 약자인 탈북민들까지도 챙겨달라는 건의를 한 것이다. 앉으나 서나 약자 생각뿐이었다.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한마디로 노회찬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회찬을 진정으로 우리가 모든 정치인들이 배워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노회찬은 영면에 들었지만 ‘노회찬 정신’, ‘노회찬 정치’는 살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노회찬을 배워야 한다. 노회찬을 닮아야 한다. ‘노회찬식 삶’을 살아야 한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회장·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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